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로이드 존스 설교 논문 자료
로이드 존스 설교 논문 자료
글쓴이: 김유미
제 1 장 서 론
제 1 절 연구의 필요성
강단에서 설교의 영향력이 점점 사라져 가고, 설교에 대한 확신이 점점 더 모호해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조국 교회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서, 많은 설교자들이 설교로 인하여 고민하고 있으며, 실제로 설교문을 작성하고 설교하는 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귀감이 될 만한 설교자를 선택해서 그의 설교를 연구하는 것을 통하여 설교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시 확인하는 작업은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인 마틴 로이드 죤즈 목사의 설교를 연구하는 것이다. 왜 이 작업이 필요한가? 지금 우리 나라에 출판되어진 책으로는 정근두 목사의 「마틴 로이드 죤스의 설교론」이라는 책과 토니 사전트의 「위대한 설교자 로이드 존스」라는 두 책이 있다. 그러나 이 두 책은 어느 정도의 분량이 있기 때문에 일목요연하게 그의 설교에 대해 집약적으로 한 눈에 살펴 볼 필요성이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논문은 로이드 죤즈에 대한 어떤 새로운 설교학적 발견물은 아니지만, 신학생들에게서 로이드 죤즈에 대한 관심이 희박하고, 또 그에 대한 논문도 희박한 상태에서 그의 설교의 특징을 정리해보는 것 자체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로이드 죤즈의 설교를 연구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논문은 입문서로서의 충분한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제 2 절 연구사
로이드 죤즈의 설교를 연구한 것으로는 그의 설교 방식을 연구한 정근두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이 있고, 그의 성령론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 박사 학위 논문이 토니 사전트에 의해 쓰여져 있다. 정근두 박사의 논문은 로이드 죤즈의 설교를 전반적으로 분석한 반면, 토니 사전트의 논문은 주로 그의 성령론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정근두 목사는 그의 논문에서 로이드 죤즈의 설교의 원리와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데, 로이드 죤즈의 설교의 근본적인 특징, 로이드 죤즈 설교의 해석학적 원리, 로이드 죤즈 설교의 원리와 방법, 로이드 죤즈 설교의 영적 원리, 로이드 죤즈 설교의 영적 원리 등을 다루고 있다1).
토니 사전트는 그의 논문에서 로이드 죤즈의 설교 방법, 동기, 성령의 기름부음, 성령론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이 논문에서는 바울 신학이 로이드 죤즈의 설교에 미친 영향, 로이드 죤즈의 진단적인 설교, 로이드 죤즈의 설교의 해석 원리, 로이드 죤즈의 사역의 배경등이 다루어져 있다2).
이 두 논문은 주로 로이드 죤즈의 설교에 대해서 다룬 논문들로서 그의 설교 방법, 설교 원리, 해석 원리 등을 공통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제 3 절 연구 개요
우리는 먼저 로이드 죤즈의 생애를 살펴본 후에, 그의 설교의 근본적인 특징으로서 그의 설교관을 일반적으로 고찰하고, 그의 설교 원리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로이드 죤즈의 설교의 해석학적 원리를 성경 전반에 대한 접근, 본문의 의미에 대한 접근, 본문의 의의에 대한 접근, 특징적인 해석원리, 해석학적인 공헌, 그의 설교의 원리와 방법으로서 고찰해 볼 것이다.
제 2 장 로이드 죤즈의 생애
마틴 로이드 죤즈는 당대의 지도급 의사요 왕실 주치의로 일하고 있던 토머스 호더 경의 지도 아래 런던 성바돌로매 병원에서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이때 성바돌로매 병원에서 받은 훈련은 나중에 그의 설교 테크닉과 목회 사역의 기초가 된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사로 사용하시기 위해 그때 이미 자기를 준비시키셨다고 믿었다.
호더 경은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에게 소크라테스식 진단법을 심어 주었다. 즉 사실들을 수집한 다음 정확한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그 사실들을 가지고 추론하라고 가르쳤다. 로이드 죤즈는 자신의 설교에서나 사람들의 영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목회자들에게 조언할 때 바로 이 방법을 썼다.
그는 1922년 호더 경의 임상 조교 장으로 임명되어 할리 가에서 돈벌이가 잘 되는 의사로 일할 전망이 거의 확실시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사람들의 육체적인 질병보다 사람들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목회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18개월 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심하던 끝에 마침내 그 부르심을 받아들여 스물 일곱 살 때, 자신의 고향인 웨일즈의 포트톨벗 부두에서 가까운 샌드필즈에 있는 교회 목사로 취임한다.
로이드 죤즈는 처음부터 사회 활동을 벌임으로써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대신 복음 설교를 통해 그리스도께 인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노동자 계층도 다른 어느 계층과 마찬가지로 조리 있는 설교를 들을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기독교는 정말 이치에 맞는 종교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 수 있는 독창적인 “의학적 접근법”을 설교에 도입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회심하라는 호소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그래서 1929년에는 모두 70명이, 1930년에는 모두 128명이 회심한다. 샌드필즈에서 12년간 목회 하는 동안 교인 수는 93명에서 530명으로 늘어났으며 주일 예배 참석자는 약 850명에 달했다.
1932년 휴가 때에 카나다에서 로이드 죤즈는 낙스 신학교의 도서관에서 기름을 먹인 카트리지로 된 붉은 색 벤자민 워필드 저작 집 묶음을 발견했다. 그 저작 집은 새로 구입한 책들을 비치해 두는 선반 위에 꽂혀 있었다. 로이드 죤즈는 그 다음 날부터 매일 아침마다 그 워필드의 책이 꽂혀 있는 선반을 그냥 지나 넘어가는 적이 없었다. 그러기를 여러 날 계속했다. 그는 그 열 권의 책에서 다른 어느 현대 저작자가 쓴 책들 보다 더 큰 황홀감을 느꼈다. 그 책들 속에는 옛 개혁주의 저작들에서와 같이 성경에 뿌리를 박은 신학이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그 옛 저작들보다 더 정확하고 분명한 주해를 담고 있었으며, 그 저작 전체를 단순한 학문의 수준보다 더 높이 끌어올린 경건이 배어 있었다. 로이드 죤즈 박사가 조직 신학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인식한 것이 이 때가 아닌가 싶다.3)
그는 1935년 IVF(현재의 UCCF)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여 남은 여생 동안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 처음에는 그 해에 열린 IVF 대회에서 설교하는 것은 탐탁하게 생각지 않았지만 결국 승낙하며, 1939년에는 IVF 회장이 되어 일하면서 IVF에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 놓는다. 그는 성경의 확실한 교리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학생들을 반지성적 유형의 요란한 기독교로부터 떼어놓는다. 그리고 정신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에게 그들 신앙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권면 한다. 또 학생들에게 그들 신앙을 그들이 공부하고 있는 학문과 연결짓는 법에 대해 가르치면서 의학이나 전담 기독교 사역과 같은 전통적 소명뿐 아니라 모든 주요 전문직으로 다 파고 들어갈 것을 촉구했다.
그는 IVF 회장으로서 1939년 국제 복음주의 학생회(IFES) 설립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IVF 산하의 한 단체로 서로 다른 국가와 서로 다른 교단에서 온 기독 학생들이 함께 모이는 모임이다. 그는 1947년부터 1959년까지 이 모임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IFES로부터 그들의 신앙과 활동의 기초가 될 원리들을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의 많은 친구들은 이때 그가 만든 원리들 이야말로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 속에는 “참 교회”에 대한 복음주의 견해도 적혀 있는데 이것이 나중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틴 로이드 죤즈를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목사로 기억하고 있지만 막상 그의 교인들에게는 “우리 박사님”으로 통했다. 그는 1939년 캠벨 몰간과 공동으로 사역하다가 1943년 캠벨 몰간이 은퇴하면서 담임 목사로 사역한다. 그 교회는 전쟁 중 파손되어 교인들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1945년 이후부터 차차 정상화되기 시작하더니 곧 주일 아침에는 평균 1,500명, 주일 저녁에는 2,000명이 넘게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한다.
그는 오직 성경 및 성경 본문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것에 근거하여 설교함으로써 듣는 이들의 정신을 자극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영적 필요도 만족시키려 애썼다. 그는 굉장한 유머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설교할 때는 농담이나 예화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설교는 항상 듣는 이들의 필요에 해당되는 것으로 현대적이었다. 주일 아침에는 목회적 설교를, 주일 저녁에는 복음적 설교를 했다. 비록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호소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교인석에 항상 영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지 교회 부속실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의 쪽지를 붙여 놓았다. 그래서 매주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성경 공부를 인도했는데, 그때는 그 도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교외에서 온 사람 수 백 명에게 로마서에서 에베소서까지 한 절 한 절 강해해 주었다.
마틴 로이드 죤즈는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목사로 일하는 동안 목회 이외에 두 가지 일에 더 관여했는데, 그는 이 두 가지 일로부터 모두 만족감을 얻었다. 하나는 목사들로 구성된 형제회로, 그 회의 의장이 되어 목사들의 목사가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청교도 대회로, 거기서 해마다 마지막 강연을 했다. 그는 신자들은 절대 자기들이 믿고 있는 개신교의 기본 교리들을 잊어서는 안 되며 교회사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충성스런 복음주의자라면 복음주의 신앙의 기본 신조들을 부인하는 교단에 계속 속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자기네 교단 통합 유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보다 오히려 성경적 교회론에 비추어 볼 때 야기되는 문제점들에 용감하게 맞서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건강이 나빠져 1968년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은퇴한 그는 남은 여생 동안 책을 쓰고 작은 교회들을 돌아다니며 격려하는 일을 했다. 사망하기 전날에는 치료받던 것도 중단하고 구독하던 신물들도 모두 사절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나를 천국에 가지 못하도록 붙잡지 마시오”라고 말했는데, 성데이비드 데이에 평화로이 잠든 채 운명했다.
마틴 로이드 죤즈의 손자이자 전기 작가인 크리스토퍼 캐더우드는 자기 할아버지가 웨일즈인 이라는 것, 칼빈주의 감리교 배경에서 성장했다는 것, 거기다 대단한 지성과 불같은 감성을 함께 소유한 사람(그래서 그의 설교가 그처럼 폭 넓은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다)이라는 사실을 모르고서는 마틴 로이드 죤즈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말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복음주의에 체계적인 강해 설교를 회복시킨 사람이다. 그는 20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청교도적이요 개혁주의적인 교리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한 사람이다.
제 3 장 로이드 죤즈 설교의 근본적인 특징
그는 오늘날 기독교회의 가장 절실한 요구는 진정한 설교이며, 그것은 역시 명백하게도 세상이 가장 크게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4) 그는 현대의 사회상태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은 여러 방면으로 생각할 때 교회가 말씀 전파의 임무를 떠난 데 있다고 한다.5)
그는 설교는 언제고 맨 앞에서야 하며 어떤 것에도 자리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6) 그는 복음이 참되게 강론되어진다면 설교자가 전혀 모르는 개별적인 문제라도 성령에 의해서 다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7) 성경을 상세히 파헤쳐 전함으로써 한 예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조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8)
제 1 절 설교관의 일반적인 고찰
1. 설교라야만 할 이유
(1) 의문시되는 설교의 위치
로이드 죤즈는 모든 것이 의문시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과 그 가운데서 설교의 위치와 가치 그리고 목적이 의문시된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설교의 시대는 끝났고 강단은 과거를 가졌으나 미래는 없다는 말을 듣고 있다. 설교는 죽어 가는 예술이요 낙후된 의사 소통 방법이며 시대 양상과 조화될 수 없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로이드 죤즈는 이러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바로 그 사실이 오늘날 교회의 상태를 가장 잘 드러내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8)
(2) 설교 - 교회의 고유 직무
설교에 대해서 이러한 심각한 공격이 행해지는 시대에 로이드 죤즈는 교회의 기본적인 직무요 목사의 기본적인 직무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에게 있어서 설교는 교회의 고유 직무인 동시에 교회만이 세상의 가장 큰 필요를 채울 수 있고 그러므로 설교자만이 이것을 세상에 알릴 수가 있다. 설교자는 교회에 의해서 이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구별된 자이고 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해 나가는 자이다.9)
(3) 설교 - 교회의 대체할 수 없는 임무
로이드 죤즈는 반드시 설교가 먼저 와야만 하고 이것은 다른 어떤 것과도 대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회가 그 기본 임무를 수행할 때에 세기를 통해 사회-정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최대의 공헌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로이드 죤즈에게 있어서 전도 설교야말로 이러한 사회 정치적인 문제를 실질적으로 다루는 것이지 다른 모든 것은 다만 말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그와 의견을 같이 하지 않고, 현대 문제에 너무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 있지만 그의 논지를 사도들의 결단(행 6:4)과 비교해 볼 때 무시하기는 매우 어렵다.10)
설교는 교회의 기본적이며 가장 중대한 임무이고, 그러므로 목사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밖에 다른 모든 것은 설교에 대하여 보조적이고 다른 모든 활동은 목사의 이 기본 임무를 완수하는 것으로 나타나야만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로이드 죤즈가 다른 목회 사역에 충분한 자리를 주지 않는다고 의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확신이 없는 로이드 죤즈를 생각할 수는 없다. 이 확신이 그를 탁월한 설교자로 만든 것이다.11)
2. 정의되어야 할 설교
(1) 왜 반드시 정의해야 하는가
그의 근본 주장인즉 강단이 바르고 설교가 참될 때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들으려고 몰려든다는 것이다. 참된 설교가 행해질 때 사람들은 반드시 오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근본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진정한 설교인지에 대해서 분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설교문과 아울러 설교 행위에 대해서도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다. 여기에 오늘날 설교의 위치가 하강하는 주된 요인이 있다고 본다. 요약하면 설교관의 잘못 때문에 결과적으로 잘못된 설교가 행해진다. 그러므로 로이드 죤즈는 무엇이 설교냐 라는 핵심적인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기본 질문에 직면하기 전에는 설교의 기교나 방법 혹은 의사 소통의 문제를 급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달리 말해 참된 설교의 부흥이 있기 위해서는 이 기본 질문에 대한 답을 반드시 발견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참 설교는 설교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과 설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바른 인식으로부터만 가능하다. 이 점에서 로이드 죤즈는 몇몇 현대 신학자들과 상당히 일치하고 있다.12)
(2) 설교란 무엇인가
그는 설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의 정의는 최소한 설교의 세 가지 면을 포함하고 있다.
1) 설교자의 자질에 대해 함축적인 정의
2) 그의 메시지의 성격에 관한 정의
3) 청중의 신분에 관한 정의
첫째로,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대사’이다. 그는 보냄을 받은 자요, 임무가 부과된 자이며 강단에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선다. 그는 평신도 설교라는 현대적 개념을 거부한다. 평신도 설교는 주로 감리교와 형제단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며 예외적 상황에서 평신도 설교가 행해질 수 있는 것을 수긍하지만 그것을 정상적인 활동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평신도 설교를 반대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거기에 소명의 문제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13)
둘째로, 설교자에게 그 메시지를 위탁하신 분이 하나님임을 믿는다. 설교자는 자신에게 위탁된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자이다. 메시지는 설교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개념을 가지고 서지 않는다. 설교의 임무는 하나님에 대해 사변적 사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된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참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강해 이며 말씀의 신실한 강해는 하나님 자신이 설교하는 것임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14)
셋째로, 청중의 신분에 관한 그의 정의는 훨씬 실제적이고 비교의적이다. 개혁주의 전통에서 설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회중에게 한정한다. 이것은 교의적으로는 그럴 듯하지 못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너무 융통성이 없다. 여기에 로이드 죤즈는 훨씬 성경적인 입장을 따르고 있다. 그는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이 실천과 일치하는 의미에서 성경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 신약 성경은 소위 언약의 회중에게 한정하지 않고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있다.15)
넷째로, 설교자의 임무는 그에게 있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로이드 죤즈에게 있어서 설교는 심각한 작업이다.16)
다섯째로, 로이드 죤즈에게 있어서 설교의 참된 기능은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신 의식, 하나님 임재 의식을 주는 것이고 진리의 영광스럽고도 감동적인 측면의 무언가를 전달해주는 일이다. 설교의 임무는 사람들의 마음에 진리의 충격을 강하게 주어 그 진리를 살아나게 만드는 것이다.17)
설교의 첫째되고 기본적인 목표는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인상을 심는 것이다. 설교를 통해 얻는 핵심적인 유익은 설교가 행해지는 순간 지성에 심기는 인상이다. 로이드 죤즈는 여기서 조나단 에드워즈와 완전히 일치한다. 달리 말해 설교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면하게 하는 것이다. 소위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과의 실존적인 만남이다. 하나님의 실재와의 살아 있는 만남이다. 인격적이고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이다.18)
3. 구분되어야 할 설교
(1) 설교문과 설교 전달의 구분
설교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설교문 혹은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이다. 로이드 죤즈는 메시지와 메시지의 전달을 매우 분명하게 구분한다. 로이드 죤즈는 이 두 요소는 서로 다르며 참 설교는 설교문과 설교 행위라는 이 두 요소가 잘 섞여서 구성된다고 본다.19)
(2) 설교문의 구분 : 내용과 형태
로이드 죤즈는 설교문에서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구분을 한다. 첫째는, 내용이고, 둘째는 그 내용을 담은 형태이다.20)
(3) 내용의 구분 : 케리그마와 디다케
성경의 메시지는 두 가지 주요 내용이 있음을 로이드 죤즈는 인식하고 있다. 첫째는 구원의 메시지인 케리그마로서 전도 설교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으로 이것은 주로 하나님의 존재와 성격에 관한 선포로 이루어져 있다. 둘째는, 가르침의 요소, 디다케로서 이미 믿는 신자를 믿음에 굳게 세우기 위한 것이다.21)
제 2 절 로이드 죤즈의 설교 원리
1. 신학적인 설교
(1) 설교의 내용을 지배하는 원리
‘신학적’이라는 용어를 ‘교리적’이라는 용어와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학적 혹은 교리적 설교의 필요에 대한 강조는 그의 동시대의 많은 설교와는 메시지의 내용에 커다란 차이를 가져 왔다. 그는 특정 본문에서 나온 각각의 메시지도 반드시 총체적인 진리의 한 측면 혹은 한 부분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특정 개별 본문이 지니는 논지의 예리함을 말살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22)
(2) 이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
이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① 단일체로 이루어져 있는 전 성경적 메시지를 잘 파악하라.23)
② 설교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고 배경을 구성하는 조직 신학에 대한 지식을 갖추라.24)
③ 개별 메시지를 분리된 것으로 취급하지 말아라.25)
④ 개별적인 본문에 담긴 각 메시지는 더 큰 전체의 한 부분임을 항상 명심하라.26)
⑤ 자가 가진 체계를 어떤 본문에든지 무리하게 적용하려고 하지 말라. 그러나 동시에 이 전체적인 진리로서 해석을 점검하고 통제하라.27)
⑥ 특정한 문제를 강조하고 있는 순간에도 항상 전체를 설명하라.28)
⑦ 알려지고 믿는 바에 근거해서, “그러므로”의 기초 위에서 적용하라.29)
2. 강해적인 설교
(1) 설교의 형태를 지배하는 원리
‘강해설교’라고 할 때 로이드 죤즈는 참 설교의 모든 측면을 서술하지 않고 참 설교의 한 측면인 형태에 관해서만 말한다. 로이드 죤즈에게는 모든 참된 설교는 강해적이지만 모든 강해설교라고 해서 참 설교는 아니다. 로이드 죤즈는 ‘강해’라는 용어를 가지고 참 설교의 중요한 한 측면을 의미하지 그 이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30)
(2) 이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
그는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하지만 이것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요술 처방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① 한 본문의 강해로 시작하라.31)
② 그 특정 본문의 핵심 사상 혹은 교리에 도달하라.32)
③ 그 특정 교리의 상관성을 전개하라.33)
④ 그 특정 교리를 평행 구절로 강화하라.34)
⑤ 주제를 몇 가지 대지로 나누어 그 중심 교리를 분명하게 하라.35)
⑥ 이 대지들을 점진적으로 절정을 향하도록 배열하라.36)
⑦ 말하면서 계속 적용하라.37)
⑧ 설교는 반드시 적용과 권면의 논조로 끝나도록 하라.38)
3. 성령의 능력과 통제 아래서 행해져야 할 설교
(1) 설교의 전달 행위를 지배하는 핵심 원리
로이드 죤즈에 의하면 설교의 제2의 커다란 측면은 설교문의 ‘전달’, 즉 설교의 ‘행위’이다. 전달하는 문제에 있어서 자유로움의 요소는 로이드 죤즈에게 매우 중요하다. 로이드 죤즈는 전달이라는 문제는 밝히기 매우 어려운 어떤 것임을 수긍한다. 그는 이것을 지침이나 규칙이나 규정의 문제나 혹은 해야 되고 안 해야 하는 문제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설교는 사람이 그것을 들을 때에 깨닫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에 관한 것을 말할 뿐이다.39)
(2) 성령의 지배 하에서 행해지는 진정한 설교에 수반되는 요소
이러한 요소가 진정한 설교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의 능력 아래서 행해지는 참된 설교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① 로이드 죤즈는 진정한 설교의 첫째 특성을 설교자의 전인격이 내포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는 필립스 브룩스가 한 ‘인격을 여과한 진리40)’라는 설교의 정의를 받아들인다. 따라서 그는 설교가 효과 있으려면 행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41)
② 그가 강조하는 두 번째 특성은 예배하는 회중과 예배 순서를 지배하는 권위와 통제하는 느낌이다.42)
③ 그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번째 특성은 자유로움의 요소이다. 설교문이 주의 깊게 준비되어도 설교자는 반드시 설교할 때 자유로와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설교를 성령의 능력과 영향 아래서 행해지는 활동으로 여기기 때문이다.43)
④ 설교자와 회중 사이의 교환이 요소가 중요하다. 설교자는 말하는 중에 어떤 의미에서 영성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이끌어 내어야만 한다. 이 상호 작용은 때때로 설교에 있어서 매우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44)
⑤ 진지함의 요소이다. 설교자는 사람들이 지금껏 생각해 온 것들 중에서 “가장 엄숙한 문제를 다루는” 진지한 자이다.45)
⑥ 활력의 요소는 진지함의 요소가 엄숙함이나 슬픔, 침울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설교자는 생동감이 있는 동시에 진지해야만 한다. 개혁주의 전통에 속한 로이드 죤즈는 많은 젊은 개혁주의 설교자들이 매우 지루하고 따분한 설교자인 것을 우려한다. 만약 신자가 자기가 주창하는 교리를 참으로 이해했다면 성경의 그 위대한 주제를 가지고 따분하고 지루한 설교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46)
⑦ 열심의 요소,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만 한다. 열심이란 설교자가 자기가 말하고 있는 바에 의해서 사로잡혀 있는 인상이 전달되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그 주제에 의해서 감동되었기에 그는 이 진리를 다른 사람과 나누기를 원하는 것이다.47)
⑧ 이것은 다음 특성인 뜨거움의 요소로 인도한다.48)
⑨ 다음은 설교자와 그의 회중 사이에 긴밀한 접촉이 있어야 한다.49)
⑩ 긴박감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50)
⑪ 설교는 반드시 설득력으로 특징지워져야만 한다.51)
⑫ 다른 특별한 요소는 감정적 요소이다. 로이드 죤즈에게 ‘파토스’는 참된 설교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마음에 부은바 될 때 감정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 감정적 요소, 정서적 요소는 이 세기에 있어서 특별히 개혁주의자들 사이에 심각하게 결여된 것으로 본다.52)
⑬ 진정한 설교의 마지막 요소는 성령의 기름부음에 의한 능력이다. 로이드 죤즈에게는 능력이 없으면 설교가 아니다.53)
(3) 성령의 능력으로 행해지는 진정한 설교를 위한 몇 가지 제안
로이드 죤즈는 성령의 능력으로 행해지는 설교를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제안들이 진정한 설교를 할 수 있는 요술적인 처방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설교하는 순간에 성령의 영향에 자신을 개방하기 원하는 자에게 도움을 주는 제안이다.
① 기록된 원고를 암기하는 것보다 기록된 원고에서 요약을 하라.54)
② 이 요약으로부터 설교하라.55)
③ 여러분이 완전히 자유할 때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하라.56)
④ 설교문보다 성령을 신뢰하라.57)
⑤ 성령을 항상 구하라. 간절히 그를 구하라.58)
제 3 절 요약
로이드 죤즈는 오늘날 강단 사역의 근본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설교가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고 믿는다. 더욱이 그는 설교에 관해서 말해 주도록 사람들이 요청받을때 너무 쉽게 설교의 방법이나 기교를 생각하는 데로 급히 달려가는 것을 보곤 하는데, 그는 이것은 아주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59)
제 4 장 로이드 죤즈의 설교의 해석학적 원리
설교는 반드시 신학적이어야 한다고 로이드 죤즈는 믿는다. 이 첫 번째 설교 원리는 설교학적인 특성보다는 신학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학문적인 강해 설교자로서 로이드 죤즈는 1930년대 초기에 이미 그 소문이 대서양을 넘어서 알려졌다. 후에 로이드 죤즈는 강해 설교의 왕자로서 인정받았고 그의 설교는 학적으로 손색이 없는 대중적 강해의 극치라고 여겨졌다. 오늘날 로이드 죤즈는 ‘독보적인 학자60)’로 인정받고 그의 로마서 설교는 ‘미래에 어떤 강해 설교자도 무시할 수 없는61)’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강해 설교자로서 그의 합법적인 위치가 인정되는 데 비해서 그의 설교의 해석학적인 평가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의 해석학적인 원리와 방법은 엄청난 양의 그의 설교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해석학적인 원리와 방법을 평가하기 위해서 출판된 설교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절대적이다.62)
제 1 절 성경 전반에 대한 접근
1. 고백적 접근
(1) 계시로서의 성경
로이드 죤즈는 성경을 기본적으로 칼빈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전통의 빛 속에서 이해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오늘날과 같이 된 것은 대략 840년 이후로 유럽의 신학교로부터 시작해서 학문과 학식이 계시의 위치를 점령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믿는다. 성경은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로 여겨지지 않고, 현대의 진보된 학문적 지식이 새로운 권위가 되었다. 이런 새로운 운동에 관련해서 특히 금세기에는 교회가 학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을 매우 존경하는 경향이 생겼고 그래서 학자가 최후의 권위를 갖게 되었다. 로이드 죤즈의 분석에 따르면 이 전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이 교회 내에 영적 생명의 통로를 막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오늘날 긴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라는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호소한다. 이와 같은 로이드 죤즈의 호소는 최근에 개혁주의 학자들간에 재확인되고 있다.63)
(2) 성경의 영감
성경은 단순한 인간적 기록이나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숨결을 불어 놓으신 말씀이요 기실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의 설교나 삶에 있어서, 교리나 세계관에 있어서 어떤 측면에서든지 권위를 가진다. 로이드 죤즈는 오늘날과 같은 교회 상태의 주요 원인은 성경의 신적, 만전적 영감에 대한 신념과 신앙과 행위, 모든 문제에 있어서 궁극적인 권위라는 믿음을 지난 세기에 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오늘날 상황에 대한 로이드 죤즈의 평가는 성경의 성격에 대한 그의 고백적인 접근의 참된 가치를 인식토록 해 준다.64)
2. 경외적 접근
(1) 경건함과 거룩한 두려움의 영으로 접근하라
로이드 죤즈는 성경에 대한 바른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 사람이 성경에 접근하는 태도, 성경을 읽는 마음가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음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떤 부분을 접근해도 바른 ‘정신’을 가져야만 한다. 두려움과 떨림, 겸손함이 없이는 성경을 풀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성경에 접근할 때는 상당한 주의와 듣고 배우려는 준비된 마음, 말씀을 받으려는 경건한 기대감을 가져야만 한다.65)
(2) ‘동일한 성령으로’ 접근하라
로이드 죤즈는 겸손을 자신의 자아에 대해서, 능력과 기능에 대해서 보잘 것 없다는 견해를 갖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존경, 자기 주장, 자기 자랑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덕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성경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로이드 죤즈는 이 문제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성경에 제시된 진리들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66)
(3) 충분한 기도와 열심 있는 연구로 나아가라
경외적 접근과 관련해서 오늘날 목회 훈련의 일반적인 경향을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일반적인 목회 훈련은 성경에 복종하기보다는 오히려 성경을 판단하는 경향을 띠고 있으며, 본문을 학적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구실 하에서 ‘고등 비평 방법’에, 특히 전문적인 언어학자와 교회 ‘전문가’에게 너무 많은 양보를 하고 있다고 주의를 환기시킨다.67)
오늘날 많은 메마른 강단들과는 대조적으로 풍성한 그의 설교를 생각하면, 그 방대한 양과 그 질을 생각한다면 그의 이야기에 우리가 귀기울일 필요가 충분히 있다. 그의 설교는 이런 경외적 접근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68)
3. 구원적 접근
(1) 성경이 주어진 목적을 기억하라
로이드 죤즈는 성경에 접근할 때마다 성경의 기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성경의 기본 의도는 인간에게 구원의 지식과 경건한 삶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는 데 있다(딤후 3:15-16). 하지만 이것은 성경을 개인 구원의 교과서라는 좁은 의미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로이드 죤즈가 강조하는 바는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목적인 자신과 인생의 ‘만남’과 교제에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 접근할 때 이 기본 의도와 부합해야만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69)
(2) 지적이거나 이론적 접근만으로는 불완전하다
그는 성경에 대한 잘못된 접근은 자신의 영적인 삶에 덫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가 강조하는 바는 성경을 바른 학문적인 자세로 읽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잘못된 의미로 연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70)
(3) 실제적인 유익을 기억하라
성경의 구원적 목적을 항상 염두에 두면 성경 연구에 있어서 몇 가지 실제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1) 해석자로 하여금 성경의 사소한 문제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더 중요한 메시지를 파악하도록 도와 준다. 학자들은 흔히 마태복음의 산상보훈이 누가복음의 평지복음과 동일한 것인지를 논쟁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그러나 로이드 죤즈는 거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71)
2) 한 구절이나 한 단어에 한 가지 해석만 취하도록 해석자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다.72)
3) 성경을 단어 위주보다 교리 위주로 연구하도록 해석자를 도와 준다.73)
제 2 절 본문의 의미에 대한 접근
1. 만족할 만한 이해의 필연성
(1) 해석자의 임무는 무엇인가
설교자는 반드시 성경의 해석자이어야 한다. 그의 임무는 엄밀히 말해서 두 가지 과정을 포함한다. 그는 먼저 본문이 본래적인 청중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 다음에 본문이 신자들의 실존적 현재에 대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해야만 한다. 대개 첫 과정을 해석, 두 번째 과정을 해설이라고 부른다. 전자는 의미에, 후자는 의의에 관심을 갖는다.74)
(2) 해석은 왜 필요한가
인간의 상황이 불변했다는 사실은 해석의 임무를 맡은 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전 2:26). 우리는 이것을 사도들이 그들과 문화적, 역사적 정황의 차이가 없는 동시대인에게 설교한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행 2:14 이하).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들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을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8). 자연인의 영적 무지 때문에 “성령을 소유한 우리는”(고전 2:13) 이 진리를 그들에게 해석해 주어야 한다. 이 진리는 궁극적으로 인간 탐구의 결과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의 결과이다(고전 2:12; 갈 1:12, 16). 그러므로 로이드 죤즈는 해석이 필요한 것은 두 정황의 문화적, 역사적인 차이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불변하는 영적 정황의 차이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우리가 21세기에 살기에 문화적, 언어적 차이로 인해 해석 작업이 더 복잡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로이드 죤즈는 두 정황의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진리를 왜곡시키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해석 작업의 출발점을 바른 지평에 두도록 돕고 있다.75)
(3) 해석의 목표는 무엇인가
설교자가 설교하기 전에 본문에 대한 만족할 만한 이해를 해야 한다고 로이드 죤즈는 강조한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이해’라고 할 때 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문제야말로 현대 해석학에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주제이다. 현금 해석학은 점점 더 이해 현상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이해의 본질을 논하고, 이해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지에 대해서 묻고 있다: 이해란 무엇인가? 언어의 본질은 무엇인가? 언어와 이해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을 논하고 있는 실정이다. 로이드 죤즈는 이 문제에 대해서 현학적인 대답을 직접 하지만 그의 설교를 통해서 실제적인 대답의 일말을 제시한다. 로이드 죤즈는 진리의 지적인 이해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으나 만족할 만한 이해는 진리에 대한 지적인 동의 이상으로 생각한다.76)
그에게 있어서 만족할 만한 이해라고 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진리에 대한 포용을 의미한다. 본문의 진리를 참으로 이해한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로이드 죤즈에게 있어서 진리의 이해와 포용은 하나님 말씀의 만족할 만한 이해라는 나눌 수 없는 전체의 두 측면이다. 이렇게 해석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로이드 죤즈는 그의 스승인 조나단 에드워즈와 일치한다.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본문의 의미는 객관적인 내용과 해석자의 개인적인 삶을 위한 의의라는 두 면으로 구성된다.77)
참된 개혁주의 해석학에 있어서 해석의 목표는 언제나 여기에 있다. 진리의 만족할 만한 이해는 해석자의 전 인격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먼저 그의 지성에, 그리고 그의 감정에, 마지막으로 그의 의지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 진리의 바른 이해는 경외심과 두려움, 기쁨과 찬양 속에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로이드 죤즈에 따르면 해석자의 가슴 깊숙한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토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사랑의 반응을 일으키기까지는 본문의 진리가 참으로 이해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78)
(4) 본문에 정직해야 한다
만족할 만한 이해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해석의 실제적인 과정이 요구된다. 로이드 죤즈에 의하면 이 실제 해석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하나 있다. 해석자는 반드시 본문에 정직해야 한다. 인간은 모두 편견의 산물로 태어나기 때문에 편견이야말로 참 해석의 가장 큰 대적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로이드 죤즈는 문제를 어물거리거나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대면한다. 비록 입장을 달리하기를 주저하면서도 필요한 경우, 본문에 대한 정직성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강요할 때는 과거의 유명한 해석자들과 입장을 달리하는 용기를 갖고 있다. 어떤 때는 칼빈, 카이퍼, 하지 등과 입장을 달리 하기도 한다. 그의 정직성의 결과로 전통에 덜 매인 해석을 했으며, 독창적인 해석이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79)
2. 분석적 접근
(1)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라
로이드 죤즈는 특정 본문의 연구를 진행시킬 때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실질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잘 알려진 사전이나 주석을 포함해서 입수할 수 있는 도구들을 모두 활용한다. 그 본문에 관한 설교들과 거기에 대해 연구한 글들을 읽기도 한다. 때로는 그것을 이해하기까지 몇 해고 보내기도 한다.80)
(2) 본문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라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는 본문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보다 더 유익한 방법은 없다고 로이드 죤즈는 믿는다. 왜냐하면 예컨대, 바울의 편지들에는 반드시 특정한 구조가 있으며, 팔복에도 특정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문장마다 우연히 거기에 배치된 것이 아니고, 영적, 논리적 귀결에 따라서 성령의 영감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분석적 접근의 목적은 본문에 내재한 특정한 구조를 발견하는 것이며 거기에 따라 본질적인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방법에 대한 많은 언급은 이런 빛 아래서 이해해야만 될 것이다.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주제를 다루시는 우리 주님의 방법에도 동일한 것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 분석은 종속적인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이고 지적인 의미에서 분석 자체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잘못된 것이다.81)
로이드 죤즈에게 있어서 분해는 반드시 자연스러워야 하고 인위적이어서는 안되며 본문에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한다. 무리한 단계까지 나아가서는 안되지만 할 수 있는 한 세밀히 분석해야만 한다. 이 분석으로부터 로이드 죤즈는 본문의 개략적인 구조에 대한 관찰로 나아간다. 로이드 죤즈는 설교마다 대개 본문 분석을 하고 있다. 그의 설교에서 분해의 기능은 본문에 대한 배경과 해석적 정황을 제공하는 것이다. 분해하는 과정에서 로이드 죤즈는 일반적인 분석을 개별적인 분석보다 먼저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권하고 있다. 첫째로, 전체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을 하고, 그 다음 문단에 대한 개략적인 분석을 한 다음 마지막으로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해야 한다.82)
3. 문법적 접근
(1) 유서 깊은 방법
로이드 죤즈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가장 유서 깊은 방법인 역사적 문법적 해석 방법을 충분히 활용한다. 이 방법은 본문을 해석할 때 그 역사적 기원과 문법적 구조를 살피는 것이다. 문법적 접근의 목표는 문법의 규칙에 따라서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다.
(2) 원본과 역본에 대한 그의 고려
로이드 죤즈의 문법적 접근은 단어나 구절이나 문장의 단순하고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정상적이고 문자적인 뜻을 살피는 것이다. 그는 문자적인 의미가 뒷받침되지 않는 의미 부여를 하는 어떤 접근 방식도 그 타당성을 부인한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원 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찾아야 하며 평범하고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83)
로이드 죤즈는 설교자들에게 단어마다 살펴서 그 의미를 물으라고 호소한다. 동시에 그는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관찰하는 것만큼이나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이 말은 설교자들이나 본문에 대해서 자의적인 상상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본문에 있는 특정 단어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하라는 뜻이다. 그의 문법적 접근은 첫째로 사본에 대한 고려를 포함한다. 사본의 증거는 대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때로는 최선의 사본도 어떤 말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말들이 나타내는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신약 다른 곳에서 분명히 발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의 신학적인 입장을 본문으로 읽어 들어간 것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는 사본학으로는 어떤 구절이 포함되어 있는지 제외되어 있는지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솔직히 인정한다. 해석의 실제 과정에서 원문을 계속적으로 살피며 생략되어 있는 단어를 알아낼 뿐 아니라 원본에 사용된 정확한 단어가 무엇인지 밝히기도 한다. 원본에 대한 고려와 함께 그는 여러 가지 번역본들을 살펴본다. 강단에서는 흠정역 성경을 사용하지만 연구를 할 때는 여러 가지 다른 번역들을 활용한다. 원문에 좀더 가까운 번역을 찾기 위해서, 또한 좀더 분명한 의미를 밝히기 위해 사용한다. 때로는 역본에서 생략된 단어들과 부정확한 번역들을 지적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그는 흠정역이 바람직하지 못한 번역들을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구절의 의미는 1611년 이후로 바뀌어진 것들을 인정하면서도 흠정역과 그 용어 사용을 대체로 옹호한다. 하지만 로이드 죤즈는 새 번역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 자신이 새 번역들을 사용하지만 주의해서 그리고 비판적으로 사용한다. 사실 현대 번역뿐만 아니라 흠정역에서도 번역자의 신학적인 입장이 배제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학식이나 영성 면에서 볼 때 현대 번역자들이 흠정역 번역자들보다 더 나은 입장에 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새 번역들을 사용할 때 조심스럽게 비판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84)
(3) 문법의 기본 사항들에 대한 그의 고려
로이드 죤즈는 헬라어의 뉘앙스를 알고 사용하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헬라어의 성, 수, 격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자주 동사의 시제나 태에 대해서 관심을 쏟는다. 동시에 이런 면에만 지나치게 관심 갖는 것도 위험하다고 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그는 원어 지식은 중요하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85)
(4) 어휘론적 측면에 대한 그의 고려
개별 단어에 대한 정당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 로이드 죤즈는 어휘 의미론을 활용한다. 그의 설교에는 때때로 안트와 깅그리히의 헬라어/영어 사전이나 ‘권위 있는 그림-쎄이어 사전’으로부터 헬라어 단어의 실제적인 어원적 의미의 정의를 인용하기도 한다. 로이드 죤즈의 로마서 3장 25절 ‘화목’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보면 라더마헤르가 지적하듯이 단순히 한 단어의 가능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전체 가르침을 살피므로 정당한 통시론적 언어학 연구의 좋은 예를 발견할 수 있다.86)
헬라어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기 위해서 로이드 죤즈는 통시론적 언어학뿐만 아니라 공시론적 언어학도 활용하고 있다. 물론 그는 이와 같은 전문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그의 설교를 보면 이와 같은 활용을 여러 곳에서 하고 있다. 로이드 죤즈는 한 단어의 의미를 의미론의 동의관계나 반의관계에서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어떤 종류의 모호함은 유용할 뿐 아니라 바람직한 것은 사실이다. 원 저자가 모호함을 선택한 곳에 정확함을 찾아서는 안 된다.87)
(5) 구문론적 측면에 대한 고려
로이드 죤즈는 ‘연결의 문제’, 즉 접속사에 특별한 주의를 하고 있다. 그의 설교에는 여러 가지 접속사의 기능들을 계속적으로 설명한다. 그의 해석 실제를 살펴보면 접속사는 때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접속사는 단어나 문장이나 문단에 포함된 사상들을 연결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의 접속사에 대한 고려 즉 구문론적 측면에 대한 고려는 해석학에서 합법적이고 유용하다. 왜냐하면 접속사는 그들이 연결시키는 사상들의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88)
(6) 형태론적 측면에 대한 고려
로이드 죤즈는 헬라어 어순을 중요하게 파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로이드 죤즈는 바울의 서신에 나오는 파격구문이나 곡언법도 이런 범주 안에서 이해한다. 하지만 여기서 생길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기를 잊지 않는다.89)
(7) 해석 역사에 대한 고려
본문의 의미를 알기 위해 로이드 죤즈가 행한 문법적 접근의 흥미로운 요소는 어려운 구절에 봉착할 때 그 본문에 대한 해석 역사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다.90)
4. 문맥적 접근
(1) 두 가지 기본 문맥
문맥적 접근을 생각하지 않고 강해 설교가로서 로이드 죤즈를 떠올릴 수 없다. 그의 문맥적 접근에 대한 참고 구절을 일일이 대는 것은 실없는 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문맥적 접근을 하지 않는 설교를 발견하는 편이 오히려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문맥적 접근을 이해하는 데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로, 문맥이라는 말이 확실치 않다. 사람에 따라서 의미가 다를 수 있다. 둘째로, 설교자로서 로이드 죤즈는 그 말을 사용하지만 정의해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마다 다른 문맥을 염두에 둘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형태를 생각하는 것 같다: 하나는 역사적 정황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적 정황이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겹칠 수밖에 없다.91)
(2) 역사적 정황
로이드 죤즈는 성경을 그 본래의 역사 정황 속에서 이해한다. 로이드 죤즈는 어떤 단어나 구절을 설명할 때 원 청중의 사고 세계라는 정황 속에서 한다. 본문이 형성된 역사적 정황에 대한 그의 고려는 저자와 원 청중의 상황에 대한 지식을 요구한다. 로이드 죤즈는 그의 산상보훈 설교에서 첫 설교를 산상보훈 전체의 배경과 서론을 제공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설교에서 로이드 죤즈는 본문을 그 특수한 역사적 정황 - 말하는 사람으로서 주님과 그의 청중의 역사적 정황에서 설명한다. 이러한 종류의 역사적인 주해는 본문의 정확한 해석을 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92)
(3) 언어적 문맥
성경의 상이한 장르를 인정하는 것이 언어적 문맥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로이드 죤즈는 이러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 비유라든지, 예언이라든지, 혹은 시 등의 문학적인 장르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로이드 죤즈가 문맥을 언급할 때는 특정한 본문이 나타나는 언어적인 문맥을 주로 의미한다. 로이드 죤즈는 본문의 의미를 근접한 문맥에 비추어서 이해한다. 그는 본문 앞뒤의 문맥을 자세히 관찰한다.93)
때로는 몇 구절로서 하나의 주제별 문맥이 형성되기 하지만(마 5:3-10) 대개는 한 장을 이룬다(마 6장; 7장). 한 문단속에 있는 중심 주제에 의한 해석은 로이드 죤즈의 특징에 속한다. 로이드 죤즈는 즐겨 특정 저서나 저자 단위의 문맥을 해석학적인 배경으로 취급한다. 물론 이 부분은 마태복음의 한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그의 산상 설교집에서 마태복음 5장 3-7절은 하나의 단일한 해석학적 단위로서 취급한다. 로이드 죤즈는 자주 산상보훈을 세세한 부분을 다루기 전에 전체로서 고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94) 로마서와 에베소서에 대한 그의 설교에서는 동일한 저자의 평행 구절이나 전 정경적 문맥을 살피기 전에 특정한 저서 단위의 문맥을 해석학적 단위로서 먼저 살피고 있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 1장 19절에 나오는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에서 “따라”라는 단어를 살피기 위해 그는 먼저 동일한 1장에서 똑같은 단어가 똑같은 방법으로 쓰여진 곳을 먼저 살피고 그리고 나서 다음 장들을 살피며 끝으로 바울이 쓴 다른 서신서들에 나오는 평행 어구를 살피고 있다.95)
최종적이고도 가장 광범위한 언어적 문맥은 전 정경과 그 범위가 일치한다. 그러므로 그는 다루고 있는 본문을 설명하기 위해서 성경의 다른 부분을 자유롭게 활용한다. 그가 전 정경을 언어적 문맥으로 취급하는 것은 신앙의 유비와 성경의 유비에 대한 그의 확신에서부터 나온다. 그리하여 로이드 죤즈는 성경은 반드시 다른 성경과 조화되게 번역해야만 하고 또 성경은 반드시 성경으로 비교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96)
(5) 근접한 문맥의 기능
로이드 죤즈는 사본상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근접한 문맥을 사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어떤 헬라어 단어가 순수히 언어적인 입장에서 두 경우로 번역이 가능할 때 택일하기 위해 근접한 문맥을 활용한다. 만약 한 본문을 해석하는 데 두 가지 선택이 있다면 로이드 죤즈는 근접한 문맥에 의해서 그것을 결정한다. 그리고 만약 한 단어가 성경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을 때 그는 근접한 문맥이 그 의미의 정확한 측면을 보여 준다고 믿는다. 많은 잘못된 해석은 문맥을 무시하고 단어나 구절에만 집착한 결과라고 로이드 죤즈는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한 구절의 의미는 언제나 근접한 문맥에 의해서 결정된다. 한 구절의 근접한 문맥은 바른 이해를 하는 데 결정적이라는 것은 해석학의 공리이다.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문맥을 살피는 것은 바른 성경 해석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97)
제 3 절 본문의 의의에 대한 접근
1. 영적인 접근
(1) 영적인 의미와 본문의 교리
전문적인 의미에서 학자가 아닌 설교자인 로이드 죤즈가 사용하는 용어에 유동성이 있으리라는 것은 예견할 수 있다. 때때로 그가 본문의 영적 의미라고 부를 때는 그 의미를 결정짓는 방법에 관한 측면을 더 강조하는 것으로 영적 직관이나 영적 이해를 통해서 의미를 파악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때에 본문의 교리라고 부를 때는 어떻게 그것을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용하느냐 하는 규범을 강조한다.98)
(2)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는 영적 의미
성령의 조명에 의해서 사람들은 귀중한 진리를 이해하고 섭렵할 수 있으며 그것은 문법이나 지적인 영민함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으로부터 들을 준비를 하고 가르침을 받으려고 해야 한다.99)
(3) 성령의 조명하시는 사역과 기도
본문의 영적 이해를 위해서 많은 시간을 기도와 묵상에 보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로이드 죤즈는 생각한다. 그는 에베소서 1장 18절을 본문으로 한 설교에서 그 말씀이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드리고 있는 기도라는 사실로부터 다음과 같은 원리를 유추해 낸다.100)
첫째로, 신자들은 이 세상에 사는 한 성령의 조명하시는 사역이 항상 필요하다.101)
그가 유추한 두 번째 원리는 영적 지식은 분명히 점진적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그러나 그는 그들이 지식에 있어서 증가하기를 바라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점진적인 성장과 발달을 위해서 기도하며, 그들의 영적 이해가 항상 증가하도록 기도 드린다.102)
세 번째 원리는 우리의 이해의 눈을 밝혀 주시도록 계속 기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가 설명했듯이 우리의 제한된 능력 때문에, 우리의 유한한 조건과 죄의 결과로 인해서 그리스도인도 여전히 이 조명을 위한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다.103)
(4) 영적 의미와 성령의 동질성
성경 안에서 단번에 주어진 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날 설교자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조명이라는 것을 로이드 죤즈는 분명히 한다. 하지만 이 조명은 해석자의 영성의 정도에 따라서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 본문을 쓰게 한 동일한 성령을 소유하지 않는 한 해석자는 결코 본문의 영적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104)
오늘날 너무 많은 해석학에 관한 논의들이 기교의 문제로 전락되었기에 로이드 죤즈의 영적인 접근법은 우리에게 귀중한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전 세대와 비교해 볼 때 오늘날 우리는 해석에 있어서 기교의 부족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영적으로 충분히 성숙되어 있지 않은 것이 본문을 올바로 해석하는 데 실패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잔잔한 수면이 위에 있는 하늘을 아름답게 반영하듯이 성령에 의해서 들으려는 마음이 있어야 성경을 기록한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강조해야 할 중요한 점은 우리가 해석 작업을 수행할 때에 우리 자신과 성령과의 관계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105)
2. 교리적 접근
(1) 주해적 연구의 목표
로이드 죤즈에게 있어서 주해적 연구의 목표는 교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로이드 죤즈는 주해적 접근을 한 다음에 교리에 강조를 둔다. 이 교리적인 접근 문제에 대해서 로이드 죤즈는 청교도 설교 방식과 사도 바울을 추종하고 있다. 그는 산상설교에서 예수님께서도 동일한 접근을 하고 있는 점에 주의를 하고 있다. 이 교리적인 접근은 많은 현대 학자들에게 해석학의 적법한 절차로서 추천된다.106)
(2) 귀납적 방법
로이드 죤즈는 본문의 주해로부터 교리에 도달하기 위하여 귀납적 방법을 채택한다. 그는 교리를 규명하기 전에 본문에 있는 여러 가지 단어들을 먼저 하나씩 고려한다. 달리 말해 그는 본문의 단어에 교리를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단어로부터 교리를 이끌어낸다. 이 방법은 그로 하여금 본문을 부당하게 왜곡시키지 않게 한다. 하지(Hodge) 이후로 이 귀납적인 방법은 교리에 도달하는 타당성 있는 방법으로 인정되고 있다.107)
(3) 본문의 핵심
로이드 죤즈의 교리적 접근의 마지막 절차는 한 특정 본문의 핵심을 발견하는 것이다. 주어진 본문에 여러 가지 교리가 있을 수 있지만 로이드 죤즈는 먼저 어느 것이 본문의 가장 핵심 메시지인지를 묻는다. 만약 본문의 주된 핵심을 발견하면 그의 해석학적 임무는 사실상 완성되는 것으로 간주한다.108)
(4) 질문하는 기술
본문의 주된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서 설교자는 본문을 향해 질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로이드 죤즈는 설교를 준비하는 전 과정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질문을 던지는 기술은 성경적인 해석학의 전통에서 귀하게 여겨져 왔다. 본문 연구에 있어서 이 방법은 좋은 결실을 가져다 주는 묵상 방법이다. 최근에 강조되고 있는 해석학적 순환 개념은 이 전통 있는 기술과 이질적인 것은 아니다.109)
3. 검증절차
(1) 검증 과정에서 주석의 위치
로이드 죤즈는 두 단계에서 주석을 사용하여 자신의 해석을 검증한다. 첫째는 해석 과정에서 - 본문에 나오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와 본문의 주된 핵심을 발견하는데 - 주석이나 사전을 사용해서 자신의 이해를 확증한다. 둘째로, 설교를 구성한 다음 정확성을 위해서 한 번 더 주석에 돌아가서 그가 작성한 메시지를 점검한다.110)
(2) 검증 과정에서 기독교인의 경험의 위치
그의 검증 과정에서 일반적인 고찰을 한 가지 하는 것이 몇 가지 부정적인 테스트를 하는 것보다 유익할 것 같다. 로이드 죤즈는 모든 가르침은 경험이나 느낌이나 결과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약의 가르침에 의해서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 이단 학설과 종파들도 그들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구절들은 반드시 경험에 의해서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로이드 죤즈는 문법적이나 문맥상으로 아니면 신학 전통상 두 가지 이상 해석이 가능할 때 기독교인의 경험을 타당한 시금석으로 사용한다. 로이드 죤즈는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기본적인 시금석으로 사용하지 않고 부가적인 시금석으로 사용한다. 만약 특정 해석이 그리스도인의 경험과 일치하면 그 해석을 올바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경험 자체는 충분한 시금석이 아니지만 각 주해의 정확성을 위한 부가적인 시금석으로는 불가결한 것이라고 본다. 이 점에 있어서 로이드 죤즈는 스펄젼과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다.111)
(3) 몇 가지 부정적인 검증
로이드 죤즈의 산상 설교집을 보면 성경 다른 곳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부정적인 검증 방안을 제시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한 명제와 다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 사람이든지 그의 해석이든지 둘 중 하나가 잘못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스꽝스럽든지 실천하기에 불가능한 것이라면 해석이 잘못된 것이다.112)
제 4 절 특징적인 해석 원리
1. 성경은 성경으로
(1) 이 원리의 정의와 설명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는 기본 원리는 그의 해석 실제 속에 내재되어 있다. 이것을 부정적으로 정의하면 어떤 성경도 다른 성경과 모순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긍정적으로 정의한다면 성경은 성경과 비교해서 해설하고 밝혀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이 원리의 배후에는 로이드 죤즈의 설교와 신학과의 관계에 대한 입장이 내재되어 있다. 그는 설교자가 단일체인 전 성경적 메시지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조직 신학에 대한 좋은 기반을 갖는 것이 설교자에게는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 조직 신학은 설교의 배경과 설교를 통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113)
(2) 원리의 고찰
세밀하게 고찰해 보면 로이드 죤즈는 해석을 하면서 이 원리를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적용하고 있다.
1) 로이드 죤즈는 본문을 성경의 근본적 가르침 혹은 기본적인 교리와 모순되지 않도록 해석한다.114)
2) 로이드 죤즈는 성경의 동일한 주제를 다루는 명료한 구절과 좀더 충분한 설명이 나오는 구절로써 본문을 해석한다.115)
3) 그는 먼저 동일한 저자, 다음 다른 저자가 말하는 유사한 구절로써 본문을 해석한다. 그는 성경의 난해한 구절을 다룰 때 주어진 구절의 증거만 가지고 배타적으로 결론을 내리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116)
4) 그는 평행하는 구절로써 본문을 해석한다.117)
(3) 원리의 평가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려운 구절을 조화시키려고 하는 정통 신학자들의 노력을 조롱당하고 무시당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원리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신앙에 의지하여 유추하는 이 원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라는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이 원리를 내세우기 전에 대답해야 할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현대의 주해자들은 과연 얼마나 많이 성경을 통독했는가? 한 부분도 생략하지 않고 매일 성경을 읽지 않고는 이 원리는 한갓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로이드 죤즈가 이 원리를 일관성 있게 적용한 비결은 그가 끈질기게 매일 성경을 읽었다는 데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규칙적으로 맥체인 성경 읽기표에 따라서 해마다 구약을 한 번, 신약과 시편을 두 번씩 읽었다.118)
2. 문맥 안에서
(1) 원리의 설명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는 첫 번째 원리를 배타적으로 강조할 때 설교자는 손쉽게 그가 가진 교리 체계를 특정 본문에 강요할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그의 첫 원리는 두 번째 원리에 의해서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어떤 특정 구절을 해석할 때도 총체적인 진리에 의해서 통제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설교자는 그 해석이 특정 구절로부터 나온 것인지 아닌지를 점검해야만 한다. 어떤 해석은 성경 전체의 빛 속에서는 타당할 수 있지만 특정 문맥에서의 타당성 여부를 살펴야 한다. 달리 말해 설교자의 해석은 항상 성경적이어야 하는 동시에 문맥에 적합해야만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가 가진 교리 체계를 특정 본문에 읽어 들어가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119)
(2) 원리의 고찰과 평가
로이드 죤즈는 해석 과정에서 두 가지 기본적인 해석 법칙을 사용함으로 이 원리를 구체화시킨다.
첫째, 더 큰 문맥의 주도적인 주제로써 모든 명제를 해석하라: 로이드 죤즈는 문단 단위의 문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문단의 특정한 본문의 해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만약 주어진 본문의 어떤 명제의 해석이 더 큰 문단의 주도적인 주제와 모순될 때는 그것을 올바른 해석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이 법칙을 로이드 죤즈는 그의 해석 작업에서 보편적으로 적용한다. 그러므로 특정 경우를 별도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 법칙이 다른 경우보다 더 눈에 잘 드러나는 경우들도 있다.120)
로이드 죤즈의 마태복음 7장 주해는 이 경우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로이드 죤즈가 지적했듯이 이 장을 서로 내적인 관련이 거의 없는 격언체 구절들의 집합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로이드 죤즈는 7장을 내리 흐르고 있는 심판이라는 주도적인 주제를 강조함으로써 그러한 견해의 피상성을 설득력있게 반박한다. 그러므로 7장의 모든 구절은 이 심판이라고 하는 주도적인 주제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 법칙의 또 하나의 예증은 로마서 7장 1절에서 8장 4절에 걸친 그의 설교에서 살펴볼 수 있다. 거기에는 율법 - 그 기능과 한계라는 주도적인 주제에 의해서 세세한 모든 주해가 결정된다. 이 법칙을 활용함으로써 로이드 죤즈는 로마서 7장의 해석 역사에 분명한 공헌을 하고 있다. 이 방법이 가지는 확실한 이점은 세세한 문제에 빠져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121)
동일한 법칙을 그의 설교 에베소서 4장 1절부터 16절에서 분명히 추적할 수 있다. 거기에는 교회의 단일성이라는 주도적인 주제에 의해서 모든 말들을 해석한다. 로이드 죤즈의 이 법칙은 성경의 단일성이라는 그의 확신 위에 기초하고 있다. 성경적인 단일성은 어떤 구절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그 구절의 주된 사상의 빛 속에서 보도록 요구한다. 반면에 그 구절은 더 큰 문맥의 중심 주제의 빛 속에서 차례로 고찰되어야 한다.122)
둘째, 세세한 부분을 살피기 전에 전체적으로 구절을 살펴라: 로이드 죤즈는 어떤 가르침을 살필 때에도 전체적인 데서 부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현명한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나무로 인해서 숲을 보지 못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산상보훈의 해석과 관련해서 이 법칙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이 법칙을 성경의 다른 부분을 해석할 때에도 일반적으로 적용한다. 로마서나 에베소서 해석과 관련해서도 동일한 법칙을 적용하고 있다. 전체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을 갖기 전에 세세한 특정 구절로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확신한다.123)
제 5 절 해석학적인 공헌
첫째, 성경에 대한 첫 접근 방법이 정당하지 않으면 어떤 원리와 방법도 설교자를 하나님의 말씀의 현존적 이해라는 해석적 목표에 도달하는 데 도울 수 없다.124)
성경의 진리를 통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태초(창 3:24)부터 성령에 의해서 보호되고 있다. 그분은 계시하시는 분인 동시에 숨기시는 분이시다(눅 10:21; 8:10). 만약 설교자가 이 기본 진리를 망각한다면 그는 성경으로부터 살아 있는 메시지를 결코 붙잡지를 못한다. 이 점에 대한 로이드 죤즈의 공헌은 그가 전문적인 해석자가 아니라 모든 전통적인 가치가 의문시되는 20세기 중엽에 살았던 한 설교자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성경 전반에 대한 로이드 죤즈의 접근 방식은, 많은 현대 해석자들이 그 임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하는 것은 그들의 첫 접근 방식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125)
로이드 죤즈에 따르면 해석학의 분수령에 속한 문제는 두 접근 방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성경을 종교적인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의 전집으로 보고 비평적으로 접근하는 방식과 인간을 통해서 인간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으로 성경을 보고 경외심을 갖고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 결단으로부터 설교자는 어떤 해석 원리와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한다.126)
둘째, 로이드 죤즈는 결코 해석의 기본 방법들을 어느 것 한 가지도 소흘히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 방식들에 성실하게 집착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는 해석에 있어서 문법적이고 문맥적인 의미에 우선권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그 의미가 신자들의 삶에 주는 의의를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로이드 죤즈는 해석에 있어서 기본적인 단계를 신실하게 따랐기에 오늘 우리가 아는 설교자가 되었다. 여기에 다시 한 번 로이드 죤즈의 강점은 기본적인 방법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설교자로서 그것을 설교에서 보여 주느냐에 있다.127)
셋째, 로이드 죤즈는 새로운 해석 원리를 소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인 해석 원리를 새롭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128)
①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
②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은 그 문맥에 따라서 이해해야 한다.129)
그가 따르는 근본적인 해석 원리는 모두 성경적 해석학의 공리이다. 아무도 그 타당성을 반박할 자가 없다. 하지만 로이드 죤즈의 특징은 이 원리를 그의 실제 설교에서 해석학적 방식으로 적용하는 점에 있다. 로이드 죤즈는 이 해석학적 공리들을 그 자신의 성실한 실천에서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보여 주고 그 원리를 적용하는 방법론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 균형잡힌 두 원리의 탁월한 활용은 그를 “강해 설교의 왕자”로 만들었다.130)
넷째, 몇 가지의 해석학의 핵심적인 문제가 명백해졌다.131)
① 로이드 죤즈에게는 성경에 관한 해석자의 신념은 그의 해석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어떤 해석도 전이해 없이 할 수 없다.132)
② 로이드 죤즈에게는 설교자가 성경을 해석해야 할 필요는 근본적으로 문화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죄의 결과로 인한 영적 무지 때문이다.133)
③ 로이드 죤즈에게는 해석의 최후의 목표는 본문에 대한 새로운 지적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 대한 만족할 만한 영적 이해를 하는 것이며 관여한 해석자의 인격에 영향을 주어야만 한다.134)
④ 로이드 죤즈는 해석 과정에서 현대 해석학의 “맹점”이라고 하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정당한 고려를 하고 있다.135)
⑤ 따라서 로이드 죤즈는 기도를 해석 과정에서 불가결한 것으로 분명히 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를 통한 겸손한 청취를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조명하는 그분의 정상적인 통로이다.136)
⑥ 설교자를 위한 로이드 죤즈의 가장 실제적인 큰 공헌은 질문을 던지는 기술이라고 부른 묵상의 방법이다.137)
⑦ 만약 설교자가 로이드 죤즈의 해석학적 원리와 방법에 충분한 시간과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는 현금의 당면한 딜레마로부터, 오늘날 “최대의 신학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경탄과 두려움과 기쁨과 찬양의 느낌”을 회복할 것이다.138)
제 6 절 로이드 죤즈 설교의 원리와 방법
설교는 반드시 강해적 이어야 한다고 로이드 죤즈는 믿는다. 이 명제는 설교문의 형태를 포함한 주해와 설교문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는 이 문제를 가장 어려운 문제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생각한다. 설교문은 수필도 아니며 강의도 아닌 동시에 그렇다고 성경 구절에 대한 가벼운 주석도 아니다. 설교문은 특정 형태를 가져야 하며 이 특정 형태가 설교문은 설교문으로 만든다고 믿고 있다. 설교는 강해에 기초하지만 이 강해가 특정 형태를 지닌 메시지로서 형태를 갖추게 될 때 설교문이 된다. 그러면 그의 설교문을 분석함으로써 이 특정 형태의 윤곽을 그려본 후 강해 설교의 두 가지 기본 요소를 평가해 보자. 이미 쓰여진 로이드 죤즈에 대한 두 논문은 어떤 의미에서 강해 설교를 다룬 것은 사실이지만 케이스(Keith)는 로이드 죤즈를 포함한 세 사람의 강해 설교자를 연구하므로 강해 설교 개념 정의에 국한된 반면 페니(Penny)의 연구는 그의 강해 설교를 연구하기는 했지만 그의 설교 자체를 살피지 않고 그의 책 「설교와 설교자」에 한정된 형편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론 뿐 아니라 그의 설교 자체를 연구함으로써 그의 설교학적 원리를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139)
1. 설교의 기초로서 청중 분석
(1) 설교자의 기본 의무
설교자는 청중들의 상태를 분석하고 설교를 준비할 때에 그리고 메시지를 전달할 때에 그것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청중 분석이 그들에게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를 부분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청중의 상태에 따라서 성경의 모든 메시지를 세 가지 특별한 유형에 담아서 전달해야 한다.140)
이 문제에 관한 로이드 죤즈의 주장은 토론한 여지가 없이 정당하다. 설교자의 임무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말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중들이 얼마만큼 아는지에 대해서 파악해야 하고 그들의 상태에 따라 설교를 조정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로이드 죤즈는 청중들의 상태에 따라서 그 가르침을 조절했던 목회자의 마음을 가진 바울과 베드로와 예수 그리스도를 예로 들고 있다.141)
(2) 가장 치명적인 가정
청중 분석을 하는 것이 설교자의 의무이지만 그 청중 분석은 올바르고 정확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잘못된 유형의 설교를 하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한 가장 치명적인 가정의 하나는 등록된 교인이고 예배에 규칙적으로 참석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금세기에 교회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로이드 죤즈는 이러한 가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자기 자신의 경험과 목회 경험을 통해서 설득력 있게 보여 주고 있다.142)
(3) 영적 상태에 대한 평가
이런 상황에 비추어서 로이드 죤즈는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일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설교자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너무 쉽게 그 사람들을 신자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설교자가 해야되는 첫째 일이 그들의 영적 상태를 분별하는 것이다. 그들의 영적 상태에 대한 오직 두 가지 가능성만 있다: 그들은 ‘육신에’ 속했든지 ‘성령에’ 속했든지 양자 중 하나이다. 설교자가 회중에게 나아갈 때에 그는 이 두 가지 범주를 사용해야 하고 다른 모든 범주들은 버려야 한다. 말하자면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종이든지, 세례를 받은 사람이든지, 신자의 자녀든지 불신자의 자녀든지를 구별할 필요는 없다.143)
(4) 청중의 능력의 수용
설교자가 이런 두 가지 기본적인 범주를 청중들에게 적용해야 하는 동시에 그는 또한 각 범주에도 여러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유형을 구별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각 유형에 따라 주어야 할 적절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일에 설교자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 로이드 죤즈는 단 두 사람도 똑같은 방식으로 다루지 아니한 우리 주님이 경우를 본받아야 할 예로 들고 있다. 로이드 죤즈는 이것을 불신자에게만 적용하지 않고 신자들에게도 허용하는데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이해의 정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이런 문제를 잘 분별하고 판단해야 하며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 적절한 하나님 말씀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이드 죤즈는 이 주장의 성경적 근거로서 고린도전서 3장 1-3절과 히브리서 6장을 들고 있다.144)
마지막으로 로이드 죤즈는 설교자는 자신의 진전 단계나 청중의 성숙도에 따라서 전달하는 방식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교를 준비하기에 앞서서 설교자가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유형의 설교를 할 것인가? 그는 그의 이론과 실제를 바탕으로 세 가지 유형의 설교를 추천하고 있다. 첫째, 불신자에게 하는 설교, 둘째로, 신자에게 경험적으로 하는 설교, 셋째로, 신자에게 직접적인 교훈적인 설교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너무 절대적인 의미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설교자가 메시지를 준비할 때 필요한 일반적인 지침일 뿐이다. 이러한 서로 다른 유형들은 상호 관련되어 있고 의존되어 있다.145)
2. 전도 설교
(1) 전도 설교가 없는 교회
앞에서 살핀 잘못된 청중 평가는 필연적으로 잘못된 유형의 설교를 하게 되어 양육에만 전념하고 전도적인 요소가 완전히 무시된 설교를 낳게 된다. 그런 설교는 참된 그리스도인을 위해서는 그런 대로 유용하지만 신앙의 근본 요소가 결여된 자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매우 위험한 장소로 전락될 수 있다.146)
(2) 명목상의 기독교
잘못된 유형의 설교로 말미암아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하며 죄를 깨닫게 해 줄 만한 설교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세대가 성장하게 된다. 로이드 죤즈는 설교자로 부름받았을 때에 아무도 명목상의 기독교를 참된 구원 경험으로 믿었던 자신이 했던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고 전해진다.147)
복음의 능력에 다시 사로잡히지 않고 전도 설교를 들을 수 있다면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한다고 로이드 죤즈는 생각한다. 로이드 죤즈는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 때문에 그러므로 틀림없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추정하거나 신자들의 가정에서 세례를 받은 아이들이라고 해서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는 경향에 대해서 개탄하고 있다.148)
(3) 주 1회의 전도 설교
명목상의 기독교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성경적인 의미의 전도 설교를 하라고 로이드 죤즈는 권한다. 그는 이것을 ‘절대적인 법칙’으로 삼고 있다.149)
그는 목회를 하는 동안 언제나 주일 저녁에는 전도 설교를 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그의 관습을 추종하기보다는 설교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신축성 있는 적용이 필요할 것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주일 저녁에 많이 오는 곳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고 오전 예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출석하는 곳에서는 주일 아침에 전도 설교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또한 기독교가 전통적인 종교가 된 지역에서는 전도 설교를 하기 제일 좋은 기회는 성찬 때인데 그 때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찬에 참여하기 위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전도 설교는 선교지에서만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관습이다.150)
(4) 하나님의 거룩을 먼저 설교하라
로이드 죤즈는 전도 설교다운 설교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도 설교는 우상의 헛됨과 공허함과 쓸모없음을 폭로시키며 우상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영광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또한 전도 설교는 하나님의 율법을 제시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과 거룩에 관한 선포로 시작해야 한다.151)
전도 설교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도록 하고 회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죄를 깊이 인식하는 것은 참된 회개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설교자의 엄숙한 임무는 죄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폭로시키고 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거룩을 설교한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대비책을 선포하는 것 역시 설교자의 필수적인 임무이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님이 사랑을 동시에 설교해야 한다. 하지만 로이드 죤즈는 전도 설교에 있어서 메시지를 제시하는 바른 순서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152)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행 20:21)을 선포한 바울의 메시지와 비교해 볼 때 로이드 죤즈는 신약의 전도 설교 방법을 따르고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153)
(5) 전도 설교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
처음에는 그들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가정하는 설교에 대해서 기분 나쁘게 여기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성가시게 여기기도 한다.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설교를 들을 때에 진리에 대해서 적대적이 되기도 한다. 설교를 들으면서 불안을 느끼고 결국은 마지못해 자신을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진리인 것을 인식하고 계속해서 교회에 나온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이 영혼에 대한 심각한 고민 가운데서 때로는 몇 개월씩 걸리기도 하는 한동안의 회개 기간을 통과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서 종국적으로 진리를 분명하게 보게 되고 그 능력을 경험하게 되어 성령에 의한 중생의 결과로 참된 신자가 된다.154)
제 6 장 결 론
그의 설교의 세 가지 근본 원리는 그의 설교의 세 가지 측면에 따라서 지적될 수 있다. 설교의 내용과 관련해서 그는 설교는 신학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설교의 형태와 관련해서는 설교문은 강해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설교의 전달과 관련해서는 설교는 성령의 능력 아래 행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참된 설교에 귀착하기 위해서 이 세 원리들은 설교의 세 가지 측면을 각기 통제해야 한다.
로이드 죤즈의 해석학적 공헌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성경 전반에 대한 로이드 죤즈의 접근 방식에 관한 우리의 연구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시초부터 성경에 대한 접근이 정당하지 않으면 어떠한 해석 원리나 방법도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의 이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로이드 죤즈에 의하면 해석학적인 분수령을 만드는 문제는 두 가지 상반된 접근 방식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성경을 종교적인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의 작품집으로 보고 비평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택하든지 사람을 통해서 사람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으로서 성경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접근하든지 택일해야 한다. 이 결정으로부터 설교자는 명백히 어떤 해석의 원리와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둘째, 본문의 의미와 의의에 관한 로이드 죤즈의 접근 방식으로부터 로이드 죤즈는 해석학적인 기본 방법을 소흘히하지 않고 거기에 집착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본문의 의미에 관한 한 그는 문법적이고 문맥적인 접근을 기본적인 것으로 강조한다. 본문의 의의에 관한 한 그는 영적이고 교리적인 이해를 강조한다.
셋째, 로이드 죤즈의 특징적인 해석 원리에 관한 연구로부터 그는 새로운 해석학적인 원리를 소개한 것이 아니라 역사 깊은 원리를 되풀이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는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아울러 성경에 나오는 모든 진술은 그 모든 문맥 내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로이드 죤즈는 이 원리를 신실하게 실천해서 그 적용 지침을 제공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강해 설교의 왕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그의 특수한 해석학적 공헌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성경의 권위에 대한 해석자의 전 이해의 절대적인 중요성의 강조
② 해석의 필요에 대한 궁극적인 이유로서 인간의 타락에 대한 주장
③ 해석의 궁극적인 목표로서 본문의 영적 이해에 대한 재확인
④ 해석 과정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에 대한 정당한 고려를 하도록 함.
⑤ 해석 활동에 있어서 불가결한 요소로서 기도를 주창
⑥ 본문의 묵상 방법을 소개
⑦ 성경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쁨의 회복
설교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설교의 미미한 영향력 아래 살고 있는 우리는 설교 사역의 존엄성을 확신하며, 실제로 높은 기준을 가지고 설교하며, 성공적으로 설교 사역을 감당한 로이드 죤즈의 설교관과 그의 설교의 원리를 통해서 성공적인 사역의 원리는 반드시 설교라야만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필자가 이 논문을 쓰면서 확신한 것은 앞으로의 사역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설교에 목숨을 걸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로이드 죤즈의 설교에 대해 더 연구해야 될 분야는 그의 교리적 설교의 측면, 진단적 설교의 측면, 그리고 그의 설교에 있어서의 성령의 기름부음의 중요성 등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