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요약

[스크랩] ‘험담’ 로리 팰라트닉․밥 버그 지음/김재홍 옮김

강인철 2009. 7. 6. 11:21

‘험담’ (책 요약)

로리 팰라트닉․밥 버그 지음/김재홍 옮김

씨앗을 뿌리는 사람/2003년 6월/204쪽/9,000원

 

 

바람에 흩어진 깃털

우리는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을 곧잘 믿고, 신문과 텔레비전의 자극적인 정보를 쉽게 받아들이며,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험담이 그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 대부분 상처를 준다 - 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밥의 친구 폴 마이어즈는 이렇게 말한다. “험담은 발사된 총알과 같다. 일단 한번 총소리를 듣고 나면 그것을 도로 무를 수가 없다.” 제삼자에 대한 것이든 당사자에 대한 것이든 우리가 말을 할 때에는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직접적인 모욕이 주는 피해는 때로 그 사람의 자존심을 갉아먹으며 평생 동안 그 사람을 따라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격려가 가득한 말 한마디는 듣는 사람의 자존심을 세워주기도 하고, 인격적인 성장을 돕기도 하며, 인생에서 크고 중요한 일을 하는데 필요한 동록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해, 혹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그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육체와 영혼

당신이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며 산다면 당신이 하는 일을 아무도 모른다 할지라도 그 일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우리가 살면서 하게 되는 선택에 따라 여기나 지금이 아닌 ‘영원’이라는 차원에서 커다란 차이가 날 수 있다.

2001년 9월 11일은 전 세계인들의 영혼을 깨운 순간이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물론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으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린 사람들도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재혼을 했다고 한다. 9․11 테러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깊이와 의미가 부족했던 측면들을 깨닫고 삶을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비행기와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주식을 팔라거나 새 차를 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랑해, 그리고 아이들을 부탁해. 당신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믿어.”라는 말이 전부였다. 비극적인 죽음을 간접적으로 겪는 경험은 우리를 일상적인 ‘육체 중심’의 삶에서 ‘영혼 중심’의 상태로 밀어 넣는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물었다. “사는 게 뭐지? 왜 사는 걸까? 내가 제대로 살고 있긴 한가?”

9․11 테러가 발생한 주에 나는 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읽었다. 주로 유명 인사들의 뒷이야기를 즐겨 쓰던 칼럼니스트들이 칼럼쓰기를 중단했다는 보도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좀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마음을 가다듬는 때에 어느 누가 유명인사들의 뒷얘기에 관심이 있겠는가? 한 칼럼니스트는 “지금은 험담을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며칠 동안은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 칼럼니스트조차도 자신의 일이 별로 가치가 없다는 것과, 비극의 여파로 인해 자신의 직업이 비웃음을 살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상당히 일시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 예전으로 되돌아가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부정적으로 얘기하고 헐뜯는 데서 쾌감을 얻고 있다.

 

 

우리는 왜 험담을 하는가?

험담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이유들에는 공통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건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것들 말이다.

① 남의 약점과 결함을 부각시키면 상대적으로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남들의 삶을 나쁘게 그릴수록 내 삶은 점점 더 나아 보인다(사람들이 연속극을 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엉망진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심리적 보상을 얻는 것이다. 연속극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삶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증명해주는 셈이다).

② 험담을 하는 동안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만인의 눈이 험담을 하고 있는 한 사람에게로 고정되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중요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하지만 이것은 누군가를 희생시킨 대가이다. 그리고 당장은 인기를 얻었다는 느낌이 들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잃게 될 것이 분명하다).

③ 사는 게 지루하다. 하지만 험담을 하면서 사는 게 조금은 더 재미있다(남들의 삶을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우리 삶의 공허함을 메워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프다).

④ 험담을 빼면 할 얘기가 없다.

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험담을 용인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추기기까지 한다. 매주 '연예계 가십(험담)'을 화제로 전달하는 텔레비전 프로도 있다.

사람들이 험담을 일삼는 이유를 일일이 다 적으려면 평생을 바쳐도 부족하다. 분명한 것은 이런 이유들이 불안, 자기도취, 인색함, 그리고 그 이상의 나쁜 감정들이 도사리고 있는 매우 악한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심리학자는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이 자기 투영의 한 형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즉,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성향 중에 싫어하는 것을 남들에게서 찾아내려는 심리 때문에 험담을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어쩌면 자신이 헐뜯고 있는 사람을 잘 관찰해봄으로써 스스로 가장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고쳐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명한 학자 찌포라 헬러 여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장을 마치고자 한다. “자만심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있어 남들을 하찮게 여기고 얕보는 것보다 더 값싸게 자기도취에 빠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게 하면 실제로는 전혀 우월하지 않으면서도 우월감을 얻을 수 있다.”

 

 

험담 벗어나기 1 : 악한 것을 말하지 말라 -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은 세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누가 죽는 것일까?

우선 험담을 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있잖아, 내가 아무개의 이혼에 대해 직접 그 이유를 들었는데 말이야.”라고 말했다고 하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모두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며 당신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당신에게 주목할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아마도 당신이 여왕 혹은 왕이 된 듯한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일 뿐이다. 당신이 남들에 대해 나쁘게 말하기를 좋아하고 아무 때나 쉽게 ‘추잡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나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의지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험담을 일삼다 보면 언젠가는 홀로 남겨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험담은 스스로를 서서히 죽인다.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면 결국에는 우리의 가치도 떨어진다.

험담은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을 죽인다. 험담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그로 인해 그들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각이 삐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다. 단지 이 사람들은 천진난만하게 자신들의 맡은 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정보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모든 말은 그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회복이 불가능한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다. 한 사람의 명성은 분명 그 자체로 그 사람에게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명성이라는 것은 험담으로 한꺼번에 날아가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원래대로 복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도 하다.

탈무드에 따르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험담을 듣는 사람이다. 험담을 듣는 것은 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에 대해 나쁜 말을 할 때 그것이 분명히 잘못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험담으로 난도질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수동적으로 듣고만 있는 사람이 가장 큰 해를 입는 것으로 보일까. 답은 수동적이라는 말에 있다. 관련된 세 명의 당사자들 중에서 듣는 사람만이 악한 말을 멈출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은 이미 남들에 대해 나쁘게 말하려고 작심을 했다.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상황을 제어할 능력이 없다. 듣는 사람만이 유일하게 대화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그래서 듣는 사람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이다.

말에 대한 율법들은 남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렇다, 당신은 자신에 대해서조차 나쁘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 같은 행동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대의 교리에 따르면 하느님은 실수하는 법이 없다. 그는 자신의 형상을 본떠 당신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유일한 존재이며 특별한 존재이다.

 

 

험담 벗어나기 2: 험담을 듣는 것은 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 험담을 피할 수 있는 6가지 방법

악한 말을 들으면 스스로 파멸한다. 그것을 피하려면 구체적인 방안들이 필요하다. 다음에 나오는 몇 가지 방법들은 실험을 거친 확실한 것들이다.

① 만약 당신이 어느 모임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갔다가 그들이 험담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곳에 머무르지 말고 계속 돌아다녀라. 험담과 헛소문을 들어야만 하는 상황에 자신을 밀어 넣지 마라.

② 험담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으로 인해 야기되는 피해를 말해주고 험담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명해주어라. 사실은 험담을 하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듣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종종 역효과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충고는 적절하게 하지 않으면 험담을 한 사람에게 창피를 주게 되고, 악한 말이 당신에게로 되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일대일 상황에서는 험담을 하거나 듣는 사람에게 충고를 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

③ 대화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려 한다면 화제를 바꿔라. 대화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무해하고 안전한 화젯거리 쪽으로 가도록 유도하라. 상대방은 어쩌면 당신이 숨을 돌리려는 순간 또 다시 험담을 시작하려 할지 모른다. 상대가 얘기를 다시 시작하려 할 때 또 다른 얘기를 꺼내어 그의 주의를 흐트러뜨릴 준비를 하라. 잠시 뒤에는 상대방이 험담을 포기할 것이고, 당신 앞에서는 험담을 해봤자 아무 소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순간적으로 발휘하는 재치가 험담을 그만두게 하는 열쇠다.

④ 험담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험담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도 좋은 측면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라. 사람들이 파괴적인 말을 할 때 우리가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설명해줄 수만 있다면 그런 말들이 힘을 잃을 수 있다.

⑤ 대화를 하던 중에 갑자기 떠오른 엉뚱한 생각 때문에 상대방이 지난 몇 분 동안 무슨 말을 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던 적이 있는가? ‘생각 지우기’는 어렵지 않다. 실제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다른 생각을 백 가지쯤 해보라. 저녁 반찬거리에 대한 생각이나 나중에 해야 할 일 등을 생각하라. 아니면 그냥 몽상 속을 헤매도 된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중에도 당신은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⑥ 앞서 얘기한 방법들로도 험담을 잠재우지 못했다면 - 자리를 뜰 수도 없고(당신이 달리고 있는 차 속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화제를 바꾸려고 시도했지만 계속 원래의 화제로 되돌아가고, 얘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좋게 평가하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고, 다른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면 - 이 마지막 방법을 사용해보라. 내가 제시하는 마지막 방법은 ‘들은 것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설령 그 험담이 100퍼센트 진실인 것처럼 들려도 우리는 믿지 말아야 한다.

 

 

험담 벗어나기 5: 악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도 험담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남을 헐뜯지 않는 법과 험담을 듣지 않는 법 등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말 한 마디 하지 않고도 이런 사항들을 어길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창세기』를 보면 야곱이 어머니의 일가 중에서 아내될 사람을 구하려고 하란으로 여행을 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삼촌 라반을 찾아가는 도중에 양치기들이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있는 곳에 이르게 된다.

야곱이 그 목자들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하란에서 오는 길입니다.” 야곱이 그들에게 또 물었다. “나흘이라는 분의 손자인 라반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아, 예. 우리는 그를 잘 압니다.” 야콥이 그들에게 또 물었다. “그 분이 평안하게 잘 지내십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잘 삽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양치기들에게 있어 라반이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양치기들이 야곱의 모습에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라.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아무개를 아느냐고 묻는데 당신이 무뚝뚝하게 “안다.”고만 대답한다면 그는 당신이 아무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말에 관한 율법에서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느냐 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 심지어 무엇을 말하지 않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험담 벗어나기 10 : 용서하라. 용서란 놓아준다는 뜻이다

때로는 “미안하다.”는 말보다 “용서한다.”는 말을 하기가 더 어렵다. 사람들은 모두 한계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들은 당신을 만나기 전에도 나름대로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놓여진 성격적인 결함과 문제를 놓고 씨름한다(바로 당신처럼). 많은 사회 문제를 추적해보면 한 가지 공통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무분별한 증오다. 증오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랑, 무분별한 사랑이 아닌 목적이 뚜렷한 사랑이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아이들을 사랑하면서도 그들의 실수를 볼 수 있다. 당신이 상대의 장점을 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그가 실수를 하거나 실망을 시켰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용서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당신이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용서를 바라지만 상대방이 용서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의 의무는 시도해보는 것이다. 우선 직접적인 사과를 해보라. 상대방이 화가 나서 당신을 거부한다면 편지를 써보라. 그것도 효과가 없다면 상대가 존경하는 제삼자에게 도움을 청하여 중간에서 평화를 위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

때로는 진심으로 용서하고 싶지만 자존심, 과거의 상처, 감정, 사회적 압력, 그리고 불확실성 같은 요소들이 길을 막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분노와 증오는 한 인간을 제압하고 그의 발전과 행복을 방해한다. 그것은 마치 머리 위해 하루 종일 떠 있는 먹구름과 같다. 때로 사람들은 용서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용서할 기회를 주어야 할 때도 있다.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 싸움을 하려 해도 두 사람이 있어야 하고, 화해를 하는 데에도 두 사람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먼저 첫 발을 내디뎌야 한다. 용서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다. 용서가 없는 곳에는 파괴적인 말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험담 뒤집기

평화스러운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하나를 가르쳐주겠다. 그것은 일명 ‘험담 뒤집기’다. 험담 뒤집기랑 험담을 하거나 듣는 대신 좋은 말을 하고 항상 다른 사람들을 좋게 평가할 만한 이유를 찾는 것이다. 예컨대 존이 메리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한다고 해보자.

존 : 메리는 정말 게을러.

당신 : 난 못 느꼈는데, 메리는 재능이 있어, 안 그래?

존 : (마지못해) 그래, 그런 것 같아.

나중에 당신은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메리를 만나게 되고 대화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당신 : 조금 전에 존하고 얘기를 했는데, 존이 당신에게는 재능이 많다고 그러더군요(어찌됐건 그는 동의를 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메리 : 어머, 존이 그렇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어요. 나는 존이 몹시 까다롭고 속물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당신 : 흠,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존은 정말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까?

메리 : 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드물 거예요.

다음 날 당신은 존과 얘기를 주고받다가 메리와 나누었던 대화를 언급한다.

당신 : 메리가 그러는데 자네가 무척 열심히 일한다는군.

존 : 정말이야? 메리가 나를 좋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군. 메리도 어쩌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다음 번에 존과 메리가 복도를 지나다가 마주칠 때에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완전히 다른 태도와 기대감으로 - 평화와 기쁨 그리고 친절함으로 - 서로를 보게 된다. 그 모든 일은 당신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다.

당신은 혹시 그들을 뒤에서 조작했다고 느끼는가?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재미있지 않은가? 나쁜 말을 남에게 전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긍정적인 설득을 통해 좋은 점을 북돋우고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깃들게 하는 일이 부정적으로 비쳐진다니 말이다. 나는 그것이 조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험담 뒤집기가 옳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제발 그 말을 믿지 마라.

 

 

남들에 대해 얘기해도 괜찮은 때

험담, 그리고 다른 형태의 파괴적인 말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이 책은 말이라는 선물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당신이 깨닫도록 하는 데 전념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명백히 옳지 않은 일을 한 경우 그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허락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할 의무를 지는 때가 있다고 말할 때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당신이 그 사람에게 나쁜 감정을 품지 말아야 하고 당신이 하는 말에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말하려는 내용이 파괴적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말하지 마라. 기다리고, 생각하고, 율법을 당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에게 말을 해도 괜찮은지 물어보아라. 그리고 묻는 와중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상황을 설명할 때에는 해당되는 사람의 이름을 밝히지 마라. 말을 해도 괜찮은 것인지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하라. 일단 말을 하면 그것은 바람에 흩어진 깃털이 된다. 당신은 그것을 다시 거둬들여야 한다.

출처 : 상운교회
글쓴이 : 강인철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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