[스크랩] 1992년 9월 7일 드디어 엘림교회의 개척이 시작되다
드디어 교회개척이 시작되었다.
개척예배 설교는 사촌 매형인 강동원 목사님께 부탁을 하고
축사는 총대학원 선배이고 내가 동대구에 함께 집회에 다니면서
은혜를 많이 받은 김태수 목사님께 부탁을 하고
축도는 매일밤 철야를 하면서 은혜를 받았던 봉천동 남서울 교회
고수영목사님께 부탁을 하여 개척예배를 드렸다
김영미 목사님은 합동측교회 개척을 하는데
여자 목사가 가면 분위기를 깬다면서 오시지를 않으셨다
대신 한달 동안 은사집회는 매주 금요일부터 주일 오후까지
해 주시기로 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해 주시는 관계로 성황리에
잘 마쳤다.
당장 그 주일 금요일 부터 은사집회가 시작되고
우리 교회에서는 365일 철야를 시작하였다.
필자는 교회 강대상에서 기도하다가 자고
아내역시 집에서 잘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기도를 하고 새벼에배까지 마치면
몸과 마음이 심하게 지쳤다...하루이틀도 아니고
365일 계속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을 거의 1년가까이
하기 시작하니 건강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기도를 오래할 수 없고...피곤하면서
지쳐간다...
성도들은 많이 오는데 ...대부분이 문제와 사건이 있으신 분들이다
함께 붙들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1-2시간을 붙들고 기도를 하고 나면
몸이 탈진이 된다...
이러다 보니 영적인 부분에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밤에 철야하러 오신 분들에게 기도를 하면 잘 안 맞는다
자꾸 예언이 빗나가고 병든자들의 치료가 늦어진다.
그러니 오시던 분들이 점점줄어든다...
도져히 몸과 마음이 따라 주지 않아서
바꾸기로 했다.
365일 철야를 새벽예배로 바꾸고,
주일예배와 수요예배에 중점을 두면서
정상적인 목회의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니 은사를 좋아하시고 신비적인것들을 좋아하셔서
오시는 분들이 한사람 두사람 떠나기 시작하더니
30여명 되던 분들이 10여명으로 줄어든다
헌금도 급감한다.
한달 월세 50만원 내기도 버거워진다.
다시 내 영의 상태를 진단하기 위하여
양재동에 있는 횃불 도서관에 날마다 출근하다 시피하여
전문적인 신학서적들을 파고
영적인 은사에 관한 책들을 3-4개월간 섭렵을 했다.
이론적으로 어느정도 윤곽이 드러나는데...
필자가 교회를 운영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이 드러났다.
다시 신학을 해야겠다면서 아내에게 말을 하니
처음에는 펄쩍 뛰더니 전 후 사정을 다 이야기를 하니
수긍을 한다.
"주님, 내가 목사가 되어 다시 신학을 하면 무슨 신학을 해야 합니까?
교회 개척을 해 놓고 다시 신학을 해야 하다니..." 앞이 캄캄했다.
당시 방송대학 중국어과 졸업반이었던 때다.
방송대에 마지막 졸업시험을 앞두고 동숭동에 있는
방송대 서울 지역학습관 도서관에서
졸업시험 준비를 하면서 책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영적인 주님의 음성이 나의 마음으로 들려온다.
"오늘이 총신대학원 마지막 원서를 파는 날이다.
가서 원서를 사서 총신대학원 시험으로 치루어라!"
너무도 선명한 음성에 ..."그런데...저는 원서 살 돈이 없습니다.
지금 겨우 학교에 오가는 차비만 가지고 다니는데요?"
- " 너가 믿음의 교회에서 만난 너의 친구 J00 집사가 이 근처에 살고 있지 않느냐
그 친구에게 돈을 달라고 하여 원서를 사라"
확인을 위해 총신대학원에 전화를 하니 오늘이 원서파는 마지막날인데...
오후 6시까지만 판다는 것이다.
J00 집사에게 전화를 하니 돈걱정은 하지 말라면서 돈을 주신다.
급하게 전철을 타고 사당동 총신대학에 원서를 사기 위해 가니 시간에 오후 5시 50분이다.
겨우 대학원 원서를 사서 오는데...
시험을 보는것이 막막하다. 방송대 졸업시험에 합격을 해야
졸업이 되어 총신대학원을 갈 수 있는데
시험 과목이 영어, 논문, 성경, 철학이다. 도져히 자신이 없다.
- "하나님, 도져히 자신이 없습니다. 이제 시험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 " 김태수 목사에게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라..."
- 김태수 목사님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당시에 성균관대 졸업생중에 두 사람이
총신을 가기 위해 일년동안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그분들을 소개해 주기에 만나서
일년동안 공부 한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으로만 된것을 카피해 달라고 했다.
노트 한권을 카피해서 준다...2주동안 그 노트를 다 외웠다.
드디어 총신대학원 시험에 합격을 하였다.
- 겨울에 공개강좌에서 어학연수까지 다 받았는데...방송대 졸업시험에서
고급중국어가 커트라인인 60점이 못 미친 59,8이다. 이것으로 방송대 졸업이 안됐다.
등록금을 기한내에 환불을 받고....
다시 1 년을 공부하여 총신대학원에 1학년으로 입학하여 공부를 하는데...
- 하나님께서 학비문제를 해결해 주시는데...
당시에 신동아건설 최순영 회장(장로)이 신동아 그룹의 십일조를 한국의 대학생들과
신학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는데...둘째 동서 과천교회 김점수 장로님의 소개로
그 장학금으로 2년동안 경기도 양지 켐퍼스에서 3학년은 사당도에서 3년의 대학원 과정을
마치게 됐다.
- 교회를 개척을 하면서 한국방송대학과 총신대학원 두개의 학교를 졸업을 했다.
그러나 교회는 개척교회의 수준을 벗어나지를 못한다....
- 1994년도에는 믿음이까지 태어나서 자녀들은 3으로 늘었다...
그런데 성도들은 오히려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