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요약

[스크랩] 누구나 홀로 선 나무(조정래 지음)

강인철 2009. 8. 8. 09:15


                                                                           문학동네/2002년 12월/423쪽
▣ 저 자  조정래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0년「현대문학」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와 치열한 창작의지로 한국 소설 문학의 지평을 넓혀왔다. 단편집『어떤 전설』『황토』, 중편집『유형의 땅』, 장편소설『대장경』『불놀이』, 대하소설『태백산맥』『아리랑』『한강』이 있다.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성옥문화상, 동국문학상, 소설문학작품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시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 Short Summary
우리 시대의 작가 조정래의 첫 산문집. 33년 동안 ‘글감옥’의 수인으로 살아온 작가의 개인적이고 솔직한 모습이 담겼다. 삶의 현실에 견실히 뿌리내리고 있는 인간과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치열한 사유, 도저한 문학정신을 만날 수 있다.

한국 현대사 3부작을 집필하면서 작가가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던 글과 편지글을 모은 이 책은 크게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져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의 취재․집필 과정, 가족과 한국 문학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문학을 섬기며 남은 생애를 흠 없이 살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라 말하는 조정래. 다시 태어나도 소설을 쓸 것이라 단언하는 그의 말을 통해, 작가에 대한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책이다.
▣ 차 례
1. 이 어지러운 바람
2. 나의 사랑 재면이
3. 작가의 편지
4. 왜 문학을 하는가
5. 문학의 그림자
6. 길과 함께한 생각들
7. 역사 만들기
8. 대담

 
누구나 홀로 선 나무
조정래 지음
문학동네/2002년 12월/423쪽/9,500원

1. 이 어지러운 바람
부질없는 잠꼬대
“한국에는 다시 오고 싶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너무나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인사동 길을 배경으로 어떤 미국 젊은이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거침없이 하는 말이었다. KBS 밤 아홉시 뉴스 시간이었다. 소파에 몸을 부리고 있던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고, 다음 순간 십여 년 전에 보았던 한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소설 『아리랑』을 쓰기 위해 1990년 취재를 하려고 중국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받고 있는데 한쪽에서 갑자기 영어 욕설이 터져나왔다.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은 청바지 차림의 건장한 미국 남자였다. “왜 당신들은 영어를 안 쓰는 거야, 영어로 말해, 영어로.” 그 남자는 중국 세관원에게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그러나 중국 세관원은 무표정하게 중국말을 할 뿐이었다. 딱하게도 그 사나이는 중국 사람들 거의 전부가 미국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한 달 동안 중국에 머무르면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보았는데 교수들도 러시아말은 곧잘 해도 영어는 할 줄 몰랐다.
입국수속을 끝내고 그 미국 사나이 옆을 지나치던 나는 그의 짐들 속에 있는 한국 담배를 보고 흠칫했다. 그는 한국을 거쳐 중국에 온 것으로 보였는데 문제는 그가 한국에서 영어를 지껄이며 누렸던 편리를 중국에서도 똑같이 누리려고 하는 점이었다. 아니 그는 중국 사람들이 당연히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 사나이의 거침없는 태도와 KBS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고 있는 사나이의 태도는 어쩌면 그리도 빼박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인의 그런 모습을 방영하는, 명색이 국영방송인 KBS의 의도이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맘껏 방자한 발언을 토해내고 있는 그 미국 젊은이는 배낭여행족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특히 관광수입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일수록 배낭족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말썽과 사고가 날 우려가 많은 데다가 관광수입에 별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배낭족들이 뿌리는 푼돈도 긁어모아야 할 만큼 급한 사정이란 말인가. 그런 자들까지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전 국민이 영어를 능통하게 하는 관광안내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이처럼 의식이라고는 없이 국영방송이 전 국민의 관광안내원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몰지각함의 폐해는 벌써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영어 공부에 적응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이 우울증과 자폐증을 일으켜 정신병원을 찾는 일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영어를 잘 하게 하려고 혀 수술을 시키는 바람이 일고 있다.
사람에게는 제각기 특기라는 것이 있다. 영어는 그런 사람들을 가려 뽑아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며 시켜야 한다. 하지만 모든 대학들이 전공을 가리지 않고 일정 수준의 영어 실력을 요구하며, 모든 기업들이 영어 실력이 모자라는 사원부터 감원 대상으로 삼으면서 전 사원들에게 영어 잘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화가, 성악가, 연기자, 문학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토익 800점의 영어 실력이 왜 필요한가.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서 그들은 정작 자기들에게 필요하고, 하고 싶은 공부에 얼마나 큰 지장을 받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이 평생에 걸쳐 토익 800점의 영어 실력을 몇 차례나 써먹을 수 있을 것인가. 기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외국 사람들을 빈번하게 상대해야 하는 무역회사라면 모르지만 국내 업무에 치중된 일반 기업의 사원들이 외국인을 상대로 업무처리할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세계화라는 이상한 바람에 휩쓸려 하나같이 영어 잘 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턱없이 고통 당하고 있는 월급쟁이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굳이 세계화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외국어 하나쯤 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그건 교양수준 정도만 갖추면 충분하다. 인생이란 길지도 않고, 한 차례뿐인 기회를 억지로 영어공부 하느라고 낭비하고, 또 학원비로 아까운 돈을 무작정 탕진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비생산적인 일인가.
영어 잘하면서 넋도 얼도 없이 배부른 짐승으로 사는 게 나을까. 민족혼 담긴 국어와 역사를 잘 이해해가면서 아름답게 사는 게 나을까. 돈이 ‘살아 있는 신’으로 군림한 지 오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노예가 되기를 자청하고 나서는 시대다. 남보다 먼저 영어 잘하겠다고 정신없이 다투는 것이 그 한 예다. 그런 거센 물결 앞에서 나는 한갓 잠꼬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 나의 사랑 재면이
나의 사랑 재면이
“엄마, 빨리 어른 되고 싶어요.”  “왜?” “빨리 커서 전기 켜게요.” 이건 생후 이십오 개월 팔 일째 되는 날 손자 재면이가 한 말이다. 아직 발음도 똑똑하게 내지 못하면서. 그런 며느리의 말을 듣고 나와 아내는 그만 어리둥절해졌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며느리도 재면이의 갑작스러운 그 말에 너무 놀랐다고 하면서 고개를 내둘렀다.

그런데 퍼즐게임을 하고 있던 손자가 그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이 불현듯 일어나 식탁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아비, 빨리 어른 되고 싶어요. 전기불 켜게.” 까치발을 한 손자는 팔을 한껏 뻗쳐 벽에 붙은 전기 스위치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손끝은 한 뼘 가량 낮았다. “아이고, 저놈, 저놈…….” 나는 나도 모르게 상체가 뒤로 다 넘어가도록 자지러지는 탄복을 하고 있었고, 아내도 행복이 넘쳐흐르는 얼굴로 감탄하며 손자를 얼싸안으려 하고 있었다.
가정을 이루어온 사람이면 누구나 육십 고개 어름에서 손자를 보게 된다. 그건 그저 평범한 인생살이 과정에 지나지 않지만 그 범상한 일이 개개인의 현실이 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특별한 사건’이 된다. 나와 아내에게도 손자가 태어난 것은 예상보다도 훨씬 기쁘고 행복 넘치는 특별한 사건이었다.
손자 재면이는 하늘이 우리 내외에게 보내는 가장 크고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사람의 만병을 예방하는 명약은 날마다 한 차례씩 흔쾌하게 흡족하게 웃는 것이라고 현대의학은 진단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도처에서 웃기 클럽이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굳이 그런 모임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손자 재면이가 바로 끝없이 샘솟는 웃음 주머니이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손자를 보기만 해도 벙글벙글 웃기 시작해서 앙증스럽고 영특한 재능을 보면서는 흐드러지다 못해 자지러지도록 맘껏 웃어대고, 둘만 있을 때도 재면이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꽃을 피운다. 그러면서 서로 확인한다. 세상의 무슨 일이 우리를 이렇게 즐겁게 웃게 하겠느냐고.
사람이 산다는 것은 늙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늙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차츰차츰 상실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늙음은 그늘지고 우울하고 적막하고 서글프다. 그런 노년을 갑자기 찬란한 꽃이 만발하게 하고, 푸르른 싹들이 파릇파릇 돋게 하고, 눈부신 햇살이 반짝반짝 넘치게 하는 것이 손자의 탄생이다. 그건 어쩌면 하늘이 모든 노년 인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위로인지도 모른다.
손자를 본 다음에 크게 깨달은 것이 자연질서의 숭엄함이다. 폭포수가 쏟아지듯이 손자를 향해서 주체할 수 없도록 쏟아져내리는 할아버지의 사랑, 그것은 인간의 소산이 아니었다. 그건 우주가 지배하는 힘이었다. 나는 내 몸에서 그런 사랑이 폭발하고 용솟음치리라고는 손자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전혀 예기치 못했다. 그런데 손자에게 편안한 잠자리가 되어주려고 허리에 파스를 발라야 될 지경으로 오래 안고 있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도 놀랐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그 헌신성은 바로 내 몸에 잠재되어왔던 종족보존의 본능이 마침내 발화하는 것이었다. 우주의 힘이 그렇게도 강한 것인가를 거듭거듭 확인하면서 나는 그 숭엄한 아름다움에 복종의 무릎을 꿇는다.
내가 가고 없을 세상
아들 내외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올리는 큰절을 받고 나는 시아버지로서 몇 가지 훈계를 시작했다. 나는 대여섯 가지를 일렀는데 그 첫 번째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거짓말을 하지 말 것, 두 번째가 모든 물건은 낭비하지 말고 절약할 것이며,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재활용하라는 것이었다.

모든 물건은 절약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재활용하라는 것은 단순히 집안 살림을 알뜰하게 하라는 훈계만이 아니다. 낭비는 곧 이 세상 전체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좀 잘 살게 되어 물자가 흔해지자 누구나 무신경하게 낭비하는 것이 세상 풍조가 되었다. 크리넥스 하나만 해도 애들 콧물을 닦아줄 때, 입을 훔칠 때와 같은 사소한 일에는 절반, 또는 그 절반만 써도 충분한데도 누구나 거침없이 크리넥스를 한 장씩 뽑아 쓱 훔치고는 휴지통에 버려버린다.
모든 종이가 그렇듯이 크리넥스는 나무로 만들어진다. 나무는 한정된 자원인 동시에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산소 공급원이고, 지구의 공기를 정화시키는 청소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지구의 허파라고 하는 열대 밀림지대들이 파괴되어 간다고 세계적인 문젯거리가 되고 있다. 종이 낭비가 심해지고, 종이회사들이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밀림의 나무들을 마구잡이로 베어내기 때문이다.
지구의 오염은 날로 심해져가는데 나무들을 그렇게 마구 잘라내면 결국 인간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종이 한 장에도 인류와 지구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자각으로 일상생활에서 종이 한 장씩이라도 아껴 쓰면 한정된 지구 자원의 낭비를 막을 수 있고, 또 세계적 공해를 줄이는 이중삼중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크리넥스 대신 두루마리 휴지를 주로 쓰고, 책들을 부쳐오는 두껍고 큰 봉투를 반드시 재활용하고 있다. 그 봉투를 잘 뜯어 모아두었다가 내 책을 선물할 때 다시 쓴다. 낭비하는 사람들 따로 있고, 환경단체들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자아, 보아라. 며느리는 곧 내 말을 실천으로 옮겨 크리넥스를 절반만 잘라 사용했고, 우리 부부의 생일날 선물을 사올 때면 그 포장지와 끈이 재활용품이었다.
흔히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하지만 그건 환상적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21세기는 그 어느 세기보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받는 세기가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세 가지 위협이 인간들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강대국들이 무한정한 무기 경쟁을 일삼고 있고, 둘째, 지구 온난화와 함께 환경오염은 날로 심해져가고 있고, 셋째, 과잉생산을 부추기는 성장 제일주의의 자본주의는 방자한 독주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인간의 진정한 노력으로 얼마든지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국가 이기주의의 벽 앞에서 그 길은 혼미하기만 하다. 인간이란, 배가 침몰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제 먹을 것을 서로 많이 가지려고 다투는 쥐새끼들과 다를 것이 없는 존재일까. 손자의 해맑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내가 가고 없을 세상에 대한 시름이 깊어진다.

3. 작가의 편지
신명규 군에게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읽은 감동에 따라 “한민족을 울리고 웃기는 징헌 대하소설을 쓸”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중학생 신군은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에게 따뜻한 말 몇 마디를 해달라.”고 하면서 여덟 가지를 묻고 있습니다. 신군은 질문 아래에다 “별로 많지 않다.”고 했고, “정성껏 답변해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신군의 질문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었고, 마음에 큰 부담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신군이 한 질문들 중에서 몇 가지는 짧게 대답할 수 없는 것들이고, 특히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신군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군이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는 것은 좋습니다. 내 작품을 읽은 것이 동기가 되었다니 작가로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신군은 아직 중학생입니다.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일정한 교육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생활은 그 필수과정이며, 자기 나름의 개성과 특기를 발견해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신군은 앞으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문예반에서 특별활동을 하면서 문학을 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고 검증하는 여유를 갖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동의하는 축복도 얻어야 합니다.
인생이란 연습도 재공연도 안 되는 단 1회의 연극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진로를 함부로 정할 수 없는 것이고, 뒤늦게 진로 선택을 후회하는 것은 바로 인생의 실패나 다름없습니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남다른 재능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도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을 신군은 신중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신군이 보낸 질문 여덟 가지에 대한 답을 듣기에는 너무 때 이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신군의 질문들은 퍽 어른스럽고, 그 대답은 문학에 일생을 걸기로 작심하고 나선 대학의 국문과나 문예창작과 학생들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신군이 세 번째 물은 “작가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하는 것은 그 응답이 일 년 강의로도 어려울 것입니다.
문학은 일생을 걸고 해볼 만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외롭고 고달프며 험난합니다. 신중히 생각하기를 거듭 당부합니다. 늘 건강하고, 의미 있는 독서생활을 하기를 빕니다.

4. 왜 문학을 하는가
나의 창작실
길고 긴 꿈에서 깨어난 듯 오 년여만에 『아리랑』을 끝내고 바라본 세상은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웠다. 그런데 세상사만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눈을 안쪽으로 돌려보니 문단도 수선스럽고 시끌덤벙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빈번하고 심각한 기미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 거대담론의 퇴조와 미시담론의 확장이라는 것이었다. 결론을 요약하자면 거대담론은 지난 1980년대식 문학이고, 미시담론은 새로운 시대인 1990년대식 문학이며, 1990년대의 문학은 당연히 미시담론의 문학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결론과 주장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문학지부터 신문까지 통일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당당한 주장들을 바라보면서 그저 씁쓰레한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미시담론이 거대담론을 문학이 아니거나 문학성이 없다고 공격하는 것은 새로운 논리가 아니라 지난 1970년대식의 순수와 참여의 입씨름이 신조어의 탈을 쓰고 재등장한 것일 뿐이다. 순수와 참여의 입씨름(논쟁이 아니고)처럼 소모적이고 미숙아적인 행위가 또 있을까. 그런데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그 입씨름이 되풀이되고 있다.
‘무엇을 쓸까’에 중점을 두는 참여는 순수를 향하여 역사성과 사회성이 없다고 공박하고, ‘어떻게 쓸까’에 중점을 둔 순수는 참여를 향하여 문학성과 예술성이 없다고 반박하는 것이다. 그 끝없는 입씨름은 언뜻 들으면 그 나름으로 일리가 있는 것도 같다. 그것이 바로 논리라는 것이 갖는 교활이고 묘술이다.
그러나 그 주장들은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인간들과 인간 세상의 어느 단면밖에는 보지 못하는 허점을 가지고 있다. 새삼스럽게 강조할 것도 없이 인간은 개인적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간도 혼자서는 살 수 없으며, 아무리 천국 같은 사회도 인간 개개인의 내적 고뇌까지 해결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문학은 바로 그런 복잡한 인간들의 삶을 구체적이고 총체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분법의 논리로 그 일을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겠는가.
‘무엇을’에 집착하는 ‘참여’를 뼈라고 한다면 ‘어떻게’에 집착하는 ‘순수’를 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동물이든 뼈와 살이 최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과 함께 인간은 개인적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라는 불변의 사실을 덧붙여 생각하게 되면 순수와 참여의 논쟁이 지극히 소모적이고 미숙아적인 입씨름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든 기본적 인식을 바르게 하고, 원칙적 실천을 똑바로 해야 한다. 그러면 삶의 소모를 막을 수 있다. 문학은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예술’이다. 이 불변의 사실을 망각하거나 경시하지 않으면 문학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나올 수 있고, 거대담론이니 미시담론이니 하는 억지스러운 말들까지 만들어가며 미숙아적 입씨름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며, 문학을 아끼는 독자들을 생경한 혼란에 빠뜨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한국의 근대문학은 성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논리의 편협성과 편파성을 너무 심하게 드러내는 소아병적인 버릇을 떼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왜 문학을 하는가
문학에 사나이 한평생을 걸기로 작정하고 국문과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에게 가장 심각하고 절실했던 문제는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였다. 그것은 답을 얻기 어려운 물음으로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문학의 여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내 주변의 문학청년들 모두가 그 물음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문학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로 이어지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고민이었고, 그것은 또 ‘왜 문학을 하는가’하는 궁극적인 문제로 직통하는 시발점이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기 전에 벌써 확고부동한 가치 한 가지를 의식 깊이 세워두고 있었다. 만인 평등의 민주주의에 대한 절대 신뢰, 그에 따른 봉건주의 유습의 철저한 배격, 이 둘이면서 하나인 가치관은 복합적 작가의식을 형성해 나아가는 모태가 되었다.
나는 우리 사회와 역사를 통찰하려고 애쓰면서 ‘어떻게 쓸까’보다는 ‘무엇을 쓸까’에 고심하는 문청이 되어 있었다. 그 시절에 내 의식을 무장시킨 것은 앞서 살다간 사람들이 남긴 경구들이었다. “작가가 돈에 작품을 파는 것은 창녀가 몸을 파는 것보다 더 더러운 짓이다.”,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하고, 그 실천이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다.” 톨스토이와 빅토르 위고의 그런 말들은 내 영혼을 흔든 대표적인 것들이다.
만인의 평등이 인간사회의 지고한 가치라고 믿듯이 문학 또한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것을 최고 가치로 삼고 오늘에 이르렀다. 무릎 꿇지 않고 굽히지 않는 그 길을 걷다보니 이념 공세도 당하게 되고, 계급주의자 굴레도 쓰게 되고, 사상 불온자로 고발도 당하게 되었다. 그런 고통은 분단시대를 사는 작가로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민족이 당하는 고통에 비하면 지극히 미약한 것이다. 어차피 작가는 그 어느 시대 그 어떤 정권하고든 불화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모든 정권이나 체제는 오류를 남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간다운 세상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숭고하고 보람스러운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진정한 문학, 참된 문학은 역사를 변혁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길을 따라 남은 생애를 살고자 한다.(한국일보, 2002년 3월 21일자)

5. 문학의 그림자
용서는 반성의 선물
나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제목이 그런 것처럼 시대도 다르고, 주인공들도 다르고, 표현방법도 다른 별개의 소설들이다. 그런데 세 편을 관통하고 있는 공통점 몇 가지가 있다. 첫째가 분단된 역사현실 속에서 남과 북의 지배집단들이 자기네가 필요한 대로 왜곡시키고 굴절시키고 암장시킨 민족사의 진실을 찾아내려 한 것이었고, 둘째가 격랑 심하고 파란 많은 역사 속에서 민중들이 어떻게 역사의 동력으로 그 수레바퀴를 굴려가는가를 밝혀내려 했고, 셋째가 우리의 민족사에서 친일파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고, 그 양상이 어떠하며 그 폐해가 얼마나 큰 지를 적시하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친일파에 대한 문제는 『태백산맥』이 시작되면서부터 대두하게 된다. 친일 지주들의 해방 후 작태뿐만 아니라 친일 경찰들이 작당하여 반민특위를 유린․파괴하는 것까지 빼놓지 않고 써나갔다. 식민지시대를 다룬 『아리랑』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당대를 다룬 『한강』에서도 친일파의 문제는 간과하거나 빼놓을 수가 없었다. 오늘의 모든 병폐의 샘이 친일파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인식으로 『태백산맥』을 써내며 당시 나는 「한국문학」이라는 잡지의 주간을 맡고 있었다. 해방 사십 년이 되는 1985년, 고심 끝에 친일 문인들의 문제를 8월호 특집으로 정했다. 해방 사십 년이 되도록 단 한 사람도 진정한 반성이나 사죄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 반성을 하고, 역사를 정리해야 한다. 생존해 있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도록 지면을 제공하고, 사죄를 하게 하자, 이것이 특집의 방향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생존자들 명단을 뽑아놓고 보니 문학적 비중으로 첫 번째 꼽히는 사람이 미당 서정주였다. 그는 나와는 사제지간이었고, 집사람을 등단시킨 스승이었고, 우리 부부의 결혼식 주례였으므로 나와 아내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동의를 얻은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선생님 사무실을 찾아갔다. “선생님께서 글의 마지막에 잘못했다고 한마디만 하시면 선생님은 자유로워지십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글 쓰기를 거부했다. 다른 문인들을 접촉했지만 그들로부터도 거부를 당하게 되어 결국 정반대의 특집, 젊은 문인들을 통해서 반성 없는 선배 친일 문인들을 비판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 특집은 9월호를 넘기고 10월호에야 가까스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병상의 미당에게 어느 텔레비전 방송국 기자가 마이크를 대며 물었다. 친일에 대해서. “거 뭐, 잘들 봐달라고 해.” 초췌한 미당의 대꾸였다. 나는 그 화면을 보면서 가슴이 쓰라렸다. 나의 선생님은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미당은 그야말로 미당인채로 이 세상을 떠나갔다.
그리고 미당 비판을 놓고 문단과 세상이 한바탕 시끌시끌해졌다. 미당이 마지막으로 잘못했다는 한마디만 남겼어도 그렇게 시끄러웠을 것인가. 미당은 그의 빼어난 시들처럼 생애도 깔끔하게 정리했어야 했다. 그 일을 끝내 하지 않음으로써 미당은 후진들이 서로 얼굴을 붉혀야 하는 업보를 남겨놓았다. 빼어난 시들을 남긴 미당이 우리의 정면교사가 아니라 반면교사로 영원히 남게 된 것이 한없이 아쉽고 슬프다.(실천문학, 2002년 여름호)

6. 길과 함께한 생각들
초원을 꿈꾸는 알라신의 나라
나는 세 번째 대하소설을 열 권으로 쓰기 위해 사우디로 취재를 갔다. 우리의 수많은 근로자들이 어떤 땅, 어느 곳에서 무슨 일들을 하며 얼마나 고생들을 했는지 실감하기 위해서다. 그 자취는 사우디의 도처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해서 사우디 대도시의 큰 건물들 중에서 절반 이상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새삼스러울 것 없이 사우디는 우리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준 나라다.

그런데도 사우디의 어느 지식인은 “서로 함께 발전한 사이”라고 겸손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열성과 성실성이 고맙다고도 했다. 그 말이 의례적인 인사치레가 아닌 것은 일상생활에서 확인되고 있었다. 도시 외곽에서 검문을 하는 경찰들이 ‘꼬리’(‘코리아’의 사우디 발음)인 것을 알아보면 무사통과였다. 교통위반을 해도 코리는 슬쩍 눈감아준다는 것이었다. 상인들도 내가 꼬리인 것을 알아보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런 친교와 우의가 지난날 연인원 백오십만 명이 머물며 열심히 일하고 사우디 법을 잘 지킨 때문이기만 할까. 거기에 인정 많고 후덕한 사우디 사람들의 항정이 보태진 게 아닐까.
사우디에서 십오 년 넘게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의 체험담에 의하면 고속도로에서 기름이 떨어져 차가 멈춰버리면 지나가던 차가 기름을 빼주기 예사라는데 사우디 사람들의 그런 심성이 지금까지도 꼬리에 대해 변함없는 애정을 품게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 속에서 사우디는 호경기가 사라지면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인구 천백만에 남한의 이십 배가 넘는 국토, 석유자원만이 아니라 그 양을 측정하기도 어렵게 매장되어 있는 금과 철광, 꾸준하게 추진되고 있는 국가적 현대화 사업, 컴퓨터 생활화의 시작……. 건물이나 짓고 도로나 놓는 단순기술이나 가진 기업들 그리고 한탕주의에 길들여진 우리의 안목으로는 그런 것이 안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경제실리를 떠나서라도 나라가 국제활동을 하는 데 우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 더욱이 사우디는 이슬람의 중심국가가 아닌가. 우리는 거의 잊고 있지만 우리가 제2차 오일쇼크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이 꼭 돈의 힘만이었는가. 그때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사우디의 협조였다.
일본은 사우디에서도 우리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발전소나 비료공장 같은 곳에 고도의 기술로 제작된 정밀기계를 고가로 팔아먹은 것만이 아니었다. 사우디 사람들 전체가 입고 다니는 남자의 흰 옷감, 여자의 옷감 거의가 일제이며, 향을 피우는 숯과 그 숯에 불을 붙이는 가스라이터는 완전히 일본 독점이라고 했다. 귀한 손님이 올 때 여러 예식에 향 피우기를 즐기는 사우디의 문화를 일본 사람들은 꿰뚫어본 것이다. 일본의 그 치밀한 상혼을 약아빠졌다고만 할 것인가. 오늘 우리 앞에 닥친 경제난국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사우디 사람들이 갈원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초록의 숲과 바다. 열대 사막의 기후 속에서 당연한 소망이다. 무성한 숲을 얼마나 열망하면 국기의 바탕이 온통 초록색이겠는가. 그 초록색은 생명의 상징이고, 알라신의 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우디는 머지않아 초록색으로 온 국토가 뒤덮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부터 비가 자주 내리는 것이다. 내가 머문 보름 동안에도 예닐곱 차례나 비가 쏟아졌다. 손님을 귀히 여기는 그들은 손님 중에서도 비와 함께 오는 손님을 최고 귀인으로 친다고 했다. 나는 세 번인가 최고 귀인으로서 극진한 인사를 받았다.
세계적인 기후변화는 사우디에도 많은 비가 내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머지 않아 사우디 전체가 옥토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알라신의 최고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때 가서 밀을 싸게 사려고 허둥대지 말고 이미 쌓아놓은 우의나 손상되지 않도록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 우기가 아닌 건기에 다시 한번 사우디를 느껴보았으면 한다.(한겨레, 1997년 12월 11일)

7. 역사 만들기
3․1 정신과 우리의 미래
우리에게 일제 식민지시대는 청산되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두어 달 전에 열렸던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리는 이 나라 대통령 앞에 몇 번이고 머리 조아리며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그런데 사나흘 뒤 일본 총리 하시모토는 자신의 사과는 외교상의 예의였을 뿐 정신대에 대해 망언을 한 자기네 장관의 발언에 대한 사과가 아니었다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했다.

‘형제적 우의’를 느꼈다며 회담 결과에 만족하면서 돌아온 이 나라 대통령의 등 뒤에다 대고 그런 표리부동한 말을 해대는 일본 총리의 그 간교한 두 개의 얼굴. 그 야누스의 얼굴은 우리를 대하는 일본의 좋은 상징인 동시에 왜 일본의 역대 장관들이 끊임없이 망언을 되풀이하는지를 잘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3․1절을 맞는다. 다시 생각해 보자. 3․1 운동으로 죽어나간 8천 5백 명을. 그 숫자는 돈 팔천 오백 원이 아니다. 사람의 목숨 8천 5백이다. 세계 식민지 역사 이백여 년 동안에 그 어디에서 단일사건으로 8천 5백여 명이 죽었는가. 우리는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것이다. ‘유관순’은 단지 그 많은 희생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해방 조국은 3․1 운동으로부터 비롯된 동포들의 피 흘림으로 얻어진 것이었다. 세월이 좀 흘렀다고 해서, 배가 좀 불러졌다고 해서, 누가 그 핏값을 경시하고 소홀히 할 수 있는가. 과거의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유대인들은 2차대전의 수난을 발판으로 잃어버렸던 나라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그들은 독일의 범죄에 대하여 “용서하지만 잊지는 않는다.”고 민족적 동의를 했다. 왜냐하면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가 유대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진정한 사죄를 하는 동시에 전 세계를 향해서도 사죄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현직 총리까지 우리를 희롱하고 기만하고 있다.
우리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용서하지도 않고 잊지도 않는다’는 민족적 동의를 고수해야만 한다. 그것이 3․1 정신을 이어받고 되살리는 길이다. 그리고 오늘의 난국의 원인도 끝끝내 밝혀내는 것만이 3․1 정신의 부활이고 미래의 횃불을 드는 일이다.(한겨레, 1997년 3월 1일자)
황소의 걸음을 배우자
경의선 철길을 잇는 복원공사 기념식이 있던 날 나는 서재에서 벗어나 일 년에 한 두 번 하는 모처럼의 외출을 했다. 그 날이 하필 원로작가 황순원 선생님의 영결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 문학의 큰 기둥이었던 황순원 선생님을 저 세상으로 배웅하는 슬픔과 그분의 고향이 평양이라는 것과 반세기를 넘긴 분단역사로 끊겼던 철길이 다시 이어지는 사실들이 겹쳐지면서 내 감정은 못내 착잡하기만 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으로 빠르고 파격적이고 구체적으로 화해와 협력을 진행시켜나가고 있다. 그런데 3차 장관급 회담이 끝나자마자 신문들은 회담의 알맹이가 없다고 요란하게 비판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우리의 고질병인 ‘빨리빨리‘가 도지고 있는 것인가. 이런 경박과 경솔은 신문들이 할 일이 아니다.
물론 회담의 결실은 알찰수록 좋다. 그러나 회담에는 상대가 있는 것이고, 모든 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은 상식이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설득하고 타협해서 서로에게 유익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회담의 미덕이다. 더구나 남북의 회담이란 그 어떤 회담보다도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함은 오십 년이 넘은 분단과 대치가 잘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혹시 정부가 전시효과나 업적과시를 위해 여러 가지 회담을 성급하고 조급하게 몰아갈지 모르니까 오히려 신문들은 진중함과 침착을 경고하고 주문해야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쩌자고 한술 밥에 배부르기를 바라는 조급성과 끓지도 않은 밥을 먹으려 드는 성급함을 드러내고 있는가. 6․15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져온 일들은 걱정스러울 정도로 과속이고, 너무 많은 결실을 맺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일들은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통일의 천리길에 첫걸음을 내디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통일 십 년을 맞은 독일의 저명인사들이 하는 말을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의 통일이나 영토의 통일보다 더 앞세워야 할 것이 마음의 통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독일과 우리는 분단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그러나 통일 다음에 오는 문제점은 꽤나 유사할 것이다. 그들이 아직도 다 이루지 못한 ꡐ마음의 통일ꡑ이란 오늘의 우리를 가르치는 교훈이고, 우리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남과 북은 서로의 불신 속에서 오십 년이 넘게 살아왔다. 그 불신을 믿음으로 바꾸는 노력의 시작이 통일을 향한 첫걸음이다. 그리고 그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신의 벽을 쌓아올렸던 것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믿음을 심고 가꾸는 것, 그것이 통일로 가는 길이다. 그 노정을 제발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한 걸음씩 가자. 황소의 느린 듯하나 끈질긴 걸음이 끝내는 천리를 가는 지혜를 배우자.
그리고 상호신뢰를 쌓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우리 내부의 불신을 없애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개정만이라도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는 팔십 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이는 민족사의 대전환을 뒷받침하며 통일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종소리이다

출처 : 상운교회
글쓴이 : 강인철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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