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걸어라
유인촌 지음
중앙북스 / 2007년 7월 / 240쪽 / 9,800원
▣ 저자 유인촌
그의 이름 앞에는 배우, 교수, 문화 행정가, 마라톤 마니아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최근에는 ‘걷기 전도사’라는 애칭이 하나 더 붙었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후 2005년에 마라톤 풀코스를 첫 완주했으며 지금까지 3회 완주했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일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3년 MBC 공채 탤런트 6기로 연기를 시작했으며, 1990~1992년 한국 방송연예인 노조위원장을 역임했다. 1995년 극단 ‘유’를 창단하고, 이후 ‘유시어터’를 설립 · 운영하는 등 방송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연극 무대를 꾸준히 지키고 있다.
대표 출연 작품으로는 연극 ‘햄릿’, ‘문제적 인간 연산’을 비롯해 영화 ‘김의 전쟁’, ‘연산 일기’ 그리고 TV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로는 ‘장희빈’, ‘야망의 세월’, ‘TV 조선왕조실록’, ‘역사스페셜’ 등에 출연했다. 또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뿐만 아니라 현대 무용 ‘문’ 등 다양한 문화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그동안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 KBS 연기대상, MBC 최우수연기상, 동아 연극상 대상 및 연기상, 이해랑 연극상 등을 수상했고, 저서로는 한국 조건에 맞는 연기 지도서인 『유인촌, 연기를 가르치다』가 있다.
▣ Short Summary
걷기는 편하게 일상생활에서 해 나갈 수 있는 운동이다.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번거롭게 운동복으로 갈아입지 않고도 어디서든 발 닿는 대로 할 수 있는 운동이 바로 ‘걷기’다. 이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걷게 만드는 순수한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가 무려 8개월 동안 하루 2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 다니며 얻은 ‘걷기의 즐거움’을 생생하게 담았다. 저자에게 걷기는 걷는 즐거움에 빠져들수록 운동 이상의 의미가 되었고, 걷는 동안 떠오른 생각, 만나고 보고 느끼는 것 등은 걷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걷기는 문화와 나 자신과 소통하는 통로인 것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기를 희망해왔다. 건강한 육체야말로 행복하게 사는 기본 조건 아닌가. 걷기가 저자 혼자만 알고 있는 ‘깊은 산 속 옹달샘’이 아니라 모두 함께 마실 수 있는 ‘마을의 공동 우물’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저자는 이 책을 쓰기로 결정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걷기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실천하기 쉬운 운동이다. 이 책을 통해 시간이 없어 운동하지 못한다는 사람들도 저자가 느낀 ‘걷기의 즐거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차례
프롤로그 걸으면서 행복해지는 노하우
워크홀릭 하나, 한번 걸어볼까, 도쿄
시속 6킬로미터의 행복 / 한번 걸어볼까 도쿄 / 굿바이 전철, 무조건 걷는다
몸무게가 줄면서 벌어진 일 / [유인촌의 걷기 노하우1] 하루에 얼마나 걷는 것이 좋을까
워크홀릭 둘, 내게 길은 그냥 길이 아니야
빨래방 세탁기와 4장의 팬티 / 자신감이 넘쳐 사고를 쳤는데 / 놀멘놀멘 걷는 걷기 게임
내게 길은 그냥 길이 아니야 / [유인촌의 걷기 노하우2] 걷기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워크홀릭 셋, 세월이 주는 힘, 여유가 주는 힘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 세월이 주는 힘 여유가 주는 힘/
몸과 마음이 젊어지는 나만의 비결 / 9988234 / [유인촌의 걷기 노하우3] 오랜 시간 걷고 난 후
워크홀릭 넷, 아름다운 중독 워크홀릭
집착과 욕심을 버리는 마음 다이어트 / 아름다운 중독 워크홀릭(Walkholic)
골목골목 다니다 보면 / 스피드 라이프 슬로우 라이프
[유인촌의 걷기 노하우4] 내 몸을 알고 걷는 것, 모르고 걷는 것
워크홀릭 다섯, 수고한다, 내 두 발아
4시 53분 신주쿠역 3번 플랫폼 /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 / 가슴 활짝 펴고 배에 힘주고
수고한다, 내 두 발아 / [유인촌의 걷기 노하우5] 재미없으면 걷지 마라
워크홀릭 여섯, 끝까지 걷는다 해남에서 광화문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밟으며 보는 모습 / 나의 걷기, 샘솟는 아이디어
끝까지 걷는다 해남에서 광화문까지 / [유인촌의 걷기 노하우6] 걷기에 관한 몇 가지 원칙
해남에서 광화문까지 걷기 코스
책 속 부록 유인촌처럼 걸어라
시속 6킬로미터의 행복
걷다 보면 짧고 경쾌한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이런저런 일로 복잡했던 머릿속이 몸의 리듬에 맞춰 맑아진다. 오가며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도 이렇듯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아름답고 경이롭다. 열심히 걸어서 도착 장소에 이르면 등줄기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충만한 만족감에서 비롯된 긍정적인 에너지로 뿌듯하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욕이 넘쳐흐른다.
나의 걷기는 유유자적 산책하는 것이 아니다. 내 기준으로 그저 빠르고 힘차게 거침없이 걷는 것이다. 내가 걷는 속도를 대략 계산해 보면 시속 6킬로미터 정도 되는 것 같다. 사실 시속 6킬로미터는 현대인에게 무척 낯선 속도로 평소 걸음걸이보다는 조금 빠르다. 걷지 않으면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속도, 빠르지 않지만 결코 게으르지 않은 속도, 시속 6킬로미터. 나는 그 속도로 걸으며 또 다른 세상과 만났고,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번 걸어볼까 도쿄
도쿄에서 ‘한번 걸어볼까’ 생각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2006년, 일본대학교 예술학부 객원연구원으로 도쿄에 살게 된 지 2주쯤 지났을 때, 일본어를 배우던 센타가야 어학원까지 가려면 에코다(江古田)역에서 세이부 이케부쿠로 선을 타고 이케부쿠로(池袋)역까지 전철을 타고 다녔다. 그런데 두 정거장까지가 기본 요금인 140엔이고 세 정거장은 30엔이 더 붙는다는 걸 알고부터는 30엔이라도 아끼기 위해 한 정거장 정도는 아예 걸어갔다.
집에서 학교가 있는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역까지는 환승시간과 걷는 시간까지 합해 총 35분이 걸린다. 그러던 어느 날 작정하고 집부터 학교까지 걸어보니 5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철을 타는 것과 겨우 20분 차이니 예상했던 것보다 짧게 걸린 셈이다. 걸으면서 내가 사는 동네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언제나 ‘좀더 걸어다닐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모처럼 자유로운 주말이 찾아왔다. 어학원으로 향하는 방향만 대충 확인하고 무작정 큰 길과 전철 노선을 따라 내 머릿속 지도의 방향 감각이 시키는 대로 걷다 보니 결국 다카다노바바역이 나타났다. 어학원에 가기 위해 내리는 바로 그 역이었다. 나는 마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듯 펄쩍 뛰어오르고 싶을 만큼 기뻤다. 그날 밤 나는 마음속으로 여러 차례 집에서 어학원을 바삐 왕복하다가 잠이 들었다. 겨우 집에서 어학원까지 길을 알아낸 것뿐인데 마치 인생의 새로운 항로를 찾은 것처럼 뿌듯하고 흐뭇했다.
굿바이 전철, 무조건 걷는다
에코다에 있는 집에서 다카다노바바에 있는 어학원까지 가는 길을 알게 된 뒤 본격적으로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만나는 일본 사람들과 조금씩 대화가 통하니 일본어 배우는 것이 재미있어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당연했다. 새로운 길을 찾을 때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물어보았다. 나에게 걷기와 일본어 배우기는 서로 상승효과를 불러오는 두 축이었다. 걸어다니자 일본어를 말할 기회가 많아졌고,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빨리 일본어를 배우게 되었다. 혹시 도쿄에서의 나의 걷기 체험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외국어 단기 완성의 비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낯설기만 했던 길이 익숙해지고 머릿속에 도쿄라는 도시의 큰 그림이 정리되자 나는 좀더 과감해졌다. 한번은 신주쿠에서 약속이 있었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전해 듣고 나도 모르게 어떻게 걸어갈지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어학원에서 나와 신주쿠 방향으로 걸었다. 싱거울 만큼 아주 쉽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조금이나마 두려운 마음을 품었던 나 자신이 우스울 정도로 단 한 번의 시행착오도 없이 바로 찾아간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약속 장소가 정해지면 아무리 먼 거리라고 해도 전철 노선이 아니라 걸어가는 길을 먼저 생각했다. 전철을 꼭 타야 할 경우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걸어가는 길이 포함되도록 계획을 세웠다. 걷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나자 걸어다니는 거리가 엄청나게 늘어났고, 더 많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자리에 들 때는 다음 날 아침 또 걸을 것을 생각하면 즐거웠다. 이처럼 나는 걸은 뒤의 피곤함을 즐기게까지 되었으니, 걷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내 삶의 소중한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몸무게가 줄면서 벌어진 일
걷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두 달, 일본에 온 지 석 달 만에 4킬로그램이 줄었다. 솔직히 몸무게를 줄이려고 걷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줄어든 몸무게가 아니라 어학원까지 걸어다니기 시작한 이후 두 달 동안 걷기 좋은 몸으로 바뀐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피곤했지만 열심히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근육이 발달되어 피곤함도 줄어들고 몸도 전체적으로 가벼워졌다.
본격적으로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몇 가지 습관과 규칙이 생겼다. 아침밥을 꼭 해 먹고 저녁이면 동네 공중 목욕탕으로 향하는 것이다. 겨울 아침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집 안에서 밥상을 차리고, 혼자 밥 먹고, 설거지할 때까지 한 마디 말조차 하지 않으며 느끼는 쓸쓸함이 어쩌면 나의 원시적 감성을 이끌어 내는 것 같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또한 일본대학교 도서관에서 밤 10시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빨래를 가지고 목욕탕으로 가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뜨거운 탕 속에 들어갔다가 빨갛게 익은 몸을 바라보며 그 먼 거리를 힘차게 걸어다닌 것이 대견하다고 칭찬해주었다. 그저 열심히 걸었을 뿐인데 내 마음까지 긍정적으로 변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걷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건 덤으로 얻은 선물 같았다. 이제 걷기는 내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워크홀릭 둘, 내게 길은 그냥 길이 아니야
빨래방 세탁기와 4장의 팬티
어느 날 아침 속옷을 갈아입으려다가 팬티의 허벅지 안쪽 부분이 닳은 난 것을 발견했다. 이유는 시도 때도 없이 걸어다녔기 때문이다. 평상시 반바지 스타일의 트렁크형 팬티를 입고 다녔는데, 하도 걸어서 속내의가 해진 것을 보자 갑자기 내가 뭔가 해냈다는 생뚱 맞은 자부심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연기를 위해 춤을 배울 때도 구멍 난 신발을 보며 희열을 느낀 적이 있다. 이 느낌은 한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걷는 데 요령이 생기기까지 여러 가지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맨 처음 겪은 시행착오는 역시 신발이다. 일본에 도착해 첫 한 달 정도는 편안한 단화를 신고 다녔다. 그런데 걷는 거리가 늘어나면서 발목과 다리가 아파 왔다. 그래서 서울에서 가져온 비닐 재질로 발등을 덮는 운동화를 선택했으나, 방수가 되는 것은 좋았지만 이 운동화 역시 쿠션이 부족해 무릎에 충격이 전해지고 통풍이 되지 않아 발에 땀이 찬다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 나는 러닝화와 워킹화 전문 매장을 하는 후배의 충고로 워킹화를 신게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딱 나에게 적용되는 말이었다.
나는 새로운 일은 무조건 먼저 부딪쳐보고 경험을 통해 배워 나간다. 걷기도 마찬가지였다. 걷는 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체력도 좋아지고, 정신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또한 나의 이 소중한 걷기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를 나 혼자만 아는 ‘깊은 산 속 옹달샘’으로 남겨 둘 것이 아니라, 공동의 우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넘쳐 사고를 쳤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걷기는 점점 대담해져서 걸어서 두 시간 정도 되는 거리, 즉 대략 12킬로미터 정도를 걸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더 이상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도 생기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와 비례해 내 일본어 실력이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자 더 멀리 걸어가 보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도쿄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한 시내 중심부 미드타운에서 아내를 만나기로 한 것이다. 롯폰기보다 조금 더 가는 곳이었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도쿄 전철 노선도가 확실하게 그려져 있었고 항상 그 노선도를 기준으로 삼아 이정표를 보고 길을 찾아다녔다. 그 날도 그랬다. 하지만 결국 자신감이 지나쳐 교만에 이르자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이왕 가는 길,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을 들렀다가 가기로 마음먹고 신주쿠 문화센터로 향했다. 문제는 신주쿠 문화센터에서 나와 큰 길을 선택하지 않고 대략 방향을 잡아 골목길로 접어들면서 일어났다. 신주쿠에서 롯폰기까지는 걸어서 약 1시간 30분 거리라고 예상했지만 1시간 넘게 걸어도 도무지 익숙한 도로나 지명이 나오지 않았다. 퍼뜩 이상한 생각이 들어 큰 길로 나오려고 시도했지만 큰 길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좁은 골목길이 계속 이어졌다. 두 시간을 헤매고 나서야 눈앞에 와카마추 카와다역이 보였는데. 이 역은 롯폰기와 반대 방향에 있는 역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지름길로 여겨진 길을 택해 걸었는데 또다시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7시가 넘어 있었고, 1시간 30분이면 갈 길을 무려 3시간이나 헤매고도 제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하고, 가장 가까운 전철역으로 들어갔다. 나의 ‘교만함’을 탓하는 마음은 컸지만 그렇다고 길을 헤맨 것이 억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지금껏 모르던 길을 많이 알게 된 것이 기분 좋았다. 무작정 걷는 것의 즐거움이랄까.
놀멘놀멘 걷는 걷기 게임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갖고 걸으면 모든 게 즐겁다. 아니, 걷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어느새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기분 좋은 활기가 적당하게 생겼다. 즐겁게 걷기 위해 개발한 게임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밤에 조용한 길을 걸을 때 내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귀를 기울여 발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발소리에 온 정신을 집중하면 어느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또 숫자를 세려고 해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신 집중을 하면 할수록 더 쉽게 숫자를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처럼 걷는 동안 발견하는 즐거움은 무척이나 많다. 걷는 즐거움을 빼면 내 모습이 남의 눈에는 좀 얼빠진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혼자 정한 게임을 하면서 혼자 즐거워하고, 늘 흔한 거리 풍경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는 그걸 ‘발견’이라고 기뻐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처럼 놀멘놀멘 걷다 보니 어느새 걷는 게임에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내게 길은 그냥 길이 아니야
벌써 20여 년 전 일이다. 호암아트홀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공연할 때 주인공 햄릿 역을 맡았다. 햄릿은 정말 대사도 많고, 체력 소모가 큰 역할이다. 나는 다른 어떤 배우의 햄릿보다도 ‘유인촌의 햄릿’이 빛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 연습 중 하나가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시간을 이용해 체력을 기르고 대사를 외우며 발성연습을 하는 것이다. 서소문에 있는 호암아트홀에서 압구정동 집까지 걷다가 달리다가 하면서 대사를 외웠다. 호암아트홀에서 집까지 7~8킬로미터쯤 되려나. 두 시간 정도 걷고 뛰다가 집에 도착해서 씻고 나면 기분 좋은 피로가 몰려와 푹 잘 수 있었다. 체력을 키우고 대사 연습도 했다는 만족감에 하루하루 행복하고 뿌듯해하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내게 길은 그냥 길이 아니라 연기에 필요한 체력을 키우는 훈련장이요, 훌륭한 연습 무대였다.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걷기와 달리기는 배우인 나를 단련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걷기는 누구라도 나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 되면 가능하다. 나는 다만 열심히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도쿄에서 우연히 다시 시작된 걷기와의 인연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져 갔다.
워크홀릭 셋, 세월이 주는 힘, 여유가 주는 힘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아내가 도쿄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걸었다. 서울에 잠깐 다녀올 때, 아내를 마중하거나 배웅할 때 시나가와역에 내리면서 항상 ‘언젠가는 여기서부터 집까지 걸어가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것은 결심이기도 했고 걷고 싶다는 바람이기도 했다. 오늘 드디어 그 생각을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나가와역에서 전철 노선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나는 신주쿠역까지 열 정거장도 안 되는 거리, 역 사이가 좀 긴 구간이 몇 군데 있지만 한 3시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를 눈여겨보았다. 3시간에 의미를 둔 것은 아내가 출국장에서 기다리다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나에게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걷는 것이 목표였으므로 중간에 구경거리가 있어도 기억만 해두고 큰 길을 따라 걸었다. 시나가와와 신주쿠의 중간쯤 되는 시부야 근처에 도착했다. 여기부터는 다 걸어본 길이었다. 더운 날씨에 등은 이미 흠뻑 젖었지만 리듬을 타고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게다가 아는 길을 걸으니 나의 신경은 점점 무뎌지고 걷기 자체에 몰입되어 갔다. 내가 한 번도 걷지 않은 길을 걸어봤다는 것과 도쿄의 서쪽지역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선을 그어보았다는 것 그리고 3시간 이상 걸었다는 사실이 나를 즐겁게 했다. 그냥 한 정거장 정도 걸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본에서의 걷기는 이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 우리 땅으로 향하고 있었다. 남의 땅에서 걷기도 이렇게 즐거운데 눈에 익은 산천을 바라보며 걸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도쿄에서 시작한 걷기는 이제 거침없이 한반도로 향하고 있었다.
세월이 주는 힘 여유가 주는 힘
세월이 주는 힘인가,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주는 힘인가. 나는 이제 걷기 그 자체의 매력과 힘을 동시에 느끼는 한편,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걷기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나는 연기와 걷기의 공통점을 아주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연기와 걷기 모두 ‘창조적 놀이’라는 것이다. 연기를 하는 배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창조성이다. 나는 연기의 이런 창조적 속성을 걷기를 통해 느꼈다. 걷기가 사람을 창조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 보던 것도 걸으면서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다시 보면 새롭게 보인다. 연기에서도 걷기에서도 부드러운 움직임과 리듬, 호흡이 중요하다. 아무리 과장하는 연기라도 동작은 부드러워야 한다. 걷기도 그렇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걸으면 오래 못 가서 지치고 피로가 몰려든다. 몸에 힘을 빼고 경쾌하게 걷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걷기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던 것도 나의 정체성이라고 규정한 ‘연극과 연기’의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무대에 선다면 더욱 아름다운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걷기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더 많이 체험하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인생 자체가 연기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이제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훨씬 더 성숙한 연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함께 누리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몸과 마음이 젊어지는 나만의 비결
‘동안(童顔)신드롬’이라는 말이 젊은 친구들 사이에 유행이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나도 50대 또래들보다 젊어 보이고 싶다. 하지만 젊어 보이기 위해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는다. 젊어 보이는 것보다 몸과 마음이 젊은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되려면 우선 몸이 젊어야 한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늙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부지런히 움직이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서 노화를 어느 정도 늦출 수 있는 것 같다. 몸이 젊은 상태를 유지하면 마음도 젊어지고, 마음이 젊어지면 몸은 더욱더 젊어진다. 그러면 당연히 온몸에 에너지가 넘쳐나고 얼굴색이 밝아져 젊게 보일 수밖에 없다. 단순하게 피부 관리를 받아 어려 보이는 것과 차원이 다른 ‘진정한 동안’이라고나 할까. 만약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다면 피부 관리 대신 지금 당장 나가서 걸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얼굴에 수증기를 쐬어 피부에 윤기가 나는 것은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다. 걸으며 흘리는 땀, 보기에 좋게 만들어진 근육, 생생하게 빛나는 얼굴이 바로 젊음 그 자체일 것이다.
9988234
“9988234!” 친구들 모임에서 건배를 하면서 처음 듣게 된 건배사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다 죽자’라는 의미란다. 주변 친구들도 이제 어느 정도는 죽음을 의식하고 사는 것 같다. 사실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저런 의학 시술로 건강하지 못한 몸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또 무슨 의미가 있으랴.
내가 늘 운동에 집착하고 항상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가장으로서 해야 할 첫 번째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혈압과 당뇨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다. 10년 전쯤부터 고혈압 약을 먹고 있지만 당뇨병은 정말 기를 쓰고 예방하려고 한다. 당뇨는 생활 습관병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스스로 생활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로 몸무게를 관찰한다. 몸무게를 줄이려고 특별히 노력하지는 않지만 늘어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집에서도 과식하지 않으려고 하고, 반드시 잡곡밥을 먹는다. 고기나 채소를 골고루 먹고 술은 취하지 않을 정도만 마신다. 또 한 가지 내가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은 흡연이다. 마흔 살 이전에는 열흘에 한 갑 정도는 피운 것 같다. 그러나 마흔이 넘어서면서 딱 끊었다. 금연은 정말 중요한 생활 습관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운동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한다. 일상생활에서 운동을 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그러면 바쁜 와중에도 짬이 생길 때 운동할 수 있게 된다. 걷기는 그런 면에서 최고의 운동이다. 귀찮아 못하겠다, 바빠서 못하겠다는 핑계를 대려고 할 때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들을 떠올려 보라. 내가 건강한 것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아끼며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워크홀릭 넷, 아름다운 중독 워크홀릭
집착과 욕심을 버리는 마음 다이어트
걷기를 하면서 가벼워진 것은 몸뿐만이 아니다. 마음의 무게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걷기를 하면서 가장 좋은 일 중의 하나는 바로 나 자신과 오랜 시간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솔직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이 바로 걷기에 열중하고 있을 때다. 내가 마음의 감옥에서 괴로움을 겪고 있을 때 그 원인이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집착이나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도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내면의 목소리다.
나는 가벼움을 추구한다. 몸도 마음도 생활도 모두 가볍게 살아가고 싶다. 몸무게 1킬로그램이 줄면 몸이 좀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듯 마음속 욕심이나 집착 하나를 버리고 나면 그 순간 마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진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마음 다이어트 또는 영혼 다이어트가 아닐까. 나는 걸으면서 마음의 군더더기를 덜어내 더욱 ‘가난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도 몸처럼 요요현상이 생기나보다. 완전히 털어냈다고 생각한 집착과 욕심의 끄트머리가 어느 순간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괴롭힐 때가 있다. 그래서 걷고 또 걸으며 마음 다이어트를 계속 한다.
아름다운 중독 워크홀릭(Walkholic)
언젠가 마라토너가 달리기에 집중하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몽환적 느낌에 빠져드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러너스 하이 상태에 이르면 몸이 저절로 움직이고 생각마저 멈춘다고 한다. 만약 걷기에 같은 개념을 적용한다면 내가 경험한 몰입의 순간을 ‘워커스 하이(Walker’s high)’라고 표현해도 괜찮지 않을까. 짧은 순간이나마 완전한 몰입을 경험했기에 그 순간을 스스로 ‘워커스 하이’라고 칭해야겠다.
연기를 할 때 연기자는 자신을 버리고 역할에 완전히 몰입해야 한다. 연기자들은 이를 ‘육화(肉化)’라고 표현한다. 육화가 힘들 때 나는 깜깜한 방에 촛불만 켜 놓고 대본을 펴서 뚫어지게 쳐다본다. 완전히 육화된 뒤 공연을 하면 어느 순간 연기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옆에서 쳐다볼 수 있다. 나는 지금껏 이것을 연기자의 카타르시스라고 표현해왔다. 이 느낌을 ‘워커스 하이’에 빗대어 ‘액터스 하이(actor‘s high)’라고 하면 어떨까.
나는 연기를 할 때나 명상을 할 때나 걷기를 할 때나 몰입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 가운데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 걷기다. 그래서인지 걷기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계속 걷고 싶어 한다. 더 자주, 더 먼 거리를 걷고 싶어 한다. 며칠 동안 걷지 못하면 마치 금단 증상처럼 마음이 불안해진다. 이 정도면 ‘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걷기 중독(Walkholic)’. 누구라도 한 번쯤 체험해도 좋은 중독 아닐까. 지금 당장 거침없이 걸어보는 거다.
골목골목 다니다 보면
도쿄에서 걷기 시작했을 때 나는 ‘발견하는 즐거움’에 먼저 빠져들었다. 그렇게 발견한 것들 가운데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맛있는 집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아카사카에 있는 붕어빵집, 긴자에 있는 초밥집, 신주쿠에 있는 돈가스집, 롯폰기에 있는 메밀국수 집 등 이렇게 발견해낸 집이 도쿄 전체에서 한 50여 곳은 된다. 그런데 정말 짜릿한 발견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은 역시 일본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숨은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다. 내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우리 동네에 있는 에하라야시키모리라는 작은 숲을 발견했을 때다. 연구실이 있는 일본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늘 가던 길이 아닌 좀 다른 길로 가보고 싶었다. 좀 돌아서 가는 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길을 가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놀이였다.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즐거움을 얻는 시간이었다.
걸으며 발견하는 것들은 그리 크지 않다. 거창한 구호나 광고가 아니라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삶의 철학을 반영한 작은 것들이다. 사람의 진정한 됨됨이나 철학은 그가 말하는 것에 있지 않고 그의 눈빛 하나 손놀림 하나에 있다는 것을 우리 나이쯤 되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다. 나는 걸어 다녔기 때문에 일본의 의미 있는 작은 것들을 발견하고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바로 그것에 내가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얻은 가장 값진 소득인 셈이다.
스피드 라이프 슬로우 라이프
걷기는 본래 느린 것이다. 그래서 요즘 ‘슬로우 라이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느림의 미학’을 칭송하며 틈날 때마다 걸으라고 한다.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사람들은 느린 것이 궁극적으로 빠르다고 이야기한다. 즉 인생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갖는 것이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더 빠른 방법인 것이다.
도쿄에 머물 때 집에서 어학원까지 걸어가는 것이 전철보다 20분 정도는 더 걸렸지만 그 50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관찰하고 분석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내 체험상 전철을 타는 동안 소비하는 30분은 단순히 공간 이동을 위해 버려지는 시간이었다. 생각할 여유나 일본의 정신을 경험할 틈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인생에서 참 의미 있는 시간은 스스로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 아닌가. 그 시간은 길면 길수록 좋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시간 계좌에 적립되는 시간이다. 그러나 버려지는 시간은 아무리 짧더라도 인생의 시간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시간이다.
걷기를 통한 느림의 미학을 예찬하면서 몸은 초고속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갈 것인가 때문에 한동안 고민했다. 이 모순은 느림을 속도로 보지 않고 ‘속도에 대한 자기 조절의 힘’으로 생각하면서 해결되기 시작했다.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가 속도라면, 느림은 감속의 기법을 다룰 줄 아는 지혜’라는 밀란 쿤테라의 말처럼, 초고속 시대를 살아가는 속도를 조절할 줄 아는 자기 조절의 힘인 것이다. 결국 나는 걸으면서 내 삶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돼 마치 새로운 삶을 찾은 것처럼 활기에 차 움직였던 것이다.
현실이라는 기차는 너무 빨리 달려가므로 내가 뛰어내리지 않는 이상 그 속도로 가야만 한다. 그러나 빨리 달리는 기차에 앉아서 가끔씩 차창 밖을 내다보며 호흡을 고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걷기가 주는 ‘속도 조절의 힘’ 아닐까.
워크홀릭 다섯, 수고한다, 내 두 발아
4시 53분 신주쿠역 3번 플랫폼
“4시 53분 야마노테선 신주쿠 역 3번 플랫폼에서 만나요.” 일본대학 학생들과 가까운 곳을 방문하기로 하고 약속 시간을 정하는 데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해 순간 당황했다. 4시 53분이라거나 5시라고 하면 될 텐데 굳이 4시 53분이라고 하는 것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전철 시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도쿄 사람들의 일반적인 약속 관행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확실히 전철은 천재지변이나 갑작스러운 사고가 생기지 않는 이상 플랫폼에 적혀 있는 시간표대로 운행되었다.
또 한 번은 일본 학생들과 내가 좋아하는 꼬치구이를 먹으러 갔는데 평상시 먹던 것보다 무척 싸서 의심스러웠다. “꼬치구이가 너무 싼 것 아냐? 좀 이상하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값이 싸면 품질은 좀 떨어질 수 있지만, 이상한 것은 팔지 않아요.” 그 순간 흠칫 놀랐다. 일본 사회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철저한 신뢰’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먹는 것부터 행정까지 일본은 ‘약속을 기반으로 한 철저한 신뢰’를 반드시 지키는 사회임을 절감했다.
걸어다니며 이런저런 상황에서 겪어본 바에 의하면 일본을 굳게 지켜주는 것은 바로 ‘신뢰’였다. 다른 말로 하면 개인적인 약속이든 사회적인 약속이든 철저하게 지키려는 노력이 일본 사람, 일본 문화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일본 사회의 신뢰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나는 걷고 또 걸으며 이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했다. 내가 걷는 동안 발견한 그 힘은 두 가지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하나는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의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공공의 힘에 대한 존중이다. ‘나는 걷는다’라는 원칙을 나 자신과 약속하고 엄격하게 실행한 것도 ‘약속은 꼭 지킨다’라는 것을 실천하고 싶은 의지 때문이기도 했다. ‘약속은 지킨다’라는 내 생각이 일본에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지켜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도 신뢰를 얻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
비록 길동무는 없지만 걸으면서 얻게 된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코 ‘사람’이다. 아니 그보다는 사람으로부터 얻는 ‘신뢰’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뢰 그 자체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일본에서 만난, 일본대학 교수 토다 선생님과 극단 ‘신주쿠 양산박’에서 활동하는 배우 콘도 니키치 군이다.
토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여러모로 남달랐다. 우선 누가 봐도 사람 좋다는 말을 할 정도로 친근한 외모여서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데도 처음 만나는 자리가 불편하지 않았고, 내가 머물 집을 함께 보러 다니면서 나보다 더 꼼꼼하게 요모조모 살폈다. 집을 구한 후에는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일까지 도왔고, 집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텔레비전이 있다며 자신이 아끼는 30년 된 벤츠에 실어 집까지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상당히 개인적인 일본 사람들에게 이런 도움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한참 후 내가 교통 수단을 거의 이용하지 않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걸어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토다 선생님은 진심으로 나를 격려해주었다. 토다 선생님 머릿속에 나는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혹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듯했다.
극단 ‘신주쿠 양산박’의 배우 콘도 니키치 군도 걷기가 계기가 돼 관계가 돈독해진 사이다. 카라 주로 선생의 신작 ‘행상인 네모’가 신주쿠의 한 신사에서 초연된 날, 연극을 보고 신주쿠 양산박 식구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한 후배가 뜬금없이 콘도 니키치 군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요즘 갑자기 하루 한 시간씩 열심히 운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내가 걸어다닌다는 데 자극을 받아서라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후배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그 후에도 그가 직접 나에게 운동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말을 듣고 난 후 그에 대한 좋은 느낌을 갖게 되어 서로의 말을 더욱더 경청하고 연극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가슴 활짝 펴고 배에 힘주고
50대 중반의 나이, 아무리 의욕이 앞서도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연기와 방송 대본 암기로 단련된 고도의 집중력을 갖고 있었다. 기억력만으로는 절대로 대본을 외우지 못한다. 오히려 제대로 외우려면 순간적인 집중력이 필요하다. 걷기는 몰입을 가능케 하는 운동이다. 몰입은 다시 말하면 집중력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한 곳에 쏟아 더 큰 힘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처럼 걷다 보니 집중력이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또한 가슴을 활짝 펴고 배에 힘을 주고 거침없이 걸으면 세상을 향해 이상하리 만치 자신감이 생긴다. 일본에 처음 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일본어도 전혀 모른 채 낯선 땅에 혼자 사는데 왜 주눅이 들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걷기를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한번 자신감이 붙자 일본어를 배우는 데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좀 틀리면 어떤가. 어차피 일본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인데’ 하는 배짱도 생겼다.
내가 센타가야 어학원을 방문한 것은 11월 25일경, 일본에 도착한 지 2주 정도 지나서였다. 그런데 어학원 초급반 학기는 7월부터 시작한 상황이었고, 다음 학기까지 기다리기에는 일본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결국 나는 센타가야 어학원에 등록해서 나보다 5개월 먼저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과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3주 후 중급반 진급 시험이 있는데, 그 시험에서 70점 이상 받지 못하면 유급이라고 했다. 내 경우는 좀 특수한 상황이라 예외일 줄 알았지만 그런 예외는 없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큰 망신이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한국에서는 그래도 대학교수인데…. 한국 유학생들 앞에서 망신당할 생각을 하면 눈앞이 아찔했다. 정신이 바짝 들면서 연극과 방송생활로 단련된 집중력과 걷기를 통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공부에 집중했다. 아침저녁으로 힘차게 걸으면서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이처럼 결의를 다지며 걷다 보니 정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결과 나는 말하기, 문법, 쓰기 세 과목 평균 97점을 받아 무사히 중급 코스로 올라갔다. 나는 자신감을 잃고 움츠린 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번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가슴을 내밀고 힘차게 걸어봐라. 이 세상이 제아무리 힘들고 거센 도전이 많아도 결국 자신이 가는 길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수고한다, 내 두 발아
나는 오랫동안 내 몸을 혹사시켜왔다.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했지만 내 자신에게는 미안할 만큼 야박했다. 연기자로서 나를 단련해야 한다는 강한 의식 탓에 항상 나 자신을 어려운 환경, 혹독한 시련 속에 밀어 넣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을 잠시도 쉬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이라고 생각해 천하게 다루었다. 상처가 나면 ‘에이, 그냥 피 나다 말겠지. 내 몸아, 스스로 견뎌내라’ 며 그냥 방치했고, 내 입에 비싼 음식이 들어갈 때는 왠지 모를 죄의식을 가졌다. 이처럼 항상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서 몸이 힘들어하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50년 넘게 구박과 천대를 받으면서 꿋꿋하게 나와 함께 이 험한 세상을 헤치고 살아온 내 몸, 이제 고마워하고 사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루의 걷기를 마치고 목욕탕에서 나는 내 몸을 진정으로 살펴보게 되었다. 지금껏 묵묵히 견뎌온 내 몸에게 감사하고 진짜 아끼며 사랑해야 할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사실 다른 운동을 하면서는 내 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걷는 동안 순수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어떤 때는 내 심장이 뜨거운 삶을 갈망하듯 힘차게 뛰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걷고 또 걸으면서 내 몸과 대화를 나눈 것이다.
워크홀릭 여섯, 끝까지 걷는다 해남에서 광화문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밟으며 보는 모습
일본대 객원연구원으로 일본에 머무는 8개월 동안 나는 걷는 동안 생활 곳곳에서 발견되는 일본 문화의 속살을 또렷한 이성의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일본은 가끔 여행하면서 마주치는 모습과 살면서 알게 되는 모습이 달랐다. 또 스쳐 지나가며 보는 모습과 한 걸음 한 걸음 밟으며 보는 모습이 완전히 달랐다. 걸어서 일본을 보기 전에는 나는 물 위에 떠 있는 기름처럼 겉도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날마다 걸어다니며 그들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자 날것 그대로의 속살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일본 사람들의 정체성을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여러 곳의 마쯔리(축제)를 보고 일본 사람들의 정체성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마쯔리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참여해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정리까지 한다. 그리고 마쯔리에는 동네 사람 누구나 예외 없이 참가해야 한다. 똑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협동심을 고취시키고 공동체 의식을 키운다. 마쯔리를 보자 내 몸에 전율이 일었다.평상시에는 모래알처럼 흩어진 철저한 개인주의자들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묶는 것은 마쯔리에서 본 것과 같은 단합된 공동체 의식이다. 나는 도쿄를 비롯한 시내 곳곳을 걸으며 일본 문화를 바라보았지만 머릿속에는 항상 우리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방법과 방향을 찾기 위해 일본의 문화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나의 걷기, 샘솟는 아이디어
내가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정말 놀란 것은 일본 사회 전체가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나는 그 계획형 체제 때문에 좌절을 겪은 일이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겨울 스포츠는 스키다. 일본의 설 질은 정말 좋다. 그래서 일본에 올 때 주말이면 마음껏 스키를 탈 수 있겠다며 즐거워했다. 1월 중순 즈음, 일본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주말에 스키를 타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모든 스키장마다 3월까지 예약이 끝나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최소한 3개월 전에 예약을 하고, 예약 취소도 거의 없다고 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떻게 그렇게 계획에 따라서만 움직일 수 있는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정말 한국적인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사실 우리 사회는 ‘빨리빨리’와 ‘즉흥성’이 특징이다. 나는 우리나라에 있을 때 이런 것들을 수없이 비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걸어서 어학원에 가는데 문득 역발상이 떠올랐다. 우리의 ‘빨리빨리’와 ‘즉흥성’을 일본 사람들은 역동적이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빨리빨리’를 고칠 필요는 없다. ‘빨리빨리’에 숨어 있는 긍정적인 힘을 이끌어내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우리 스스로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뒤집어 장점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하고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일본에서 걷기를 즐기는 것도 거의 끝나간다. 내가 끊임없이 걸었던 길의 끝에는 일본의 문화가 있었다. 일본 문화보다 발전시켜야 할 우리 문화를 만난 셈이다. 이제는 우리 땅에서 걸어야겠다.
끝까지 걷는다 해남에서 광화문까지
일본을 걸으면 걸을수록, 일본을 새롭게 보면 볼수록 우리 땅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깊어졌다. 내가 태어난 땅을 구석구석 밟으며 우리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진하게 느끼고 싶었다. 걸어서 우리나라를 종단해보고 싶었다.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지도를 보면서 최남단 해남에서부터 최북단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걷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해남에서 고성까지는 어림잡아 600킬로미터. 굽이굽이 돌아가면 800킬로미터는 족히 될 것이다. 과연 날마다 40~50킬로미터를 걸으며 20일 이상 갈 수 있을까. 괜히 중도에 포기해 웃음거리가 되는 건 아닐까. 마음은 간절했지만 두려움이 앞서 일단 서울의 곳곳을 걷는 것으로 생각을 바꿀 즈음, 한 후배가 도쿄를 방문했다. 그에게 우리 땅을 걷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하자 그는 바로 함께 하겠다고 했다.
나는 우리 땅을 걸으며 우리 문화의 뿌리,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어서 해남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해남이 우리나라 땅끝마을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욕심 같아서는 문학의 배경이 되었던 곳, 드라마 촬영지, 문화예술인이 살았던 곳 등 빠짐없이 다 들러보고 싶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찍으니 걸어가야 할 길이 대충은 나왔다. 해남~강진~장흥~보성~벌교~순천~승주~괴목~구례~남원~함양~거창~무주~영동 … 서울 광화문.
코스를 결정하고 나자 하루하루 마음이 설렌다.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큰 순례에서 나는 발길 닿는 것 모두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마음을 열고 우리 문화를 느끼고 싶다. 걷다 보니 ‘보는 것만큼 알게 된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걸으면서 보는 일은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하찮은 것이라도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비록 알고 있는 것일지라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과연 무엇과 마주하고 무엇을 느낄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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