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딥스(버지니아 M. 액슬린 지음/ 주정일, 이원영 옮김)
딥스
버지니아 M. 액슬린 지음/ 주정일, 이원영 옮김
샘터 / 2002년 9월 / 308쪽
▣ 저자 버지니아 M. 액슬린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교수이자 저술가. 심리적, 정서적 장애아들을 위한 놀이치료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았다. 어린이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독특한 치료법을 『놀이치료』라는 책으로 소개하였고, 시카고 대학, 뉴욕의과대학, 콜롬비아 사범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딥스』는 저자가 놀이치료를 통해 직접 체험한 이야기로, 상처받은 한 어린이가 어떻게 자아를 찾아가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실화이다.
▣ 역자
주정일 - 원광 아동상담소의 설립자이자 소장 역임. 『아동학 발달』, 『아동복지학』, 『지혜로운 엄마』, 『놀이 치료로 좋아졌어요』 등의 저서가 있다.
이원영 -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부모 교육론』, 『젊은 엄마를 위하여』, 『당신 아이 버릇 들이기』, 『아이는 성공하기 위해 태어난다』 등의 저서가 있다.
▣ Short Summary
이 책에는 부모의 섣부른 기대에 가로막혀 자신을 숨겨야만 했던 아이를 온몸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놀이치료’의 과정이 실화를 통해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선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종전의 주장과는 달리, ‘정신적 장애가 있는 어린이를 치료하면 그 부모의 정신 건강도 치료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점이 흥미롭다.
『딥스』의 지은이 버지니아 M. 액슬린 박사는 어린이와 부모의 관계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임상심리학자이다. 일반적인 발달 단계보다 뒤떨어지거나 이상 행동을 보이는 어린이들을 상담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명백한 신체적 손상인 경우를 제외하면 아이들의 문제는 대부분 심리적인 문제, 특히 가정적인 문제이기 쉽다는 것이 그녀의 소신이다.
유명한 과학자 아빠와 전직 외과 의사인 엄마 밑에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자라는 다섯 살 아이 딥스는 정신지체로 의심될 정도로 발달이 느린 언어 능력, 비정상적인 행동들, 사람들과의 원만치 못한 관계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액슬린 박사는 딥스가 지능적인 문제가 아닌 정서적인 상처 때문에 혼란스러워 한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딥스에게 외부로부터 어떤 방식을 강요하기보다는 내부로부터 자유롭게 터져 나오는 유․무언의 언어들을 들어줌으로써 자아를 찾아나가도록 하는 ‘놀이치료’ 방식을 사용한다. 딥스는 치료 과정에서 부모, 특히 아빠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딥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다. 오직 자신만이 부수고 나올 수 있는 마음속의 감옥을 하나씩 차례로 부수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온다. 마음속의 미움과 두려움이 사랑과 자신감으로 바뀌며, 딥스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자아를 찾게 된다.
▣ 차례
옮긴이의 말
추천의 말
상처받은 아이
잠긴 문은 싫어요
회색빛 여인
A선생님, 도와주세요
집엔 가기 싫어
젖병을 빨래요
우리에 갇힌 토끼
엄마도 외로웠어요
다시 아기가 될 거예요
아빠를 산 아래 묻고 싶어
제이크 아저씨는 내 친구
놀이방에선 행복해요
파티는 끝났어
나는 나를 좋아해요
내가 엄마 아빠를 구했어요
엄마! 엄마가 좋아요
제 감정이 변하고 있어요
나는 바람, 아무도 못 보는 바람
나는 딥스입니다
그림의 제목은 행복
내가 만든 세계로 오세요
작은 딥스와 큰 딥스
놀이방이여, 안녕
재회
맺는말
딥스
버지니아 M. 액슬린 지음/ 주정일, 이원영 옮김
샘터 / 2002년 9월 / 308쪽 /
상처받은 아이
딥스는 유치원을 다닌 지 2년이 되도록 선생님들이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였다. 혼자서 꼼짝 않고 웅크리고 숨어 있거나 교실의 가장자리를 따라 기어다니고 누군가가 강제로 뭔가를 시키면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질렀다. 책만은 유일하게 거절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책을 읽어줄 때조차도 가만히 있을 뿐 대답은커녕 고개를 들거나 하는 작은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때는 정신지체아처럼 행동하지만 또 어떤 때는 일을 조용하고 신속하게 처리해서 지능이 꽤 높아 보이는 딥스를 보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몹시 당황했고 정신과의사들조차 손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유명한 과학자 아버지와 부유한 가정환경을 갖고 있었지만, 딥스의 아버지나 어머니는 똑똑한 여동생 도로시만 자랑스러워 할 뿐 딥스의 문제를 정면으로 풀어볼 태도를 갖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선생님들은 딥스가 공포와 분노로 가득 찬 자신 안의 감옥에서 뛰쳐나올 기회를 줘야 한다고 믿고 임상심리학자인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에는 딥스가 주변 친구들을 할퀴고 공격해서 다른 학부형들로부터 불만과 항의를 듣고 있을 즈음이었다. 나는 선생님들로부터 딥스에 관한 얘기를 들었고, 그들이 아이의 복잡다단한 성격을 명확하고 간명하게 이해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지만 딥스를 인간적으로 존중해주고 있다는 것에 매우 감동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딥스의 놀이 치료를 맡기로 결심했다.
잠긴 문은 싫어요
다음날 아침 재잘거리는 아이들 사이로 무표정한 얼굴의 딥스가 나타났다. 여느 아이들처럼 자기 외투도 스스로 벗지 않고 가만히 서 있더니 놀자고 달려온 아이를 향해 할퀼 듯 달려들기도 했다. 벽에 붙어서 교실 안을 기어다니다가 마주치는 많은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딥스의 손길은 재치 있고 부드러워 보였다. 책들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책을 한 권 집더니 구석으로 가서 벽을 보고 앉아 한 장씩 넘기며 읽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이런 딥스의 모습은 아주 일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날씨가 좋다고 바람을 잡아야 겨우 일어서는 딥스는 운동장에 나가서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채 소나무 조각과 땅만 바라보면서 외로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딥스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데 내가 다가가서 놀이방에서 나와 놀겠냐고 물으며 손을 내밀자 딥스는 뜻밖에도 말없이 내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긴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방을 나오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는 딥스의 반응이 무척 흥미로웠다. 내 손을 꽉 잡은 아이의 손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는 놀이치료를 위해 놀잇감이 가득 찬 방으로 딥스를 데려가 뭐든지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말하고 그를 지켜보기로 했다. 한동안 방 한가운데 서 있기만 하던 딥스가 이내 지루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주위의 물건들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인형집 가구들을 아주 천천히 들어올리며 물건 하나하나에 대고 낮고 둔탁한 목소리로 나무라듯 중얼거렸다. ‘침대? 의자? 책상? ……’
인형들을 만지는 동안 딥스의 중얼거림에서 나는 아이가 인형들을 ‘엄마, 아빠, 누이동생……’이라고 생각하며 가족 속에 자신을 포함시키는 것을 고통스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 고양이? 토끼?’ 작은 동물 인형들을 골라내서 이름을 말할 때마다 내가 알아들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래, 정말 토끼 같이 생겼네”라고 한마디씩 대꾸해주었다. 물건의 이름을 대고 내가 다양하게 대답해주는 것이 우리의 첫 대화방식이었다.
갑자기 딥스가 “싫어, 잠긴 문 싫어. 잠긴 문!” 하고 아주 절박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문을 닫는 것이나 잠그는 것에 대해 불행한 경험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더니 벽을 하나씩 뜯어냈다. 딥스는 이런 방식으로 아주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놀았다. 놀이 시간이 끝난 후 손 흔들어 인사하는 나를 보는 딥스의 표정은 미묘했다. 놀란 듯했지만 기뻐하는 것 같았다. 딥스와 첫 시간을 보낸 나는 선생님들이 딥스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듯이 딥스의 내적 힘과 가능성에 대해 깊이 신뢰하게 되었다.
회색빛 여인
딥스네는 뉴욕 동북쪽의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거리에 위치한 아름다운 외관의 벽돌집이었다. 외관과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정교하게 정돈된 거실에서 딥스의 어머니는 우아하지만 심각한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그녀는 매우 과학적인 태도로 자신의 아이를 내게 연구자료로 제공하겠다는 말을 했다. 자기 자식에 대해 무서울 정도의 자제력을 보이며 희망을 일찌감치 단념해버린 그녀의 냉정한 태도는 슬프고도 놀라웠다. 나는 그녀가 딥스보다 더 심한 두려움과 불안, 공포를 갖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 이 가정이 겪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느껴졌다. 딥스와 온갖 물건이 다 마련되어 있을 딥스의 놀이방도 생각해보았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면 무엇이든 다 있겠지만, 그 문은 너무 자주 잠겨 있을 것이다. 딥스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인 딥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이의 어린 시절에 어떤 역할을 했기에 스스로가 어머니로서 면접받거나 질문받는 것을 그다지도 두려워한단 말인가?
A선생님, 도와주세요
상담소의 놀이방에 들어선 딥스는 유치원 놀이방에서 만났을 때처럼 묻는 듯한 말투로 이름을 붙였다. ‘모래상자? 화판? 의자? 물감? 자동차? 인형? 인형집?’ 혼자서 돌아다니며 탐색해볼 시간을 주고 싶어 나는 딥스를 재촉하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주위를 살펴보고 탐색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방 한가운데 우뚝 멈춰 선 딥스를 지켜본 후 모자와 외투를 벗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딥스는 “그래요. 네 외투와 모자를 벗어라. 딥스야! 넌 모자를 벗어야 해. 외투를 벗어야 해. 딥스!” 하고 자신을 2인칭으로 지칭하며 명령했다. 그러면서도 딥스는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딥스에게 내가 도와주는 걸 원하느냐고 묻자, 딥스는 울먹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도움을 원한다면 나에게로 몇 걸음 더 다가오도록 유도하고 외투와 모자, 신발, 장갑을 벗겨 문고리에 걸어주었다. 천천히 방안을 탐색한 딥스는 물감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상표를 읽었고 크레용으로 색깔이름을 적기도 했다. 나는 이 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딥스가 주도하기를 바라며 우리 사이에서 함께 하는 경험을 쌍방향으로 대화함으로써 딥스의 노력을 내가 인정할 것임을 처음부터 알려주고자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주도권이 주어지면 최고로 자신 있는 일부터 한다. 칭찬이나 경탄 등은 자신이 나갈 방향을 결정할 때 참고할 것이다. 칭찬부터 하면 자신에게 더 중요한 부분을 탐사하려는 노력을 아예 차단하게 만들 수 있다. 딥스는 가끔 날 바라보았지만, 내가 마주 바라보면 얼른 눈길을 돌렸다. 그것은 자신의 울타리를 기웃거릴 뿐만 아니라 밖으로 나가길 원한다는 신호였다. 정확한 문제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딥스가 부모가 생각하는 대로 정신지체일 가능성은 확실히 희박했다. 집짓기 블록으로 탑을 쌓다 와르르 무너지자 딥스가 새로운 이름으로 나를 불렀다. “A선생님. 도와주세요.”
집엔 가기 싫어
두 번째 시간엔 자기 자신에게 ‘너’ 아닌 ‘나’라고 지칭하도록 유도할 목적으로 나는 의도적으로 ‘내가 너를’이라고 인칭을 정확히 붙여가며 말했다. 딥스는 내가 외투를 벗겨주자 첫날 내가 했던 대로 외투와 모자를 문고리에 걸었다. 인형집의 가구들을 다시 배치하던 딥스는 문 모양의 조각을 찾아 문을 닫으려고 애썼다. 딥스는 모든 방과 지하실에도 문을 붙이고 문고리를 그려 넣으며 꼭 잠겨져 있어야 안심이 된 듯 보였다. 또 병정들을 갖고 놀다가 하나를 총살시키기도 하고 모래에 묻기도 하며 꼬박꼬박 그 과정을 말로 설명하였다.
끝나기 5분 전, 나는 약속과 한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리려 하는 딥스에게 5분밖에 남지 않았음을 상기시켰다. 딥스는 내 말을 무시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감통에 있는 색깔을 모두 사용해서 집과 나무, 하늘, 잔디, 꽃, 해를 그린 그 그림은 구조, 형태, 의미를 다 지닌 멋진 작품이었다. 딥스는 ‘A선생님 집’이라며 그림을 나에게 선물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나 칭찬 대신 “이것을 나에게 주고 싶구나. 그렇지?” 하며 관계를 진척시키는 것보다는 의사소통의 통로를 좀더 열어두고 속도를 늦추는 방법을 택했다. 급작스레 칭찬한다든지, 나의 가치관이나 기준을 드러낸다면 자신만의 생각이나 느낌을 찾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딥스에게 약속된 1시간이 지났으니 집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딥스는 잔디를 더 그려야 한다던가 인형집을 고쳐야 한다는 등 좀더 있을 방법을 계속해서 생각해내었다. 딥스는 다시는 집에 가지 않겠다고 소리치며 떼를 썼다. 나는 딥스가 집에 가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말하며 일주일에 한 시간만 이 방에 있을 수 있으며 다음 주면 또 올 수 있다고 설득했다. 지금은 아이가 힘들어할지라도 아이들은 예측할 수 있고 일관되며 현실적인 한계를 세웠을 때 안정감을 얻는다. 나는 딥스에게 감정과 행동은 다르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딥스도 조금은 깨달은 것 같았다. 대기실로 간 딥스는 첫째 날과 달리 어머니께 귀찮게 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젖병을 빨래요
딥스는 자주 자기는 읽을 줄 알고, 셈할 줄도 알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실제로 딥스는 언어나 사물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정서적인 문제를 건드릴 때마다 늘 읽는 능력을 보이는 것은 드러내기에 어려운 감정을 건드리는 것보다는 지적 개념을 건드리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은 딥스가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기대하는 것과 자아를 찾으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고 있음을 말해준다. 어떤 때는 매우 똑똑한가 하면 어떤 때는 아주 아기 같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딥스가 유치원이나 집에서 그 능력을 숨기는 이유는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자신이 지닌 모든 능력을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 아닐까?
딥스와 가족들 사이에 두꺼운 장벽이 가로막혀 있는 이유는 예측할 수 없고 매우 복잡할 것이다. 놀이방에서 젖병을 빨며 어린 아기처럼 행동하는가 하면, 정확하고 집요하게 지적인 표현을 하는 딥스를 보면서 떠오르는 여러 의문점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했다. 오늘 딥스는 집과 놀잇감 병정들을 가지고 논 뒤 ‘안녕!’ 하고 아무 말썽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이 놀라운 아이에게 세상에서 자기 자신보다 더 자신의 내적 세계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과 책임감 있는 자유 의식은 그 사람의 내면에서 자라고 발달한다는 두 가지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놀이 치료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였다.
우리에 갇힌 토끼
놀이방으로 들어선 딥스는 물건들이 전에 자기가 해놓은 대로 놓여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화가 난 듯했다. 지난주에 딥스는 집에 가기 전에 놀잇감을 옮기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약속을 안 했고 설명도 안 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이 세상 어떤 것도 안정되어 있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하고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 순간 딥스는 세상은 쉴 새 없이 변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느꼈을 것이다. 이제는 그것에 어떻게 적응해 가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했다.
딥스가 처음으로 유치원 얘기를 했다. 유치원에 사는 토끼에 관한 것이었는데 딥스가 아이들과 활발히 어울려 놀지는 않아도 여기저기 살금살금 기어다니면서 관찰하고 배우고 생각하며 어떤 결론을 궁리해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딥스는 우리에 갇힌 토끼를 자유롭게 해주려고 남몰래 토끼집 문을 열어준다고 했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불렀다. 밝고 행복해 보이는 딥스의 눈은 유치원 생활이 자기에게 퍽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이 날은 딥스의 아버지가 딥스를 데리러 왔다. “오늘은 독립기념일이 아닌 거 알아요?” 하고 묻는 딥스를 아빠는 너무나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듣기나 했는지 모르지만 아무 의미 없는 얘기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딥스가 계속 얘기를 하자 아빠는 딥스를 문 밖으로 밀쳐내며 이를 악물고 아이를 저지시켰다. 놀이시간 동안 녹음된 딥스의 말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거기에 그렇게 뻣뻣하고 꼿꼿이 서 있다니, 쇠로 만든 울타리의 쇠막대기 같아.” 얼마나 감지력이 예민한 아이인가. 바로 아빠 이야기였던 것이다. 아버지와 이야기하려 애를 쓰는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노골적인 모독을 받고서도 딥스는 나름대로 살아가기 위해 내적인 강인함을 길러왔음에 틀림없다.
엄마도 외로웠어요
면담을 요청한 딥스의 어머니가 딥스가 너무나 걱정이 된다며 울기 시작했다. 딥스가 이젠 예전과 달리 자기 방에서 자주 나오는데도 그녀는 더 불행해 보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물론 그녀가 예전보다 딥스의 불행을 더 느끼게 되었을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딥스가 집에서 자신의 느낌을 더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들 부부는 계획에 없었던 임신으로 절망했었고 더구나 정상이 아닌 아이를 낳자 모욕감에 일체의 사회 활동을 끊어버렸다. 유명한 과학자였던 아버지는 유능한 외과의인 아내를 자랑스러워했는데 딥스의 출생 이후 딥스의 어머니는 자신감을 잃고 의사라는 일도 포기해버렸다. 그들은 남들에게 딥스가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정신과 치료를 시도했다가도 곧 포기해버렸다.
원래 다정했던 남편은 가정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고 그녀는 집안에서만 딥스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고 한다. 딥스의 방은 놀잇감은 물론, 음반, 책 등으로 가득 채워놓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바보처럼 굴어서 그녀는 자신의 노력이 아무 의미가 없다며 더 이상 딥스에게 희망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놀이치료를 받고부터 딥스가 아주 불행해 보인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딥스를 데려갔던 날, 아버지는 바보같이 지껄이는 아들에게 화를 냈는데, 그러자 딥스도 화를 내며, 바보처럼 소리를 지르기만 하던 예전과는 달리 “난 아빠를 미워해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들의 말에 슬프게 우는 남편을 보고 그녀는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이다.
자신들의 비밀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끊임없이 경계했던 그녀나 그녀의 남편은 어린 시절에 명석한 지능만이 자신을 방어해준다고 느꼈던 사람들일 것이다. 지능을 방패로 삼았기 때문에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건설적으로 해소해내는 법을 전혀 배울 수 없었을 것이다. 딥스도 역시 이것을 배웠다. 불안을 느끼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읽음으로써 감정적인 것과 직접 맞서는 기회를 묘하게 빠져나갔다. 딥스의 부모 역시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피해자였던 것이다.
다시 아기가 될 거예요
딥스가 물감을 가지고 놀다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거울벽을 두드리며 말했다. “저쪽엔 다른 사람의 방이 있어요. 전에는 어떤 사람들이 캄캄한 방에 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없네요.” 나는 깜짝 놀랐다. 관찰자들이 우리를 볼 수 있도록 장치된 그 거울은 이쪽 방에서는 옆방이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어린이는 비록 그때그때 얘기하지 않지만, 주위 사람들에 대하여 민감하게 인식한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배우는 경험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며 살 것이다.
딥스는 이제 곧잘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크게도 부른다. 이 날은 아름다운 선율의 멜로디를 작곡하여 불렀는데 맑고 달콤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작사한 말들은 운율의 느낌과는 대조적이었다. ‘오-난 미워요-미워요-미워요. 난 벽이랑 잠긴 문이랑, 나를 그 속에 처넣은 사람들이 미워요. 난 눈물과 화난 말들도 미워요. 난 작은 손도끼와 망치로 그 사람들을 때려죽일래요. 침을 뱉을래요.’ 집에 가기 전 딥스는 오늘은 여동생 도로시도 오기로 했다면서 의사 선생님의 주사 바늘로 도로시를 아프도록 찔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기실로 간 딥스는 여동생 도로시를 무시하고 어머니 손을 잡고 떠났다.
아빠를 산 아래 묻고 싶어
딥스는 이제 스스로 외투와 모자를 벗어 문고리에 걸어놓는 것에도 익숙하다. 모래를 쌓아 언덕을 만들어 병정놀이를 하더니 하나씩 행진시켜 모래 상자 속에 있는 조그만 양철집으로 들여보냈다. 딥스는 병정들이 산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행복했다고 했다. 그런데 곧 한 병정을 모래 아래 묻고 무덤을 만들더니 다시는 어느 산에도 오르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산 아래 묻은 그 병정은 바로 아빠라고 했다.
제이크 아저씨는 내 친구
딥스는 유치원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고 선생님들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 딥스가 마음을 연 유일한 상대였을지 모르는 정원사 제이크 아저씨에 대해 특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는 딥스가 좋아하는 나무를 어쩔 수 없이 가지치기해야 했을 때, 딥스를 위해 나뭇가지를 잘라다주었고 딥스는 그 후로 그 나뭇가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또 제이크가 해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기억해서 나에게 들려주었다. 또 하나 제이크의 선물인 ‘온 세상을 여행하고 돌아온 늙고 지친 이파리’도 이 따뜻한 아이는 액자에 넣어 소중히 지키고 있었다.
이제 딥스는 자기가 돌아갈 시간을 미리 염두에 두고 준비할 줄도 알며 ‘더 머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어리고 조그만, 그러나 강한 아이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돌아갈 때, 나는 제이크를 떠올렸다. 자신의 이해심과 따뜻한 친절이 이 어린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그는 알고 있을까? 제이크가 선물했다는 나뭇가지 끝부분과 가늘고 말라비틀어진 작은 나뭇잎을 생각하며 딥스의 말을 떠올렸다. “아마 아저씨는 내 친군가 보죠?”
놀이방에선 행복해요
홍역을 앓아 한 주 쉬고 다시 찾아온 딥스는 내가 보내준 카드를 받고 너무 기뻤다면서 놀이방에서의 시간이 아주 중요하고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자신을 2인칭으로 불렀던 말하기 방식이 조금 변화하여 이제 자신과 대화를 하는 식으로 말을 했다. “딥스야, 구두 벗고 싶니? 아니.” 하는 식으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했다. 딥스는 음악과 책과 그림 그리는 것,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책 읽는 걸 좋아했는데 책에서 알게 된 것들을 실생활에서 찾아내고 자기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다.
분명 딥스의 부모는 예민한 지적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충분한 것들을 마련해주고 있었고 대화를 통해 많은 것들을 가르치려고 시도했다. 아이의 정신적 결함을 인정하면서도 같은 연령의 보통 아이들의 능력에도 훨씬 넘치는 물질들을 제공해왔다는 건 모순이다. 분명히 그들은 딥스의 문제가 능력 부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딥스는 왜 아직도 재능이 있다가도 돌연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행동을 보이는 걸까?
파티는 끝났어
딥스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일곱 개의 컵을 테이블에 놓으며 여섯 명의 아이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 준비를 했다. 다과회를 재연하던 딥스는 플라스틱 주전자의 물을 컵에 따르면서 말투를 바꾸어 엄마 목소리와 억양을 정확히 흉내내며 말했다. “그건 너무 많아. 컵마다 차를 조금만 담고 우유로 채우라고 했잖아. 6번 컵에 차가 너무 많다. 설탕 그만!” 제법 엄격한 목소리였다. 딥스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설탕 대신 모래를 한 숟가락씩 넣고 식탁에 앉았다.
여전히 엄마 흉내를 내며 “토스트를 얌전하게 먹어야 해.” 딥스가 토스트를 집으려고 팔을 뻗다가 컵 하나를 쓰러뜨렸다. 그러자 용수철처럼 일어서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파티는 더 이상 할 수 없어. 파티는 끝났어!”, “바보! 바보! 바보!” 딥스는 흐느낌으로 목이 메었다. 의자를 걷어차고 선반을 몽땅 치워버리는 딥스에게 그런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라고 말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딥스는 자기가 좀더 조심했어야 한다고 사과했다. 딥스에게 조금 부주의하긴 했지만 바보는 아니라고 말하자 딥스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피어났다. 마음의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조그만 힘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나를 좋아해요
딥스와 어머니가 함께 와서 나를 보더니 “저것 보세요, 엄마. 저 예쁜 색의 드레스를. 참 예쁜 색이지요? 드레스 참 예쁘지요?”라며 소리쳤다. 평소에 조용하게 들어서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였다. 딥스가 내게 보여주려고 생일 선물로 받은 것 중 하나를 갖고 왔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자랑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딥스는 엄마에게서 선물로 받은 국제 통신부호 전신기를 꺼내놓고 사용법을 소개했다. 설명문을 읽은 뒤 알아들을 수 있겠다고 하자 딥스는 기대에 차서 종이 위에 부호를 적어놓고 무전을 보냈다. 딥스가 보내는 무전, ‘나는 딥스예요. 나는 딥스예요. 나는 딥스예요’ 이어서 ‘나는 딥스를 좋아해요. 선생님도 딥스를 좋아해요. 우리는 둘 다 딥스를 좋아해요’를 읽자 딥스는 내가 맞췄다며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딥스는 통신문이 적힌 종이를 접어 서류 상자 안에 있는 이름 카드 뒤에다 넣고 우리 두 사람만의 상자로 간직해 달라고 했다.
내가 엄마 아빠를 구했어요
인형놀이를 하던 딥스는 엄마와 아빠를 집에 가두고 불을 지르는 설정을 했다. 딥스는 재빨리 손을 넣어 인형집에서 엄마와 아빠 인형을 꺼내어 구하려 했으나, 다시 뒤로 물러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마치 진짜 불을 만지는 것처럼 뜨거워했다. 엄마, 아빠가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른다며 두 손을 마주 잡은 딥스의 볼에는 눈물이 흘렀다. 비틀거리며 나에게로 와서 내 목에 팔을 두르고 울더니 방 안에 갇혀 있을 때가 생각나서 그런다고 흐느꼈다.
딥스는 눈물을 닦고 인형 집으로 다가가 소년 인형을 데려다가 집 앞에 세우고 소리쳤다. “내가 구해 드릴게요! 내가 문을 열고 내보내 드릴게요! 그래서 아이가 문을 열고 불을 꺼서 엄마와 아빠는 무사했어요. 내가 구했어요. 불에 타지 않게 했어요.” 딥스는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웃고 있었다. 이번 상황은 딥스에게 정말로 힘든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 방 안에 갇혀 있던 기억이 딥스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잠겨 있던 건 방문만이 아니었다. 딥스에게 필요한 사랑과 존경, 이해, 그 모두가 닫혀 있었던 것이다. 방문을 나서는 아이는 스스로 파헤친 과거의 서러움을 모두 뒤로하고 가는 듯 보였다.
엄마! 엄마가 좋아요
처음에는 온갖 문을 다 걸어 잠궈야 한다던 딥스가 모래 상자에 다른 아이가 만들어놓은 담장을 허물었다. 그러더니 창문을 열고 공기에게 말을 걸어다. 아빠는 사람에게만 말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자기 마음대로 하겠단다. 딥스는 아빠와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아빠는 대답하지 않는 자신에게 화를 내게 된다. 딥스와 아빠는 대화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 자신을 일인칭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자아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방문을 나서며 나에게 인사를 하더니 엄마에게 뛰어가서 두 팔로 느닷없이 엄마를 껴안았다. “엄마! 엄마가 좋아요.” 딥스가 소리쳤다. 딥스의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이 돌발적인 표현에 깜짝 놀랐다. 그녀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그녀는 나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는 딥스의 손을 꼭 쥐고 돌아갔다.
딥스가 자랑스러워요
“이제는 신경질도 안 부려요. 손가락도 안 빨고 우리를 볼 때도 똑바로 쳐다보고요. 우리가 말을 걸면 대답도 곧잘 한답니다. 동생이 집에 있을 때는 가끔 데리고 놀기도 해요. 때로는 내게 먼저 다가와 말을 붙여요. … 딥스도 이제 자신이 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느끼나 봐요.” 딥스 어머니가 찾아와 행복에 찬 눈으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딥스가 두 살 때부터 가르치고 시험하면서 아이에게 정상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것을 강요하며 글과 산수를 가르쳤다. 하지만 그것은 딥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보다 무엇이든 잘했던 자신에게 스스로를 증명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딥스의 변화를 통해 그녀도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토록 능력이 많고 마음이 따뜻해서 주위를 감동시키는 아이에게 항상 시험만을 강요했던 것을 미안해하고 있었다. 벽을 쌓고 있던 남편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있다고 한다. 부모 자신들이 치료에 참여하지 않는 한, 아이의 치료는 진전되지 않는다. 딥스의 경우에는 다행히도 부모들이 아이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에, 아이의 성장을 기뻐하고 이해했으며 함께 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아를 되찾은 건 딥스뿐 아니라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바람, 아무도 못 보는 바람
다음 주,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그렇지 않아도 딥스의 유치원 생활이 궁금했던 차라 선생님들을 직접 만나보았다. 우선 선생님들은 행복해 보이고 침착하고 친구들에게도 관심을 보이며 보통 때는 말도 잘 하고 자기 자신을 ‘나’로 표현하게 된 딥스를 보고 기뻐서 제정신들이 아니라고 했다. 딥스는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면 인사를 했고 자기 외투와 모자를 벗어 자기 옷걸이에 걸었다. 이야기나 음악을 듣기 위해 차츰 의자를 끌고 가까이 다가갔고, 때로는 묻는 말에 대답도 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딥스가 글도 쓸 줄 안다며 보여준 종이를 보고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딥스가 썼다는 엉성한 글씨, 단순한 그림. 왜 딥스는 자기 능력을 줄여서 표현했을까? 어쩌면 딥스가 또래 아이들에게 적응하고 있다는 걸 나타내는 걸까? 선생님들은 딥스가 다른 아이들보단 못하지만 읽느라 애를 쓰고 있다며 기뻐했다. 내가 만일 딥스는 그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고 하면 선생님들은 실망할 것이다. 사실 오랫동안 두 개의 세계에서 살아온 딥스가 갑자기 통합되길 바라는 건 무리이리라.
지금은 딥스의 사회성 발달이 다른 어떤 발달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지적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딥스가 자신의 능력을 죽이고 있는 것은 문제이며, 자기 능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부감 없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딥스에게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 쓰고 읽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적응하는 일이 더 중요할 것이라 판단했다. 높은 지적 성취가 개인이나 타인에게 유익하게 건설적으로 쓰여지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딥스가 유치원 행사에서 자작곡 노래를 불러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바람. 부는 바람. 부는 바람. 올라가자. 올라가. 산을 오르고 구름을 움직이고 나뭇가지를 구부리고 풀을 나부끼게. 아무도 바람을 막을 수 없어. 나는 바람. 정다운 바람. 아무도 못 보는 바람. 나는 바람이야.” 자기를 찾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태도, 주위 관계에 대해서 차츰 눈뜨고 있는 딥스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과거의 경험 가운데 파헤쳐지지 않은 숨은 감정들이 있음이 확실하다. 딥스는 앞으로 남은 놀이치료를 통해 숨어 있는 미움, 공포 같은 감정을 의식 세계로 끌어올려 해소시켜야 한다.
나는 딥스입니다
“옛날에 한 남자아이가 아빠, 엄마, 여동생과 함께 큰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빠가 집에 돌아와 서재에 들어갔을 때 아이가 노크도 안 하고 서재에 들어갔습니다. ‘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라고 아이는 소리쳤습니다. ‘나는 당신이 미워요.’ 그러자 아빠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그만해.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제발 나를 미워하지 말아다오.’ 그렇지만 아이는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벌해야겠어요. 이 바보 같은 사람. 당신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딥스가 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지어봤다며 녹음기에 대고 말했다. 하지만 곧 유치원에서 아빠에게 줄 진흙 재떨이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다시 녹음기를 틀고 “나는 아빠를 미워합니다.”라고 말했다. 모래 상자로 뛰어올라 감옥을 만들어 아빠를 가두고 용서를 빌게 만들었다. 아빠가 자기에게 심하게 굴었으니 벌을 줘야만 한다고 했다. 잠시 후 결국은 모래를 파더니 아빠 인형을 구해냈다. 그리고 아빠 목소리로 “딥스야! 나는 널 사랑한다. 제발 도와다오. 네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오늘 딥스는 아빠와 아침 인사를 나누었고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 해변으로 여행 갔을 때도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행복했다고 했다. 아빠인형을 묻은 것은 그냥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딥스는 다시 한 번 “오늘 나는 아빠에게 말을 걸었어요.” 하며 행복하게 웃었다. 아빠와의 관계가 개선된 뒤에야 비로소 아이의 미움과 복수심이 보다 개방적이고 직접적으로 표현되었음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림의 제목은 행복
딥스는 유치원에서 엄마, 아빠, 동생을 위한 선물을 만들고 있다. 동생에게 줄 독약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동생이 기숙사 유치원에서 사느라 외로웠을 거라고, 집에 오는 게 좋다고 했다. 이제 증오와 복수는 너그러운 용서로 바뀌었다. 딥스는 자신의 엉킨 감정들과 씨름하면서 자아 개념을 구축해왔다. 딥스는 미워할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다. 저주할 수도 있고 용서할 수도 있다. 감정이 서로 얽히고 전환되면서 그 날카로운 모서리가 깎일 수 있음을 경험했고 감정을 표현하는 일과 책임감 있게 조절하는 일도 배웠다. 지금 내 앞에서 고개를 당당히 들고 서 있는 딥스는 이렇게 스스로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면서 자신의 능력과 감정을 보다 건설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작은 딥스와 큰 딥스
작은 모형 놀잇감으로 마을을 지은 딥스가 인형 중에 ‘딥스’라고 부른 인형과 ‘큰 딥스’라고 부른 인형을 집었다. 큰 딥스는 유치원에 가는데 작은 딥스는 몹시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몸이 점점 녹아 없어진다고 이야기했다. 작은 딥스를 모래 상자에 묻어버린 딥스는 작은 딥스는 없어졌지만 큰 딥스는 아주 크고 힘세고 용감하며 겁내지 않는다고 끝을 맺었다.
딥스는 스스로 한 고비를 넘겼다. 자신과의 화해였다. 상징적인 놀이를 통해 스스로의 상처 입은 감정들을 쏟아놓았고, 자신감과 안정감을 가지고 솟아올랐다. 자신을 찾아 헤맸고 마침내 자랑스러운 자아를 깨달았다. 자기 안의 능력과 맞먹는 균형 있는 자아 개념을 세우기 시작하며 개인적 통합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아빠, 엄마, 여동생을 향한 적개심과 복수심은 아직도 가끔씩 일어나지만 그것이 증오와 공포로 타오르지는 않는다. 딥스는 스스로 작고 미성숙하고 겁 많은 딥스를 크고 안정되고 용감한 자아의 개념으로 바꾸어놓았다.
놀이방이여, 안녕
방학이 끝난 후 마지막으로 놀이방을 찾은 딥스는 방과 방 안의 사물 하나하나에게 잘 있으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딥스는 이제 아빠에게 야구를 배운다고 했다. 아빠도 잘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헤어질 시간, 딥스는 깡충깡충 뛰면서 엄마한테 가서 손을 잡았다. 그들은 떠났다. 자기를 발견하여 행복하고 유능해진 소년과 그 재능 있는 소년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된 그의 어머니가 함께.
재회
딥스와의 마지막 만남이 있고 2년 반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길모퉁이에 있는 1층 아파트였는데, 열린 창으로 귀에 익은 목소리, 아주 친숙하고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딥스! 딥스가 아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로 이사를 온 모양이었다. 며칠 뒤, 우린 길에서 마주쳤다. 서로 쳐다보았다. 딥스가 활짝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딥스는 물론 놀이방에서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달력에서 놀이방에서의 마지막 날을 떼어 빨간색으로 칠해서 액자에 넣어 방에 걸어놓고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선생님이 “이것은 모두 너를 위한 거야. 재미있게 놀아라. 너를 방해할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며 처음에는 놀이방이 무서웠지만 차츰 나를 믿게 되었고 “적하고 끝까지 싸워서 내게 상처 줘서 미안하다고 말할 때까지 싸우라”고 했던 내 말에 적들을 찾아내 싸웠고 그래서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사랑을 느낄 때는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랬다. 딥스는 정말 변했다. 밝은 표정으로 아주 행복해 보이는 딥스는 큰 아이가 되어 있었다.
행동으로 옮길 참된 의지를 가지고
<이 편지는 같은 반 동료이자 친구인 한 학생을 퇴학시킨 것에 반대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들의 무감각과 몰이해와 동정심 부족에 매우 분개합니다. 제 친구는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저는 그를 믿습니다. 그는 역사상의 중요한 날짜를 확인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정확한 날짜를 알아야만 그 사건의 시기를 설정할 수 있으므로 그것을 반드시 확인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정확히 확인하려는 것이 무엇이 잘못입니까? 솔직한 의문을 무지로 덮어버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시험의 목적이 대체 무엇입니까? 교육적 성취도를 높이려는 것입니까. 아니면 잘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고통과 모욕감과 심한 상처를 주기 위한 도구입니까?
진도가 너무 빨라서 부정행위를 해야만 따라갈 수 있다면 전학을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선생님 한 분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 친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에 심한 모욕을 느꼈습니다. 우리 학교에 들어와 우리들과 같이 있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놓지 않는다면, 나는 그런 학교를 수치로 여길 것입니다. 세상에는 권위나 힘의 과시보다, 복수와 처벌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교육자로서 선생님들께서는 무지와 편견과 편협의 문을 열고 나오셔야만 합니다. 친구가 받은 자존심의 상처에 대하여 사과하고 복학시키지 않는다면, 저도 학교에 다니지 않겠습니다.>
- 행동으로 옮길 참된 의지를 가지고, 딥스.
딥스네가 다시 이사를 가서 연락이 끊긴 지 몇 년 후, 영재 학교에서 일하는 친구가 그 학교 신문에 실린 편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열다섯 살이 된 딥스가 학교 선생님들에게 쓴 편지였다. 나와 딥스와의 관계를 모르는 친구는 이 아이가 아주 총명하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모든 사람과 사물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예리하고 훌륭한 지도자감이라고 칭찬했다. 친구는 결국 학교가 그의 말에 따르게 될 것이라면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