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인근 마우이섬은 숲이 울창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섬 어디를 가도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화산 폭발로 이 섬이 생겼는데, 용암 성분 대부분이 유황이어서 곤충이 살지 못하는 탓이다.
먹이가 될 곤충이 없으니 먹이사슬 구조상 새가 살지 못하는 것이다. 독일의 숲에는 뱀이 잘 살지 못한다. 뱀은 습기를 싫어하고, 뜨거운 햇볕에 마른 땅을 좋아하는데, 비가 많은 독일 기후에서는 뱀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이라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냥 주어진 조건대로 살면 제 욕심과 죄악 때문에 멸망의 길로 향하게 돼 있다(롬 3:9∼18).
그러나 감사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조건을 뛰어 넘는 은혜를 주셨다. 열매 맺지 못하는 우리의 불모지 인생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신다(요 10:10).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과소평가된 가치
미국인들이 하는 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개발이 안된 암흑지대는 아프리카나 시베리아가 아니다. 바로 당신의 모자 밑이다."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는 우리의 속담과도 일맥이 상통한다. 자기 자신의 어두운 면을 가장 모르는 사람도 남이 아닌 자신이라는 좀 부정적인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긍정으로 고쳐 생각하면,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가능성의 사람인지 가장 모르는 사람도 나 자신이란 말이다. 무한한 자원과 원석들이 숨겨진 곳, 가능성이 살아 숨 쉬는 내 삶의 최후의 프론티어, 그게 내 모자 밑이라는 말이다.
우리를 '그의 지으신 바,' 즉 걸작으로 생각하시는 전능자가 계시다. 하지만 우리는 왜곡된 자아상에 매여 상처받고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걸작으로 지으신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왜곡된 자아상을 회복하는 길이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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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
어느 원로 목사님의 이야기다. 그는 23세에 목회를 시작했는데 나이 든 교인들이 기도할 때마다 자기를 가리켜 “어린 종, 어린 종”이라고 했다. 그 말이 귀에 따가웠다. 40줄이 되니 “젊은 종, 젊은 종”이라고 하더란다. 이제나저제나 “나는 언제 ‘어른 종’이 되나’ 하고 마음속으로 고민했다. 하지만 은퇴한 지금 그 목사님은 그때를 그리워한다. ‘어린 종, 젊은 종’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시작할 때는 연약하고 서투르다. 때로 지도자는 ‘어린 종’을 자처할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들면 서둘러 타협하고, 눈 감고 모르는 체하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죄인은 낙엽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몸을 떤다. 어린아이가 주위에 늘 민감한 것처럼 기도하는 사람은 내면의 음성에 민감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에 민감해야 한다.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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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목자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조반을 드신 후에 베드로에게 요청하신 말씀이 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 목자는 지도자다. 백성을 먹여야 한다.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는 백성을 배부르게 먹인다. 백성을 굶기는 지도자는 진정한 목자라고 할 수 없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백성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백성을 잡아먹는 자들과 다를 바 없다. 이단과 사교(邪敎)의 교주들이 그러하다. 이 땅의 독재자들과 착취자들이 그러했다.
오늘날 기술과 문명이 첨단을 달리는 시대에도 백성을 착취하는 삯군이 아닌, 양떼를 먹이듯 백성을 진정으로 아끼는 선한 목자는 여전히 갈급하다. 백성의 머리 위에서 오만하게 군림하는 목자가 아니다. 밑바닥에서 온전히 섬기는 지도자가 참된 목자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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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과 망원경
사람의 평균 시력은 1.5 정도라고 합니다. 이 시력으로는 아주 작은 것이나 아주 큰 것은 볼 수가 없습니다. 필요한 정도의 크기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세밀한 배려의 결과입니다. 만약 사람의 눈이 현미경이라면 아마 세균공포증 때문에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의 눈이 망원경이라면 바로 앞을 보지 못해서 항상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일상용이 아닙니다. 단지 사람의 눈을 보충해주는 연구용일 뿐입니다. 현미경으로 남의 약점을 찾아내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현미경으로 자신의 허물을 찾아내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통전적 망원경으로는 먼 비전과 미래를 바라보되 늘 자신이 딛고 선 현실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현미경과 망원경도 필요하지만 이해와 사랑의 안경이 더욱 절실한 때입니다(마 7:4∼5).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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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
엄마가 어린 자녀와 캄캄한 밤길을 걷다가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려고 하면 순간적으로 아이 손을 꽉 잡는다. 반대로 엄마가 넘어지게 되면 잡았던 아이의 손을 놓아버린다. 다치더라도 엄마 혼자 다치겠다는 마음이다. 이렇게 자식은 엄마와 사랑의 줄로 매여 있어 안전하다.
우리도 돌부리에 채이고, 넘어지고, 구덩이에 빠져가며 살아간다. 환난과 고통, 질병과 배고픔, 걱정과 근심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다 똑같다. 원래 인간은 연약하고,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에게는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의 줄로 단단히 묶어 놓으셨다는 것(롬 8:34∼39).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더 꽉 잡아주시고, 안전하게 보호하신다. 그 분은 우리의 죄값마저도 홀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대신 치르셨다.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회협의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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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의 열쇠
우리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문제의 증상을 공격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증상 뒤에 놓여 있는 진짜 문제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2000년 전 베데스다 연못가. 38년 동안 하반신 마비로 누워있던 한 남자. 못의 물이 동할 때 처음 들어가는 병자는 낫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에 온 희망을 걸고 있었다. 연못 주위엔 그저 물에 먼저 들어가기 위한 경쟁과 견제만 가득하다.
이때, 예수님은 이 병자에게 다가오셔서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환자가 낫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일진대, 병자는 동문서답한다. 물이 동할 때 아무도 자기를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자기가 이 모양이라는 것이다. 그에겐 낫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연못에 먼저 들어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 있었다.
왜 문제해결을 못하고 유리하는 것일까.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지 못함인가. 그저 나으면 되는 것이다. "주님, 내가 낫기를 원하나이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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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용골
대형 조선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거대한 몸통을 드러낸 채 마무리 작업이 진행 중인 선박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배의 밑바닥 앞부분이 주둥이처럼 툭 튀어 나와 있었다. 이 부분은 용골이라고 불렸다. 용골은 한마디로 풍랑을 만난 배가 기울지 않고 중심을 잡도록 하는 쇠뭉치였다. 오뚝이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배는 매우 역설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목적지에 빨리 가려면 자기 몸을 가볍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무거운 쇠뭉치를 앞에 매달고 다닌다. 그러나 용골이야말로 배에 꼭 필요한 무게중심이다. 용골이야말로 희망의 중심이라고 믿는다. 우리 역시 인생의 망망대해에서 때론 순풍을, 때론 풍랑을 만난다. 우리가 기우뚱 거릴 때 중심을 바로 잡아주고, 넘어질 때 마다 일어설 용기를 주는 용골을 소유하고 있는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눅 21:33)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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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복 인생관
요즘은 재단 기술이 발달해 기성복 가게에서도 아주 근사한 옷을 구입할 수 있다. 맞춤 양복점보다도 유명 브랜드의 기성복이 값도 싸고, 디자인과 품질이 좋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기성복에 대한 아쉬움이 한가지 있다. 옷을 구입하는 사람의 신체 치수와 기성복 치수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스타일과 신체에 맞추려면 좀 비싸더라도 맞춤복 가게를 찾아 치수를 재고 완성품이 나올 때까지 며칠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인생을 유행 따라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철학과 인생관을 창조적으로 펼치고 싶다면 때로는 세파를 거슬러야 할 때가 있고, 비판과 도전이 요청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사시면서 하늘 뜻에 초점을 맞추셨다. 그리고 세상을 살되 세상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살 것을 주문하셨다. 세상맞춤이 아니라 하늘맞춤의 삶을 요청하신다. 복된 삶의 비결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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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의 부활
약 10억년 전에 지각 변동으로 생긴 해수면보다 400여m 낮은 소금바다(鹽海) 사해(死海). 최근 이 죽은 바다가 또 죽는다는 불길한 소식이 들려온다. 사해 주변 국가들이 요르단 강 상류에 댐을 건설해 공업용수, 농업용수,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바람에 사해로 유입되는 물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전부터 1년에 1m 정도씩 수위가 낮아져 앞으로 50년이 지나면 완전히 말라버릴 것이라고 한다. 사해에 완전 사망이 선고되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과 요르단, 팔레스타인이 홍해의 물을 끌어들이는 200㎞ 운하를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요르단과 이스라엘간 맺은 평화협정의 결과물이다. 평화는 회복과 생명을 동반한다. 인간이 자연과 평화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결국 인간을 통해서 파괴된 생명과 평화를 회복시키신다. 여기에 인류의 희망이 있다.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겔 47:8).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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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랑
작은 마을에 젊은 수도사가 부임해 왔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예배를 집례하고 기도하며 마을 길을 청소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 기도하며 도와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가 아이를 갖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그 처녀를 에워싸고 돌로 칠 기세로 물었습니다.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든 놈을 말하면 용서해주겠다.” 다급한 처녀는 둘러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 젊은 수도사를 가리켰습니다. 모든 사람이 놀랐습니다.
실망과 분노에 찬 사람들은 그 수도사를 돌로 쳐 죽이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시신을 추스르던 몇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수도사는 남자가 아닌 여자였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으나 그 수도사는 침묵으로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찌든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은 이 사랑을 아시나요?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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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는 안되는 일
아무리 돈을 많이 벌 수 있어도, 사람이 무엇이든 할 수 있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비롯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 자연은 하드웨어 창조질서다. 안식과 노동, 가정과 교회는 소프트웨어 창조질서다.
하드웨어건 소프트웨어건 창조질서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흔들리면 혼란과 재앙이 닥친다. 마지막 때는 창조질서가 무너지거나(마 24:29), 사라진다(계 21:1). 하나님께서 소나 양에게 풀을 먹이도록 창조하셨는데 동물 사료를 먹이니까 광우병에 걸린다.
동식물 종(種)의 멸종, 지구 온난화, 생명 유전자 조작, 가정 파괴, 교회 타락 등 모두가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위험 분자다. 경제적인 이유로 산을 뚫어 배를 드나들게 만드는 대운하 구상도 마찬가지다. 창조질서를 지키는 일은 신앙인의 책임이다.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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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라는 지우개
존 브로크만이 쓴 '지난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이란 책이 있다. 인쇄술, 전기, 비행기, 컴퓨터, 인터넷 등을 포함한 인류의 121가지 위대한 발명품이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외인 것은 그 대단한 발명품 중에 지우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지우개가 발명되면서 비로소 인류의 기록문화가 극적으로 발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우개가 아니었다면 지구상 여러 위대한 예술가의 데생이나 스케치, 또는 시인과 음악가의 작품들은 모두 현재와 같은 완성도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위대한 작가 하나님의 작품인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실수투성이인 인생을 예수의 용서라는 지우개로 완성도 높게 만드신다. 그 지우개가 없었다면 우리의 인생은 늘 고칠 수 없는 실수로 얼룩졌을 것이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용서란 지우개로 우리는 걸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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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의 삶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모범답안이다.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이 기도문을 모방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언약 가운데 살아가는 비결이다.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주기도문대로 살 각오를 해야 한다. 한마디로 '주기도문의 생활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우루과이의 한 작은 교회 벽에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라는 글이 있다. 구절구절마다 반성과 성찰을 덧붙여 놓았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가 우리 삶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뼈아프게 되묻는다.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말아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여'라고 하지 말아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지 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그리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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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찬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대하는 시각은 다양하다. 예수님이 참사람이자 참하나님이심을 믿기에 천주교나 정교회에서는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로 한층 격상시켜 성모로 추앙한다. 이에 반해 개신교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다른 어느 것도 신으로 숭배할 수 없다는 십계명을 근거로 '성모'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예수님도 어머니인 마리아를 지극 정성으로 공경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의 어머니를 마땅히 공경해야 하지 않을까. 숭배가 아닌 공경은 예수님과 우리가 따라야 할 십자가의 계명 중 하나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불렀던 찬양(눅 1:46∼56)은 모든 신앙의 어머니들이 부르는 찬가요, 우리가 신앙 안에서 공경해야 할 분들이 간직한 마음이기도 하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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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노래학습
“돼지에게 노래를 가르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왜냐하면 돼지도 힘들고, 그 노래를 듣는 사람도 힘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 돼지에게는 노래의 재능을 주시지 않은 까닭이다.
인간 또한 각양각색의 은사를 받았다. 그 은사를 통해 자신도 보람을 얻고, 다른 사람도 필요를 채움받을 수 있다. 그래서 적성검사 등을 통해 자신의 재능과 은사를 발견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이 돼지에게 노래를 가르치듯 엉뚱한 곳에 시간과 물질을 쏟아붓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인생을 망치고 만다.
조기 교육은 없는 재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모차르트에게 과학을, 에디슨에게 미술을, 피카소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주지 말라”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한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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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델
어느 대장장이가 여행을 떠나려는데 손님이 찾아와 말 발굽 편자를 건네며 똑같은 것 100개를 주문했다. 대장장이는 제자에게 편자를 모두 만들어 놓으라고 지시하고 여행을 떠났다.
그가 돌아와 만들어진 것들을 점검해 보니 대부분 불량이었다. 원본과 사이즈가 너무 달라 납품이 불가능했다. 제자는 고객에게 받은 원본으로 하나를 만들고 만들어진 것을 기본으로 다음 것을, 또 만들어진 것으로 다음 것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 방법으로 하다 보니 모양은 비슷했지만 갈수록 사이즈가 다른 것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누구를 모델 삼아 내 인생을 디자인할 것인가?'는 성도들에게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다.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 탁월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인생 모델은 예수, 바로 그 분이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모델삼아 소중한 삶을 만들고 있는가요?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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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지금은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배운다. 그러나 600년전까지만 해도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다. 그런데 1510년경 천문학자였던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지동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주위의 협박과 망설임으로 세상에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논문으로 발표될 때까지 무려 3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기까지는 고통과 시간이 필요하다.
21년전, 6·29 선언 당시 정부가 국민에게 항복을 선언한 것은 결코 패배가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 선언은 그 정치인의 자산으로 바뀌었고, 역사 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새 시대를 여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은 그렇게 온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죄와 고통의 쇠사슬에 묶이고 억눌린 채 살지 말자. 영원한 진리가 되시는 주님앞에 새로운 마음으로 돌이키고 회개하자. 주님은 일단 돌이키면 낫게 해주시고, 상처를 싸매주신다(호 6:1).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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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성공의 열쇠
가치투자의 창시자 워런 버핏은 성공적인 투자의 핵심은 손실과 위험을 견딜 수 있는 인내심과 배짱이라고 말했다.
시대의 변화를 읽을 줄 아는 감각이나 노하우. 그건 단지 고정관념일 뿐이다. 지식이나 감각만 가지고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아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주가의 변동성을 견디다 못해 주가가 떨어지면 팔고, 오르면 사는 즉각적 반응의 오류를 범하기 쉽기 때문이다.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하려는 사람은 기다림의 미학을 갖추어야 한다.
하물며 영적인 투자에 있어서랴. 인생의 주가가 한없이 폭락해도 끝까지 안 팔고 기다렸던 요셉의 기다림의 미학. 그것이 그의 인생 투자의 성공 열쇠였다.
아주 오랫동안 가치가 오르지 않던 자산도 언젠가는 오르며, 바닥 모르고 떨어졌던 주가도 언젠가는 제자리를 찾는다. 투자를 결정했다면 이젠 기다릴 차례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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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집
올 여름 중국 베이징에서 제29회 올림픽이 열린다. 선수라면 금메달을 따기 위해 최선의 땀을 흘릴 것이다. 올림픽 출전만 해도 대단한 영광이지만 가장 큰 영예는 역시 금메달이다. 그렇다고 금메달이 최상은 아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 따낸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은메달은 더 귀하다. 어떤 선수는 그 소중한 은메달을 받은 뒤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은메달의 눈물’이란 말의 유래다. 때때로 지나친 우리의 경쟁의식은 안쓰러울 정도다.
사업도, 자녀 교육도, 인간관계도 온통 경쟁 투성이이다. 비단 스포츠 선수가 아니라 보통 사람도 경주하듯 살아간다.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가? 매사에 기다리지 못하고 허겁지겁 서두른다. 우리 사회는 고장난 속도계를 고칠 여유와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의 행복은 경쟁이 아니라 여유에 있다. 그때 그때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면 마음이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4)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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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재활용
쓰레기는 분리수거되어 버려진다. 처리하기도 수월할 뿐만 아니라 재활용품으로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원마다 활용되는 기간이 있다. 경제도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이 기간을 사이클(cycle)이라고 한다.
한 사이클이 지나면 폐기처분되는 물품도 있지만, 폐지나 폐타이어 등은 재생용지나 재생타이어로 활용된다. 다시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리사이클링(recycling)이라고 부른다.
사람 역시 한때 쓰고 버림받을 운명이 결코 아니다. 일정 연령이 차면 은퇴해야 하지만, 고귀하게 제2, 제3의 삶으로 재활용될 수 있다. '은퇴하다'의 영어 표기는 '리타이어(retire)'다. 닳아버린 바퀴를 새 바퀴로 바꿔 달듯이 새로 거듭날 수 있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리사이클링을 잘하면 자연환경이 맑아진다. 리타이어링을 잘 활용하면 사회는 골고루 건강해진다. 모두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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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보전
오스트리아의 한 도시에서 시청 앞마당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옮기고 시설을 확장하기로 했다. 그러자 환경단체들이 그 나무를 지키기 위해 릴레이 시위를 했다. 시위가 며칠째 계속되던 어느날 밤, 시에서는 바가지차를 동원해 나무 위에 있던 사람들을 끌어내렸다. 결국 나무는 잘리고, 확장 공사는 진행됐다.
일면 개발만을 위해 환경보전은 외면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1992년 빈에 위치한 쓰레기 소각장을 새롭게 리모델링해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었고, 올 1월에는 제1회 오스트리아 환경기술대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환경산업을 육성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속 가능한 개발과 보전의 조화는 어려운 과제지만 인류가 반드시 완수해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인류에게 주신 첫번째 사명이 바로 모든 피조물을 잘 다스리라는 명령(창 1:28)이기 때문이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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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두 젊은이가 도박장으로 가는 길에 마침 교회 앞을 지나게 됐다. 교회 게시판에는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설교 제목이 붙어 있었다. 한 젊은이는 교회로 가고 싶어 옆의 친구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친구는 완강히 거절하며 도박장으로 갔다.
그로부터 30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감옥에서 한 죄수가 신문을 펼쳐든 채 엉엉 울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신문에는 대통령 취임 기사로 꽉 차 있었다. 죄수는 30년 전 도박장으로 간 젊은이였고, 취임 대통령은 교회로 간 젊은이였다.
미국의 22, 24대 대통령을 지낸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이야기다. 인생은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믿음도 선택이다. 엄밀히 말하면 신앙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받는 것이다. 교회에 가고 싶을 때, 헌신할 마음이 생길 때, 신앙을 요청받았을 때가 곧 선택받는 기회이며 자신이 선택할 기회이기도 하다.
강흥복 목사(상계광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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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권위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자신의 구두를 닦고 있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깜짝 놀라 "아니, 대통령이 자기 구두를 직접 닦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링컨이 빙그레 웃으며 농담으로 응수했다. "그럼 대통령인 내가 남의 구두를 닦으라는 말이오."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다.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대통령은 정책 결정권과 각종 인사권을 비롯해 국군통수권까지 갖고 있다. 그러나 그 권력은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건네진 것이 아니다.
모든 지도자는 섬김의 의무가 있다. 위임받은 권력을 '내 구두닦는 일(사리사욕)'로 채운다면 반드시 파국을 맞게 돼 있다. 권력을 통해 이뤄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지도자는 낮은 자리에서 바닥의 소리를 듣고, 심부름꾼이 되어야 성공한다. 예수님도 섬기는 자로 오셨다(눅 22:27).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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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기적
정치는 머리에서 시작해도 되지만 국민의 마음을 열지 못하면 결국 실패한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의 소통(heart to heart)'이 중요하다.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는 수많은 장애물 때문에 대통령 후보가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가 3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국민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경선 초기 민주당은 이라크 전쟁 문제로 찬반이 나눠져 있었다.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오바마는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 민주당에는 두 그룹의 애국자가 있다. 하나는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애국자이고, 다른 하나는 이라크전을 찬성하는 애국자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했다. 그리고 끌어안았다. 적을 만든 것이 아니라 동지를 만든 것이다. 예수님은 소외된 자들과 죄인들까지도 소통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다. 소통이 역사를 만든 것이다. 신앙은 소통의 역사다.
조영진 목사(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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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메이커
소설가 김소진이 쓴 ‘마라토너’란 단편에는 한 노장 마라토너가 등장한다. 그는 스스로 ‘페이스 메이커’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중요한 선수 옆에서 함께 달려주는 ‘바람잡이’다. 이봉주 선수 같은 히어로 선수들이 잘 뛸 수 있도록 초반에 적절한 보조로 이끌어주기도 하고, 상대 외국 선수를 견제해주기도 한다. 완주는 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는 그런 마라토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누군가 나의 바람잡이가 되어 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달려줄 사람이 있다면 내 인생의 달음질은 어떠한 곤경도 수월하게 이겨낼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한결같은 걸음으로 우리와 동행하고 계심을 증거한다. 천천히 걸어가시는 하나님을 따라 엄마의 손을 쥐고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한발짝씩 하나님을 따르는 일, 그것이 믿음의 길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출 33:14)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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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많은 의인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죄인과 자신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의인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옳다고 믿는 사람은 반성하거나 회개할 줄 모른다. 상대방이 틀렸다고 질책하며, 심지어 상대방을 죄인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서는 자책하거나 회개하는 마음을 찾기 힘들다. 그들은 용서받는 은혜도 누릴 수 없다. 바리새인의 전형이다.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면 회개와 용서가 가능해진다. 의인이 되는 축복도 함께 받는다. 가정과 직장, 사회생활에서 갈등을 피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쪽만이 옳다고 독불장군식으로 밀고 나간다면 해결책을 찾기 힘들다. 상대방을 죄인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은 상대적이다. 때로는 서로 인정해주고 인정받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곧 민주적 의요, 자유의 의요, 사랑의 의요, 살리는 의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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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와 부패
오랜 시간 식품을 저장하다 보면 발효와 부패라는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같은 음식이라도 발효되면 맛과 향기가 더 좋아지지만, 부패하면 썩어서 유해물질이 된다. 우유가 치즈가 되고, 배추가 김치가 되는 것은 모두 발효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고기나 찌개 같은 음식은 오래 놔두면 부패해서 못쓰게 된다. 부패한 음식은 먹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유해하기 때문에 당장 버려야 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품과 행실이 원숙해지면 사회 발전에 기여하게 되지만, 부패해지면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 사회를 부패하게 만들고 어지럽힌다. 없느니만도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교회도 조심해야 할 ‘누룩’(막 8:15)처럼 부패한 사람들이 많을 때는 변질되어 세상의 비난을 받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누룩’(마 13:33)처럼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는 좋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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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케 해야
작은 우리에 개와 고양이를 함께 키웠다.
본래 개는 늑대과에, 고양이는 고양잇과에 속하는 동물로 서로 맞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둘이는 각각 한쪽 모서리를 차지하고 눈만 떴다 하면 덤비고 물고 싸워댔다. 하지만 얼마 뒤엔 서로를 이해했는지 친숙해졌다. 뺨을 비비기도 하고 핥기도 하고 같이 눕기도 했다. 그 뒤에 닭 한 마리를 집어넣었다. 역시 처음엔 쪼고 덤비고 푸드덕거리고 야단이더니 이내 친숙해졌다.
동물들도 오래 함께 있으면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 하물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어떠한가. 이해관계가 달라도 서로 용인하며 포용하고 공존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은 화평할 줄 알아야 한다. 화평케 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흥복 목사(상계광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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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흔적
수십년 전 만주에서 20개월이 막 지난 아이 3명이 천연두를 앓았다. 의료진이 없는 가운데 두 아이는 안타깝게 죽고 말았다. 나머지 한 여자아이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얼굴에는 천연두 흉터가 남아 늘 놀림감이 됐다.
이 얼굴로 어떻게 살아가나 절망하고, 죽고 싶을 때마다 그녀는 어머니 말씀을 떠올렸다. "얘야, 이 마마자국은 하나님께서 너를 살려주셨다는 증거이고, 축복의 표시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녀의 마음속에는 확신이 뿌리내렸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인이시며, 인생길의 인도자이심을…. 그녀는 현재 뉴욕의 유명한 한인교회 목회자의 사모로 헌신하고 있다.
외모만 생각했다면 그녀는 평생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임하면서 마마자국은 사랑의 흔적과 은혜의 자국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의 인생은 승리할 수밖에 없다(골 1:11).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회협의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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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작
커피의 프리미엄이라 자부하던 스타벅스가 최근의 실적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때 한국에서 100호점을 열면서 문화를 오감의 커피로 전한다는 커피의 전설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지난 4년간 커피 이외에 영화와 음반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주력했다. 그 결과는 눈에 보이는 실적 악화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제 영화와 음반 사업을 정리하면서 다시 핵심사업으로 돌아오고 있다.
핵심을 놓치면 근본이 흔들린다. 핵심을 소홀히하면 위기를 만난다.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교회도 세상도 이 핵심을 놓치면 흔들리게 된다.
신앙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것은 핵심과 상관없는 것들을 정리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가는 변화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조영진 목사(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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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이 있는 풍경
흔히 2000년대는 심리학의 시대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인 질병을 앓고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병이다. 우울증은 마치 감기처럼 사람 속을 다녀가곤 한다. 사람들은 점점 내면 세계, 나 중심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오히려 자기 안에서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말로 상처받기 쉬운 사회라는 반증일 것이다.
우리는 육적인 삶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삶이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내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더욱 섬세하게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점점 어두워 가는 내 영혼에 등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잠 22:27)이라는 말씀도 있다. 그것은 언제나 신령한 삶을 살도록 애쓰는 일이다. 270주년을 맞은 존 웨슬리 회심 사건은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켜 어두운 내 안에 등불을 켜는 일이 곧 영적 각성임을 보여준다.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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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색깔 무지개의 삶
노아 홍수 이래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있다. 두번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언약의 증표로 노아에게 무지개를 주셨다(창 9:11∼17). 일주일을 하루씩 나눠 볼 때 동양 사상으로는 일(해) 월(달) 화(불) 수(물) 목(나무) 금(쇠) 토(흙)로 규정한다. 삶의 기본 요소들이다.
무지개의 일곱 빛깔이 각각 지닌 의미의 약속도 눈길을 끈다. 빨강(정열) 주황(인내) 노랑(평화) 초록(휴식) 파랑(희망) 남색(겸허) 보라(사랑) 등이다. 모두 우리 삶 속에서의 지혜를 담고 있다.
일곱가지 무지개 색깔이 지니는 의미와 뜻은 약속을 받고 지키는 사람의 몫이다. 약속은 약속한 이와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의 결단으로 이뤄진다. 인간에게 무지개를 약속하신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시다. 그분이 신실함으로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때 그 약속은 축복이 된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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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파피루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돌을 이용해 기록을 남겼다. 파피루스는 찢어지기 쉽기 때문에 돌에 새기는 문화를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돌로 가장 큰 신전을 짓고, 가장 큰 무덤을 만들고 가장 높은 빗돌을 세웠다.
모세도 십계명을 돌에 새겨 법궤 안에 보존했다. 십계명은 또 파피루스에도 새겨져 성경으로 보존돼 왔다. 그러나 돌에 새긴 십계명은 잃어버렸고, 파피루스에 새긴 십계명은 살아서 인류를 지키고 있다.
어떤 유명한 국제변호사가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작은 회고록 한 권을 기념비로 남겼다. 그가 남긴 유언은 자신을 위해 무덤도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파피루스는 돌보다 더 질기고 오래 가고 멀리 날아간다. 그리고 붓이 칼보다 더 강하고 힘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를 위해 강한 돌과 칼보다 부드러운 파피루스와 붓을 더 귀하게 사용하신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