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요약

[스크랩] 그대가 꿈꾸는 영국 우리가 사는 영국 (김인성 지음)

강인철 2009. 10. 7. 07:11

그대가 꿈꾸는 영국 우리가 사는 영국

김인성 지음

▣ 저 자  김인성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국 에딘버러대학의 연수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그 후부터 강의를 해 왔다. 런던대학의 킹스 칼리지에서 영문학 이론 및 여성학 연구를 했다. 저서로는 『시인의 자리가 있는 곳』『셰익스피어를 만나러 가는 길』 등이 있고, 역서로는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역사 속의 페미니스트』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우리는 영국에 대해서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는가. ‘영국’하면 으레 여왕, 영국 왕실 이야기, 의장대 사열, 곰털모자 병사, 셰익스피어, 이튼스쿨,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등을 생각하는 게 우리가 영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전부가 아닐까? 이 책은 그러한 획일적인 이미지를 없애 줄 영국생활 체험기이다. 10년을 영국에서 살고 있는 저자는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좋든 나쁘든 이 생활의 기억을 전할 수 있는 기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적어 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영국에서 사니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시골에서 늘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살면서 움직이는 시간의 한 자락을 잘라 전해 주고 있는 이 책의 이야기들은 감칠맛을 내며 우리에게 안겨든다. 영국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비롯하여 교육제도, 영어와 미어의 차이, 살면서 소소히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 그리고 그에 대한 정보 등 사람냄새 폴폴 나는 따끈한 체험 수기들이 상세하고도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다.

▣ 차 례

1부 우리가 서쪽으로 간 사연

1. 영국에서 나를 소개하자면

2. 우리가 철학적이지 못한 까닭

2부 남 사는 이야기

1. 그곳에 화성인이 있다

2. ‘대학을 안 나왔다고’

3. 나는 ‘고드’가 싫어요

4. 영국은 ‘없다’

5. 영국의 매력

3부 남들 틈에 우리 사는 이야기

1. 영국에 사는 설움

2. 3인조 사건

3. ‘저 푸른 초원 위에 하얀 집’

4. 여행의 노래

1부 우리가 서쪽으로 간 사연

영국에서 나를 소개하자면

서양 문화에 살면서 혼란스러운 명명 중의 하나가 여자에게 붙이는 경칭이다. 나는 ‘한’이라는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한 여자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Mrs. Han'으로 통한다. 동네 사람들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는 결혼 전의 성인 킴(Kim)을 사용하거나 서양 여자 이름 중에 킴벌리(Kimberley)라는 이름을 줄여서 킴(Kim)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끼리 영어 경칭을 붙이면 여기에 혼돈이 더해져 나는 Mrs. Han이 아니라 Mrs. Kim이 된다. 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한국 문화와 체재국 문화가 마구 엉켜져 있는 모양이다. 그러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 가면 나의 일은 나의 결혼 유무와 아무 관계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Ms. Kim 이나 Dr. Kim, Prof. Kim이 된다. 서양 여자들은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1970년대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이젠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남자가 ‘Mr.'를 쓰듯 여자도 'Ms.'를 많이 쓴다.

우리 나라는 결혼 후에도 여자들이 결혼 전 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부인’이라고 쓰는 단어의 애매함을 들어 우리들의 명명 문화가 서양보다 훨씬 더 여성보호 차원이 있었던 양 열렬히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옛날 우리 나라 여자들의 명칭도 서양식과 유사한 곳이 있었는데 여자는 결혼하면서 남편의 성을 다르고 성 뒤에 ‘실(室)’ 자를 붙였다. 한씨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고 아직 아기가 없는 동안에는 한씨의 ‘안사람’이니 ‘한실’이라고 불리는 식이다. 이는 바로 영어의 Mrs. Han과 동의어가 된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정경부인은 정경대감의 정실부인을 부르는 호칭인데 여자 혼자만의 감투로 정경부인이라 불리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서양에서는 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서 그 작위를 가지는 경우가 있었다.

물과 기름

물과 상극인 서양의 음식을 만들다 보면 서양 문화와 자연의 거리가 새삼스럽다. 우리는 무엇이든 마지막에는 물로 헹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서 그릇을 세제로 씻고 나서도 깨끗한 물로 헹구고, 목욕 후 비누로 씻고 나서도 깨끗한 물로 헹군다. 그렇지만 서양 사람들은 거품 목욕을 즐기고 나와서 거품이 여기저기 묻어 있는 그대로 큰 수건으로 닦고 말린다. 그릇을 씻을 때도 세제로 그릇을 씻으면 그대로 건져서 접시걸이에 꽂아 두었다가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거나 마른 행주로 그릇을 닦아서 쓴다. 헹군다는 법이 없다. 깨끗이 하기 위해 세제로 씻었는데 왜 물로 다시 헹구어서 더럽히느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추운 날씨에 함께 외출을 하고 돌아와 차 한 잔 주겠다는 이웃이 있었다. 산책을 나서기 전에 아저씨가 식기세척기를 작동시키는 걸 잊었던 바람에 마땅한 찻잔이 남아 있지 않아서 아줌마가 차를 끓이는 동안 아저씨는 부지런히 그 그릇들을 꺼내 씻었다. 여러 차례 영국인들이 거품 설거지를 보아 온 나는 마음 속으로 ‘제발 이번만은 헹구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아저씨는 습관대로 거품이 보글거리는 접시를 그대로 씻어서 선반에 꽂았다. 그리고 나서 마른 행주로 닦고 그 잔에 차를 따랐다. 마실 것이냐 말 것이냐. 그 순간은 가히 햄릿의 고민이었다.

2부 남 사는 이야기

그곳에 화성인이 있다

귀족이 평민이 되는 건 수상이 되기 위해 백작의 작위를 포기했던 더글러스-홈 수상의 경우처럼 개인의 결단으로 가능하지만 평민이 귀족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게 주인의 딸이었던 대처 수상은 우리들에게 난관을 극복하고 자기 인생을 개척한 ‘철의 여인’으로 남아 있지만 귀족들과 왕족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영국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왕족이 아니다. 영어로 왕족에는 ‘푸른 피(blue blood)'라는 별명이 따른다. 영국인들이 이 이질감을 모를 리 없다. 아무리 똑같이 피부색이 희고, 사는 지역이 비슷하다고 한들 붉은 피를 가진 영국인이 푸른 피를 가진 왕족이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게다가 지금 영국 왕족인 윈저 왕가는 피로 따지면 영국인이 아니라 독일인이다. 이렇게 피가 다른 사람들끼리니 영국인들도 기껏해야 왕실에서 나오는 선전용 잡지나 관광안내서에서 보여 주는 대로 그들의 동화 같은 생활을 부러워하거나 반대로 유명인들의 사생활 폭로가 주업인 황색신문의 도발적인 고발성 사진을 보면서 팔자타령을 하는 게 고작이다.

다이아나 왕자비는 결혼 전에 런던의 주택가에서 학령 전의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유아 교사 일을 1, 2년 정도 했다. 영국의 켄트 주의 작은 여자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스위스로 건너가 유럽에서 귀족이나 부유층이 딸들이 결혼 전 다니는 ‘신부학교’에 다녔다. 그 학교의 학생들은 수업을 들으며 학교에서 숙식을 같이 한다. 그들이 묵는 기숙사는 집안 형편에 따라 각자 속해 있는 방도 다르고, 서비스도 달라지며, 가능하다면 하녀도 거느릴 수 있다. 학생들의 수업도 소위 상류층 숙녀들의 교양과목을 배운다. 좀더 실무적인 과목으로 ‘하인을 다루는 방법’, ‘파티의 여주인 노릇하기’ 등을 배우기도 한다.

이제는 귀족들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사업이나 돈벌이에 적극적이다 보니 전통적인 신부학교들이 많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지금도 유럽과 영국의 부자들 중에는 딸들을 이런 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옛날부터 스위스와 그 주변 지역의 신부학교들이 유명했던 까닭에 다이아나도 스위스의 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이 학교들은 우선 수업료가 엄청나서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못 되는 점을 감안하면 다이아나가 그저 그런 고졸 아가씨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된다. 다이아나가 태어난 스펜서 백작 가문은 영국 귀족 가운데에서도 오래된 편이고 노스햄프턴 주의 비옥한 땅과 양모 산업으로 큰 재산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녀의 보모 일은 그야말로 직업경험, 사회경험일 뿐 엄밀한 의미의 직업은 아니었다. 결혼 전 다이아나가 보모 일을 했던 것은 모든 신부수업을 끝낸 귀족 처녀가 결혼을 기다리면서 잠시 세상과 닿아 있기 위한 장치였다.                                                      

‘대학을 안 나왔다고’

찰스 왕자는 대학을 나왔다는 점 때문에 더욱 특이해진 왕족이다. 그 이전의 왕자들이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를 다니긴 했지만 찰스처럼 정식으로 입학하고 졸업한 경우는 없다. 왕자의 대학 입학이니 특별한 조처가 있었지만 영국 일반인들의 대학 입학과 크게 다른 절차를 밟은 것은 아니다.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는 우리들에게 또 다른 설렘을 주는 영어단어다. 영국에서 대학 입학 면접이라고 부모가 극성을 부리지는 않지만 두 대학이 면접 날에는 유독 학생들을 따라온 부모들도 시내가 북적이고 주차가 곤란해진다. 영국 입시에서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두 대학만 특별히 취급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두 대학은 다른 대학들보다 두 달 먼저 원서를 마감한다. 국가에서 준비한 대입시험 이외에 두 대학만의 입학시험, 특히 수학시험을 요구할 수가 있다. 현행 영국의 입시제도에서는 모두 6개 대학까지 지원할 수 있는데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만큼은 동시에 지원할 수 없다.


미국과 우리 대학의 구조는 종합대학 안에 여러 단과대학들이 있고, 단과대학 안에 관련 학과들이 있다. 이에 반해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를 포함한 유럽의 오랜 대학들은 단일 캠퍼스의 종합대학이 아니다. 즉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라는 이름의 어떤 대학 캠퍼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옥스포드라는 시에 있는 대학들, 케임브리지 시에 세워진 대학들을 모두 가리켜 옥스포드대학, 케임브리지대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옥스포드 시에 있다고 해서, 혹은 케임브리지 시에 있다고 해서 다 옥스포드대학이나 케임브리지대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케임브리지대학이나 옥스포드대학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춘 명실상부한 옥스포드대학이나 케임브리지대학은 모두 30여 군데의 개별 대학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대학들은 설립 연도도 다르고, 이념도 다르다. 그 중에는 여학생들만 가는 학교도 있다. 교수진이 다른 건 물론이고 대학마다 모두 재정이 독립되어 있다. 입학 사정도 독립적이고 학과들도 중복된다. 따라서 케임브리지와 옥스포드의 대학들을 우리 식으로 ‘단과대학’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들은 행정, 사무나 진행, 학과 강의, 학생들의 일반적인 성적 관리를 공동으로 운영하면서 한 대학으로서의 일정한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입학 면접은 개별 대학에서 보지만 입학에 관련된 서류 진행이나 대학 안내, 전반적인 행정은 대학 전체가 공동으로 움직인다.


영국 대학들의 입학 재량권은 절대적으로 그 학교의 교수들에게 달려 있다.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두 대학이 말로는 공립 출신들을 입학생의 50%까지 고르게 뽑는다, 혹은 뽑을 것이라고 하지만 전국의 공립학교 학생들이 사립학교 학생들보다 2배 이상 더 많은 걸 감안해 보면 50%설은 머리 좋은 두 대학의 의도적인 계산착오라 할 만하다.

영국의 사립학교 중에는 사실 옥스포드나 케임브리지의 시설이나 기구를 비웃을 정도로 잘 되어 있는 곳들이 있다. 교사진도 화려해서 옥스포드나 케임브리지 출신들이나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많고, 그들의 월급 수준도 다른 직종의 같은 경력자들을 훨씬 앞선다. 이에 비하면 세계 최하를 달리고 있는 영국 공립학교의 수준은 정반대의 극에 있다. 설혹 공립학교에서 공부를 잘해 지필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넉넉하고 편안한 사립 출신들의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가지기는 어렵다. 이렇게 되면 두 대학이 중시하는 면접에서 이들 학생들이 기회를 가지리라는 보장은 점점 미약해진다. 그런 까닭에 이 두 대학과 그 외 대학들을 우리 식으로 서울대니 연대니 하는 순서로 나누려 들면 곤란하다.

나는 ‘고드’가 싫어요

영국에 대한 환상 가운데 ‘영국 영어는 정통 영어, 고급 영어라는 환상’도 만만치 않은 순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영어(English English, British English)와 미어(American English)가 따로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온통 미어만 배우기 때문이다. 시험도 미어, 듣기도 미어, 방송도 미어 일색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서 영국 영어에 대한 이상스러운 환상도 생긴다. 영어는 물론 영국의 말이고, 미어는 물론 미국인이 쓰는 말이다. 완전히 독립된 언어는 아니고, 영어를 쓰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발음과 표기, 문법의 차이가 있다. ‘a'는 언제나 ’아‘로 발음되듯 ’i'는 ‘아이’로 ‘o'는 ’오‘로 발음되는데 이러한 경향은 스코틀랜드나 잉글랜드 북부로 갈수록 심하다.

아들인 우준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무렵 다시 영국으로 나가야 했다. 그 전에 런던에 나와 사는 동안 우준이는 영국 성공회 학교를 다녔는데 교회행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단호하게 영국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고드가 싫어요.” 영국에 살았던 죄로 영국 영어를 배웠던 우준이는 비감한 정견 발표 자리에서 우리 모두를 웃기고 말았다. 미국에 살았더라면 얼마나 멋졌겠는가. “나는 갓이 싫어요.”가 되는 건데 영국에 사는 바람에 우준이는 ‘갓댐’도 못하고 ‘곳댐’이라고 해야 하다니. 이러면 험상궂은 갱도 갑자기 코미디언으로 바뀐다. 영어 배우자고 영국 오는 사람들은 인생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으니 부디 신중을 기하기를 당부한다.


영국인들 중에는 미어에 대해 필요 이상의 경멸과 무시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 어떤 교수는 나의 돼먹지 않은 발음에 시비를 걸어 “왜 너희는 미국인도 아닌데 미국말을 하느냐? 내가 보기에 북미지역 빼고 미어를 말하는 나라는 너희 나라밖에 없다.”는 비난도 했다. 하긴 내가 영국에서 살면서 또 볼일 없이 여기저기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아직도 영국식 영어를 쓰는 나라가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여전히 영국에서 ‘영어’를 배운다.

그리고 영어에 미국 영어, 영국 영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영․미어를 골고루 섞어 스는 캐나다 영어, 호주 영어가 있다. 과거 식민지에서 자기식대로 지방분권화한 영어도 있다. 그리고 영국 안에서도 크게 브리튼 섬의 세 지역,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는 발음이나 억양이 서로 다르다. 아일랜드어에는 여기에 미국식 억양까지 들어 있다. 잉글랜드 안에서조차 지역에 따라 언어 표현과 발성 차이가 심하다. 리버풀, 셰필드, 맨체스터 등 중서부의 공장 지대에서는 단어마다 끝을 올리면서 줄줄이 이어서 말한다. 억양의 기복은 북쪽으로 갈수록 강해져서 요크를 넘어서는 북부 지방의 영어는 스코틀랜드 영어에 가까울 정도로 발성에서 심한 높낮이를 보인다. 그런데 지역 차이만이 발음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출신배경과 직업환경도 중요한 구별 요인이 된다.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영국 사회에서 발성이나 발음은 그저 단순한 신체적, 생리적 행위가 아니라 사회화 장치로서 기능한다.

영국은 ‘없다’

왕족이니 귀족이니 하는 영국의 구조는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는 환상여행의 순기능을 하는 면이 있다. 미국을 비롯한 나라에도 지금의 부시 대통령 가문이나 케네디, 록펠러, 포드 등 웬만한 나라의 사람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친숙하게 느끼는 엄청난 부자와 세도가들이 있어 전혀 일을 안 하고 먹고 놀고 쓰기만 해도 되지만 그들의 운명이 죽는 날까지 확정된 건 아니다. 행여 망하거나 사람들의 신용을 잃기라도 하면 가난뱅이나 실업자로 사는 도리밖에 없다.

하지만 왕이나 왕자, 공주, 또 그들의 아들, 딸로 이어지는 군주제는 이와 다르다. 미국의 큰 부자에 비하면 형편없이 초라하게 산다 하더라도 그들은 끝까지 왕이다. 심지어 군주제가 무너져 남의 나라로 도망을 가서 살아도 ‘망명중인 왕’이다. 생득적인 이 권리, 혹은 이 운명은 왕이 정점을 이루는 사회에 큰 그림자를 드리운다. 왕이 왕으로 태어나듯 모든 이들도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사회적인 지위를 얻었다고 해도 신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그게 운명이기 때문이다.

계층에 매여 진작 신분상승의 꿈을 버린 사람은 그 안에 안주하고 살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타고난 신분이란 버릴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계층의 유지가 생존의 필수조건인 귀족이나 사회 상층부는 계층 유지와 사회 유지를 동일시하는 정책을 암묵적으로 강조하게 되고, 이러다 보면 사회 전체가 새로운 정신과 운동에 적대적인 분위기를 갖게 된다.

이런 경직성에 대한 반발로 영국에는 반발적인 문화, 새로운 운동이 많이 일어난다. 미니스커트가 제일 먼저 선보인 곳도 런던 패션쇼였다. 비틀즈도 런던 중서부 출신이다. 호모라고 자진 신고한 엘튼 존도 영국인이다. 문제는 이들이 영국을 떠나고 나서야 세계적으로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시작은 영국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자리를 잡고 번성한 곳은 미국이다.

영국의 매력

작년이었던가, 젊었을 때 간첩활동을 하던 할머니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할머니는 젊을 때 핵무기를 연구하는 기관에서 연구자료를 보관하는 일을 담당했다. 당시는 냉전 중이라 영국 및 소련과 같은 서방 강대국들은 핵무기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영국도 정부기관이나 국가 기밀 관련 연구를 하는 기관에 들어갈 때에는 까다로운 신원 조회를 거친다는 걸 감안해 보면 할머니의 신원도 물론 확실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소련에게 영국 핵무기 개발의 정보를 넘겼다. 그것도 별로 큰 대가도 없이.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느 한 나라가 핵무기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봤거든요.” 대단한 사회적 명망을 가진 것도 아니요, 유달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닌 그저 평범한 여자가 자신의 원칙이나 이념을 굳게 믿고 세계를 걱정하고, 그 걱정을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또 그의 말을 비난하지도, 조롱하지도 않은 채 국영방송이 그대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얼마 전 ‘앤소니 블런트’ 전기가 나왔다. 앤소니 블런트는 이 할머니보다 훨씬 더 시끄러운 간첩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1970년대 블런트를 비롯하여 영국 정보부와 외무성 관리 4명이 관련된 그들의 스파이 행적은 2차대전이 발발했을 때로 올라간다. 앤소니 블런트가 유명한 까닭은 그저 스파이여서가 아니라 그가 영국 최고의 미술사가, 감정가였기 때문이었다.

공식발표는 1979년이었지만 블런트에게 간첩 혐의가 가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 1950년대부터였다. 정황증거가 부족하고 블런트 자신이 강하게 부정하여 여러 차례 혐의를 벗었는데 결국 사면을 조건으로 블런트가 자백을 하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스파이로 확인을 받고 나서도 블런트는 계속 미술품 관련 일을 해 나갔다. 특히 그는 여왕의 미술품 감식자로서 끝까지 공식적인 활동을 했고, 여왕과 왕족들에게 귀중한 조언자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왕족들은 그가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그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3부 남들 틈에 우리 사는 이야기

남의 집 구하기까지

남편이 다니던 학교에 있던 기숙사에서 침대 방이 3개, 그중 방 하나는 겨우 침대 하나만 들어갈 정도인 집을 배정받아 살았다. 그러다가 남편이 정해진 수업기간을 끝내고 졸업하자 우리 가족은 더 이상 학교의 기숙사에서 지낼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 근처 마을로 이사를 나왔다. 그해 6월부터 집을 보러 다닌 것이 임대 기간을 연장해 가면서 11월까지 모두 30채의 집을 구경했다.

영국에서는 돈 한푼 없이 집을 구할 수 있다. ‘모기지(mortgage)'라는 장기저리의 주택융자가 있어서 직업이 확실하거나 부동산 보증이 있으면 최대 100%까지 집 값을 융자로 받을 수 있다. 한국 상황에서 보면 이상적이라고들 하지만 여기에 따르는 책임도 크다. 대체로 정년 퇴임을 만기 상환기로 잡고 있기 때문에 모기지는 문자 그대로 사람이 살아 있는 한 놓여날 수 없는 덫이다.

영국에서의 집 구매 전후사정을 모르는 우리들로서는 일단 어느 정도 예산안에서 집을 먼저 구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는데 영국의 집 매매원칙은 그 반대였다. 집을 보러 다니기 전부터 자신의 융자가능금액을 알아보고, 어느 융자회사의 상품이 유리한가를 정해 두는 게 바른 순서였다. 그러면 원하는  집을 흥정할 때도 훨씬 유리하고, 집을 사는 시간이나 절차도 절약할 수 있다.

소개소를 통해 어떤 집을 사겠다는 의사를 전하면 소개소는 주인과 가격흥정을 끝내고 가계약 사실을 편지로 알려 준다. 편지 내용에 구매자가 융자를 받는다는 조건, 소개소에서 융자까지 알선해 준다는 조건까지 명시되어 있다. 우리는 처음에 융자소개업자의 도움 없이 인터넷으로 융자를 받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반 은행 뿐 아니라 집 융자 전담회사의 융자상품을 모두 합하면 3,000 종류에 상품의 종류에 따라 이자나 상환 조건도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은행은 융자를 확정하기 전에 구매할 집의 상태를 검사했다. 건물의 보수상태가 나쁘면 융자를 받을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가옥상태를 검사하는 건물감정사는 매매 당사자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으로 융자회사에서 지명하는 것이 보통이다. 감정비용은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은행보다는 융자신청인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준비된 계약서를 쓰고 나면 신원 확인절차가 따른다. 부동산 관계나 금융, 상거래, 학교 입학, 취업 등 대부분의 사회적인 거래를 위한 신원 확인용이라면 보통 두 사람 혹은 기관의 추천이 필요하다. 집을 임대할 때는 그 전 집주인의 추천서가 제일 중요하고, 집을 빌릴 때의 가장 좋은 추천서는 그 전 집주인의 추천서와 은행 거래 증명서다.

신원 확인절차가 끝나면 모든 임대료는 선불이므로 첫 임대료와 한 달 임대료만큼의 보증금을 낸다. 이 보증금은 임대인이 집을 더럽게 썼다든지 집안의 기물을 파손했을 때를 대비해서 소개업자가 임대기간 만료까지 보관하게 된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변호사가 참석한 가운데 서류에 사인을 하기 전까지는 언제라도 계약을 취하할 수 있다. 즉 집을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도발성 계약 파기를 할 수 있었다. 이유를 댈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조금 더 돈을 주겠다는 사람에게 집을 팔기 위해 거래를 파기할 수도 있었다.

3인조 사건

서울에서 초등학교는커녕 유치원도 한번 다녀본 적이 없는 단계에서 우섭이는 에딘버러의 작은 공립초등학교에 다녔다. 온통 백인뿐인 이 학교에 흑인 아이가 하나 있었고, 그리고 우섭이가 아시아인으로 들어왔다. 우섭이는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그 와중에 세 명이 유독 우섭이를 괴롭혔던 모양이다. 생긴 것도 달랐지만 영어를 못한다는 게 제일 큰 이유였을 거다.

우섭이 나이 정도면 이미 아이들이 언어사용에 따라 친구들의 등급을 나눌 만한 나이였다. 연필도 빌려주지 않고, 노는 시간에 끼여주지 않고, 아침에 코트를 걸어둘 때도 치근대고, 점심시간에도 괴롭힌다고 했다. 그 사건의 와중에 잠깐 와 계셨던 우준이의 외할아버지께서는 좀더 사례를 모아 선생님을 찾아야겠다는 우리들의 점잖은 계획을 비웃으면서 아이와 함께 문제해결의 빠른 길을 찾으셨다.

할아버지의 지령은 괴롭히는 아이의 코에다 주먹을 한 방 날리라는 것이었다. 그 후 선생님도 부모를 소환하지 않았고, 아이들 중 누구도 다쳤다는 소문을 들었던 적이 없으니 우섭이의 활극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길은 없다. 우섭이의 모험담을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그날도 역시 예의 그 3인조가 우섭이를 괴롭히는 중이었다. 우섭이는 존의 콧등을 가격했고, 존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우섭이의 3인조 해결방법은 결코 영국식이 아니다. 다행히 그렇게 넘어갔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부모가 경찰에 소환되는 일이 벌어질 뻔했다.

아무리 부모지만 미성년자를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면 부모가 아이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행사할 수 없다. 특히 상대방에게 신체적 폭력을 가한다는 건 아주 위험한 사건이 된다. 누구를 때리면 그 전까지 상황이 어떠했든 정황이 아주 불리해진다. 어린아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부모까지 개입이 되어 가정교육의 실패를 자인해야 하거나 별별 변명을 다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다고 영국 아이들이 싸움질을 못하는 건 아니다. 영국이라고 조폭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영국 애들이나 어른들은 평소에 잘 견디다가도 싸움이 생기면 물러서지 않는다.

‘저 푸른 초원 위에 하얀 집’

이사 온 집에 앞뒤로 정원이 있다. 영국인들은 5월이 오면 정원병이 도져서 다들 바깥에 나와 잔디를 깎는다, 나무를 다듬는다, 꽃을 심는다 난리인데 우리 집 정원은 관리하지 않은 꽃들과 길게 자라고 있는 나무, 그리고 쓰레기로 정체불명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자갈을 까는 게 정원을 꾸미는 데  드는 비용이 제일 싸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공사업자에게 부탁해 나온 견적이 가로․세로 7미터인 정원에 3,500파운드, 우리 돈으로 700만 원이나 되어서 우리가 직접 하기로 했다. 끝이 뾰족한 스페이드(spade)는 땅을 파는 삽이고, 끝이 평평하고 네모난 쇼블(shovel)은 흙은 나르는 삽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을 거쳐 식구 수대로 스페이드 삽을 사오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다가 결국 이웃에 사는 짐 아저씨의 조언대로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국 땅은 삽으로 파는 게 아니라 특히 잔디는 포크(fork)로 파는 것으로 포크로 찍어누르면 잔디가 뜯겨져 나온단다. 그의 조언으로 그걸 치우고 나니 근처 땅들이 좀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일주일 이상 포크와 삽질을 하면서 정원 구석까지 치우고 자갈을 깔고 나니 이웃에게 인사를 많이 받았다. 훨씬 나아졌다는 인사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가운데 가시가 있었다. “근데 너네 이걸로 끝낼 거니?”라고 묻는다. 순한 짐 아저씨도 고민인 모양이다. “뭔가 심을 거지? 화분을 놓을 거냐?” 그래서 몇 개 화분을 사다 놓으면서 간신히 여름을 보냈다.

냄비 기질로 비난을 받는 한국인에 비하면 영국인의 기질은 바닥 두꺼운 솥단지쯤 된다. 불이 잘 오르는 것 같지 않아 몇 시간이 지나도 그저 그대로인 듯한데 서서히 소꼬리를 뭉근하게 만들어 놓는 설렁탕 집의 솥과 많이 닮아 있다. 웬만한 사건으로 영국인들의 놀란 얼굴을 보기 어렵다. 외부인, 특히 외국인한테는 이런 자기 관리에 빈틈이 없다. 그러니 지하철이나 버스가 운행 중간에 예고 없이 내리라고 한들 분노나 좌절의 내색을 할 이유가 없다.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듯 스스럼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국 사람들이 영국에서 제일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느긋함, 즉 기다림이다. 영국인의 국민 취미는 ‘줄서기’라는 말이 있다. 런던처럼 관광객이 북적이는 곳은 예외지만 그 외 영국 어디에 가든 영국인들은 줄을 선다. 둘이 있어도 줄을 선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에게 줄을 양보하고 싶어도 웬만한 영국노인들은 굳이 내가 너보다 늦게 왔으니 네가 나보다 앞에 서야 한다고 줄서기의 원칙을 양보하지 않는다.

줄서기가 국민 취미로 발달하다 보니 영국인의 줄서기에는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우선 어느 곳에서든 여러 가닥의 줄을 만들어 이해분쟁의 소지를 만들지 않는다. 영국인들은 화장실 문 가까운 곳에서 모여 기다리면서 나는 일을 보러 왔을 뿐이지,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준다. 다음 원칙은 앞사람과의 간격을 너끈하게 유지한다는 점이다. 이건 특히 현금인출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줄서기에서 확연하다. 누군가 인출기를 사용하고 있으면 그의 비밀번호와 작동 상황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능한 멀리 떨어져 기다린다. 또 다른 원칙은 내 차례가 왔다고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구가 비어 있어도 창구직원이 ‘다음 손님’을 부르던가, 눈을 맞출 때까지 기다린다. 다음 일단 자기 차례가 되면 지금까지의 모든 기다림을 일시에 보상받으려는 듯 끈질기게 자기 몫을 챙기는 것이 영국인이다. 웬만하면 혼자 정리해도 될 서류도 꼭 그 앞에서 챙기고, 인출기의 돈도 그 자리에 버티고 세어 본다. 아무리 줄이 길어도 자기 용건을 마칠 때까지 누구의 방해도 용서하지 않는다.

집을 구하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선생님과 면담 약속을 하면서, 대학 교수를 만나면서 우리도 이제 영국 생활의 에센스, 기다림에 단련되어 가고 있다. 지겹고 지루해 소리를 지르다가 어느 날 우리가 이 느림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실천하는 데 뭐 그리 어려운 훈련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마음 한번 바꾸어 먹으면 된다. 코끼리처럼 매사 천천히 느릿느릿 시간을 보내면 죽음도 그렇게 천천히 오려나 믿으며 우리 식구는 이제 삼중 바닥 초합금 강철 냄비가 되어 영국인들처럼 질리게 게으름을 부리며 살고 있다.

출처 : 상운교회
글쓴이 : 강인철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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