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요약

[스크랩] 나는 세상을 지배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박은수 옮김)

강인철 2009. 11. 1. 08:13

나는 세상을 지배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

숀 O'L. 히긴스 & 파멜라 길버드 지음/박은수 옮김

홍익출판사/2001년 7월/341쪽/9,500원

▣ 저자

숀 O'L. 히긴스

휴스턴에 위치한 프린트 마케팅 기획사의 CEO로 엘리자베스 역사 연구가이다.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로 국제적인 기업 회담에서 초청 연사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의 저서로는, 『론 필드(Ron Fields』와 공저(共著) 『어리석은 자에게 공평해서는 안 된다(Never Give a Sucker an Even Break)』 『비즈니스에서의 WC 영역(WC Fields on Business)』 등이 있다. 현재 워싱턴 주 스포케인에 살고 있다.

파멜라 길버드

엘리자베스의 여관(女官)이었던 돌케스 시드니의 직계 후손으로 비즈니스와 직업 문제에 대한 상담가 겸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샌프란시스코 연대기」 「코스모폴리탄」 등에 기고하고 있다. 『크게 성공하는 여성들의 11가지 계명』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캘리포니아 주 카넬리안만에 살고 있다.

▣ 역자 박은수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공역서로 『모든 사물에는 유래가 있다』 『불가사의한 세계』 『재미있는 속담 이야기』 등이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1533년 헨리 8세와 앤 볼린의 사이에서 출생했으며, 전왕 메리 1세가 후손을 낳지 못한 채 세상을 뜨자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녀는 45년간의 치세를 통해 정치적, 문화적으로 세계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변화의 한 시대를 지배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단순히 여자로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남자 이상의 능력을 보였다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볼 때 리더십의 진정한 의미를 가장 멋지게 실천함으로써 20세기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리더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여걸이다. 그녀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실용주의로 효율적인 리더가 될 수 있었고, 카리스마적인 능력과 화술로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탁월함을 강조함으로써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었다.

그녀의 뛰어난 업적은 탁월한 리더십과 분명한 목표의식, 국가와 백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통치자로서, 전략가로서, 전사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다.

지금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들은 성적 편견의 벽을 피부로 실감하면서, 가장 유능한 여자조차 가장 무능한 남자 정도로밖에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여자라는 핸디캡을 딛고 일어나 세계 경영 프로젝트를 완성하기까지 여자의 진짜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엘리자베스는 오늘 날 기업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

현대의 경영자들과 매력적인 처녀 여왕의 힘과 역동성을 배우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발적이고 실제적인 엘리자베스 여왕 1세의 매력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차례

1 여성 CEO의 리더십

2 여성 CEO의 자금 관리

3 자기 PR의 테크닉

4 어떻게 조직하고 유지할 것인가

5 여성 CEO의 비전과 사명

6 결정권자로서의 여성 CEO

7 여성 CEO의 지혜와 지식

8 자기만의 독특함을 고집하라

9 성차별 뛰어넘기

10 비즈니스 정보를 활용하는 법

11 엘리자베스의 위대한 승리

12 후계자 문제

나는 세상을 지배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

숀 O'L. 히긴스 & 파멜라 길버드 지음/박은수 옮김

홍익출판사/2001년 7월/341쪽/9,500원

여성 CEO의 리더십

“여왕인 나에게는, 백성들이 나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충성을 다하라는 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1601년 11월 3일, 화이트 홀에 모인 하원 의원과 140명의 하원 의원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자신의 치세를 옹호하는 것과 세금 정책, 그리고 궁중 대신들의 이득을 보장하는 독점 전매권을 승인한 것에 대한 여왕의 입장을 청문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여왕은 자신의 국민에 대한 사랑과 헌신, 영토 수호에의 확고한 의지를 여러 의원들 앞에서 피력했다. 여왕의 이 연설은 즉흥적인 것 같았지만, 그 연설을 들었던 의원들은 여왕의 말이 금으로 기록됐어야 할 정도로 훌륭했다고 칭찬했고, 실제로 그 연설은 ‘황금 연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황금 연설은 여왕의 리더십이 숨어 있는 비밀이 복합적으로 드러난 명 연설이다. 자신의 권위가 신과 자신을 위해 일하는 백성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들어 가장 먼저 자신의 권위를 수립했고, 그런 다음에는 자신이 취한 조치를 변호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감을 들어 신하들과 마찬가지로 여왕 자신 또한 법이 아닌 더 높은 권세에 종속되어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세계 지도자들의 퇴임 연설이나 회고 연설문 대부분이 불성실과 거짓된 자기 겸손으로 치장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왕의 연설은 가장 필요한 시기에, 당장 큰 효과를 발휘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연설은 공허하게 들리지 않았으며, 45년 간의 재위 기간 동안 여왕이 펼친 행적들을 통해 연설에서의 모든 문구가 말없이 강조됨으로써 완벽한 리더십의 수사로 재확인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세계 어느 나라 도서관에 가 봐도 지도력의 이론과 실제에 대한 책들로 가득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는 오직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뿐이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것은 1513년이지만 이 책이 세상에 공개된 것은 그가 세상을 뜨고, 엘리자베스 마저 눈을 감은 1532년이었다. 그 이유는 여느 다른 책과는 달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권력의 근원과 같은 철학적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권력의 행사와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많은 정치가들로부터 견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이 책에 매료되었다. 한번은 그녀가 ‘군주론’에 나오는 문구를 인용하여 “머리(여왕 자신을 말함)는 발(의원들을 일컬음)에 지배받지 않는다.”라고 말했고, “군주들은 보통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군주다운 지혜를 발휘하는 특별한 방법으로 거래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발언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어린 시절 마음 깊이 새겼던 가치나 여왕으로서 백성들의 복지를 위해 힘껏 애썼던 것과도 잘 맞기는 하지만 대단히 권위적인 언행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런 오만한 발언은 황금 연설의 특징인 겸손과 겸양의 행동으로 자주 완화되었다.

여왕은 “하루에 한번 곤궁한 자들을 생각하며, 가난한 자들의 정당한 탄원을 해결하라!”라는 조언을 실현시키고자 항상 노력했다. 자신의 수하에 있는 관리가 백성을 탄압하고 핍박하고 있다는 탄원이 들어올 때면 그녀는 단호하고 신속하게 조치함으로써 실용적인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곤 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냉철한 이성으로 정략적인 단기 정책을 펴면서도 궁극적인 목표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의 리더십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균형 잡힌 실용주의적 리더로 일컬어진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 리더로서, 가급적 현재 상황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개혁을 감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여왕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맡길 때 그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권력을 함께 넘겨주었다. 권력은 분배함으로써 강화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이익을 나누어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으며 대신 감독형 리더십을 발휘해 참모들을 관리하고 지도해 나갔다. 시대가 달랐다면 다른 리더의 길을 갔을지 모르지만, 엘리자베스는 내분과 전쟁의 공포, 군주의 미숙함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왕국에서 시대와 자신의 지위와 성격에 맞는 리더십 유형으로 ‘중도적 실용주의’를 선택했다. 그리고 오랜 치세와 성공을 통해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여성 CEO의 자금관리

“진실로 나는 탐욕스럽고 인정 없는 착취자가 아니며, 가혹하게 조여대는 군주나 방탕아는 더욱 아닙니다. 나는 세속적인 물질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조공으로 바치는 것을 나는 하나도 축적하지 않고 다시 여러분께 되돌려 드릴 것입니다.”

사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악명이 높을 정도로 돈에 인색했다. 영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외국 전쟁에 대한 지원이라든가 과도한 세금 부여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립시킬 수도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녀는 금융문제에 정통한 천재적 인물인 토마스 그레샴을 영입해 악화일로로 치닫던 영국의 경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강한 경제를 원하던 엘리자베스는 그레샴의 조언을 바탕으로 화폐 가치를 회복시키고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세금을 탕감해 나감으로써 무역과 투자 성장을 가속화시키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는 왕위에 올랐을 때 메리의 내각으로부터 거의 35만 파운드에 해당하는 빚을 물려받았는데, 이 액수는 당시 인구 4백만이 채 안 되던 시절의 영국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금액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최악의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엘리자베스는 현대 비즈니스 사회에서 현명한 CEO가 취할 수 있는 다음의 5가지 방법을 강구했다.

우선 연속성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고,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많은 새로운 사업은 가능한 피했으며 채무를 재조정하기 시작했다. 또한 생산성 없는 소유지를 처분하여 자본을 확보한 후, 수익 창출을 위해 성장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 투자했다. 그녀는 돈에 인색한 만큼, 현명하게 돈을 소비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곳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경제 마인드를 가진 지도자였다. 그녀는 재무 문제에 대한 탁월한 능력을 십분 발휘했으며, 견실한 재정 정책을 확립하려는 후대 정부와 조직들의 귀감이 되었다.

자기 PR의 테크닉

영국의 한 방송사는 엘리자베스를 가리켜 자기 PR에 관한 한 천재적인 테크닉을 가진 군주였다고 평가했는데, 그녀의 테크닉을 ‘자기 이미지의 개발과 보호’, ‘정확히 말하고, 인내심 있게 듣는다.’, ‘피해 조절‘과 같은 세 가지 영역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백성과 결혼한 처녀 여왕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어 그것을 집권기간 내내 활용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인상을 대중에게 강하게 심어주었으며, 다른 사람의 말을 인내심 있게 듣는 태도를 웅변술만큼이나 중요시하여 여론 수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자신의 정책과 명예에 대한 공격, 자신을 나약한 군주라고 비난하는 일들이 생기면 이를 신속하게 처리하여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줄이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 같은 엘리자베스의 자기 PR 능력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위협 앞에 놓인 작은 섬나라를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바꾸어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유명한 강사이며 『당신을 리더로 만드는 12가지 자질』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한 셀라 베델은 그의 책에서 리더의 조건으로 첫 번째는 훌륭한 대화자가 되는 길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베델에 의하면 진짜 리더란, 대화 기술을 발휘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고 방식을 깨닫도록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인데, 그런 점에서 엘리자베스는 훌륭한 대화 기술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비록 절대 권력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지만, 권력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 나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경청할 수 있도록 공통분모를 찾는 대화 테크닉이 뛰어났던 엘리자베스는 400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의 리더 중 한 사람으로 추앙 받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조직하고 유지할 것인가

엘리자베스가 대관식 후, 그녀에게 던져진 첫 번째 과제는 자신의 처세를 도와줄 주요 참모들로 구성된 추밀원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직접 통치를 지원할 위원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임명한 사람은 에드워드 6세와 메리 1세를 모두 섬겼던 38살의 윌리엄 세실이었다.

“내가 판단컨대, 당신은 어떤 뇌물에도 타락하지 않을 것이며 국가에 충성하고 내 개인적 의견에 관계없이 언제든 당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을 조언해 주리라 믿소.”

이는 모든 의원에게 여왕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지만, 특히 세실은 이에 대한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켜 준 사람이었다. 여왕과 마찬가지로 세실 역시 급진적이기보다는 온건한 변화를 바라는 균형 잡힌 실용주의자였다. 연이은 임명을 통해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연설을 통해 맹세했던 것처럼 종교에 상관하지 않고, 국가를 잘 섬겼던 참모들은 그대로 관직을 유지하도록 했다. 세실의 임명 후 다른 인물들의 임명은 비교적 빠르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엘리자베스는 분열된 주요 종파를 모두 포용해서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체계가 가져올 급격한 변화에 대한 불안을 진정시켜야 했다.

영국을 통치해야 하는 자리에 오른 이상, 여왕은 각자의 능력과 다양한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는 여러 참모들을 조직하고 관리해야 했다. 또한 그녀는 참모들 안에 내재된 편견, 즉 여자이기 때문에 정치 문제에 있어 그들보다 열등하다는 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했다. 이런 필요에서 그녀는 자신의 권위를 신속하게 수립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면서, 스스로에게 극복의 지혜를 물어 높은 가치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첫걸음은 리더의 권위와 권력을 지지해주는 조직을 창조하고 잘 유지하는 것이다. 의견이 맞지 않아도 화합하라는 이념을 전제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참모들과 영국을 이끌어나갔던 것이다.

여성 CEO의 비전과 사명

“나는 지금까지의 어느 왕 못지 않게 훌륭한 여왕이 될 것이다. 내 안에 그럴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또 그만한 힘이 부족하지도 않음을 믿는다. 여러분께 확신하건대, 여러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필요하다면 내 피 한 방울까지도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의 조국, 영국의 비전에 대해 항상 언급했다. 사실 그녀는 군주로서의 사명을 분명히 밝혔고, 비전과 사명을 이루기 위해 지칠 줄 모르는 헌신을 다했다. 현대 기업 사회에서도 모든 회사의 주체들은 나름대로의 기업의 비전과 사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인터넷 등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기업이나 사회 단체들의 ‘사명 선언문’은 대부분 ‘이윤 추구를 위해’, ‘고객에게 봉사하기 위해’ 같이 뻔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으며, 횡설수설하거나 전문용어 일색의 선언문이 많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계에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기업인 ‘노드스트롬’이나 ‘월마트’ 같은 기업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는 사명 선언문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노드스트롬’에서 발행하는 직원 안내책자 속에는 사명 선언문이 갖추고 있어야 할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다른 기업들처럼 회사 벽이나 인터넷 홈페이지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한 채, 공허한 이상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직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어, 양질의 고객 서비스라는 하나의 목표를 기준으로 모든 행동이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역사상 가장 크고 성공적인 유통업체인 ‘월마트’의 사명은 ‘문화이야기’를 통해 나타나 있다. 이 회사의 웹사이트에는 ‘일몰규칙’, ‘날마다 저렴한 가격’,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기’, 그리고 ‘10피트 자세’라는 제목의 4가지 원칙이 있는데, 이와 같은 ‘월마트’만의 문화이야기는 다른 회사들에 제공하는 전문용어 일색의 어떤 사명 원칙보다 훨씬 감동적이었다. 이런 원칙을 통해 직원, 고객, 투자자들은 월마트의 사명을 이해할 수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직원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로 인해 고객과 투자자가 받는 혜택은 무엇인지를 개개인 모두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조직과 리더들은 결합된 비전과 이에 대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사명을 가져야 한다. 엘리자베스는 분명히 ’비전이 없는 사람들은 실패한다.‘는 격언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사명 선언문이라는 말조차 없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자기 자신이 백성들의 사명이 되어주었다. 그녀의 확고하고 믿음직스러운 비전과 사명 덕분에 화폐는 안정되고 예산은 균형을 이루었으며 영국의 세력은 확장되어 그야말로 새로운 국가로 변모하였다.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여성이라면 스스로 기업의 상징이 되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

결정권자로서의 여성 CEO

“군주에게 ’당연히 해야 한다!‘라는 당위성은 없다.”

엘리자베스의 생애를 다룬 많은 작가들은 그녀를 우유부단했던 통치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여왕의 미적지근한 태도 때문에 손해를 봤던 고문관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고문관들은 자신들의 권고에 즉각 대처하지 않고, 중요한 문서에 동의하는 것도 미루는 데다가 가끔 변덕을 부리는 여왕의 태도를 못마땅해했다. 이처럼 고문관들 눈에는 우유부단함으로 비쳐진 모습이 실은 자신과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여왕의 계획된 전술이 아니었을까?

엘리자베스 여왕은 결코 결단력이 없었던 통치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과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무엇이 영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지를 직시하고 있었다. 만약 어떤 문제에 있어 결단력이 없는 태도로 비치는 모습이 있었다면, 이는 그 문제들이 정치적으로 지지를 얻지 못하는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확실한 자기 신념을 갖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잠시 결정을 미뤘다가 상황이 바뀌길 원했던 것이다.

기업의 리더라면 언제나 ‘의사 결정’의 어렵고 중요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의사 결정의 모델은 수백 가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수십 가지는 되는 상황이지만, 대부분 다음의 다섯 단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1. 정보를 수집한다.

2. 정보를 분석한다.

3.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한다.

4. 각 대안의 장점과 결과를 비교 검토한다.

5.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결정을 내린다.

성급한 결정은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우유부단하다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최대한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하며 때를 기다렸다. 기업의 리더로서 여러분은 주변에 있는 모든 정보를 끌어 모아 분석한 뒤 완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경우라도 서두르지 말고 일을 진척시키지 말라. 엘리자베스는 영국의 최고 경영자로서 이러한 의사결정을 했기에 유혈 충돌을 줄이고, 예산 균형을 맞추었으며, 자신의 신화적인 이미지를 보호하려는 목표에 부합되는 최고의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여성 CEO의 지혜와 지식

엘리자베스 여왕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이었을까?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녀의 가정 교사나 역사학자들이 제공하는 일화나 그녀의 글, 그리고 연설을 통해서 그녀의 지력(智力)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이미 14세의 나이에 영어와 프랑스어, 라틴어, 그리스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의 방언인 플라망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함은 물론 약간의 웨일즈어까지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언어뿐만이 아니라 종교와 음악, 건축과 천문학의 원리에 대해서도 뛰어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여가 시간에는 체스와 카드놀이를 즐겼고 그 외에도 승마나 산책, 연극 관람 등을 좋아했다. 여왕의 폭넓은 관심과 부지런한 학습 덕택에 그녀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예리했으며, 심지어 70세 나이로 죽을 때까지도 정신적으로 민첩한 능력을 유지했다.

물론 16세기 당시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정보시대로 신세계 발견, 새로운 사상의 유포, 과학적 진보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시대였다. 엘리자베스는 이러한 변혁의 시대 발전에 뒤쳐지지 않아야 한다는 도전에 적극적으로 맞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엘리자베스 시대에 비하면 견줄 바가 못된다. 시대는 변했어도 엘리자베스가 정보를 수집하고 예리함을 유지했던 방법은 그녀가 죽고 거의 400년이나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녀는 ’다중업무‘, ’정보선별‘, ’정보여과기술‘을 통해 새로운 정보의 홍수에 대처했고, 민첩한 정신을 유지했다. 단지 좋은 머리를 타고났기 때문에 그녀의 지력이 뛰어났던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정보들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에 입각한 의사결정을 중시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선별하기 위해 엘리자베스가 사용했던 기술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일로 후기 정보화 시대인 21세기에 발을 맞추려 하는 경영인들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성차별 뛰어넘기

“나는 육체적으로는 힘없고 연약한 여자의 몸이지만, 왕의 영혼과 정신을 가지고 있다. 영국 국왕의 영혼과 정신이 있음은 물론이다!”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엘리자베스가 이룩한 업적을 평가하기 위해 그녀의 성(性)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당시 여성의 지배에 반대하는 세력들 중에는 스코틀랜드의 혁명가 ‘존 녹스’도 있었다. 녹스는 “남자들 사이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통치하는 여자는 본질상 괴물보다 더 극악무도한 사람이다.”라고 주장했으며, 여자란 선천적으로 힘없고 약하며 깨지기 쉽고, 어리석으며 참을성 없고 게다가 ‘악마의 문’과 같은 존재라고까지 비난했다.

비록 엘리자베스의 왕위 등극에 즈음하여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자신들의 희망으로 등장한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함과 동시에, 녹스 역시 영국 여왕과의 프로테스탄트 동맹을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자신의 여성관을 무마시키려고 했지만, 엘리자베스는 일생 그를 경멸하며, 심지어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측근의 많은 남자들 역시 녹스 못지 않게 여자를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정치는 남자의 세계라는 자신들의 신념을 위장하는 데 있어서 녹스보다 그럴듯하고 능숙했던 것뿐이다. 또한 종교적인 열정 때문이 아니라 면직될까 두려워 여성을 옹호하는 척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감성과 지성으로 남성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의 벽을 넘었다. 그녀는 자신의 매력과 지성, 궁중의 화려함에 대한 적절한 관심을 통해 훌륭한 군주에 대한 신하들의 애정과 남자들이 어머니, 아내, 딸, 그리고 여자 주인에 대해서 가지는 애정을 하나로 융합할 수 있었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감정적인 지력을 발휘해 성(性)의 정치를 극복했던 것이다.

21세기의 직업 세계는 성 평등이 많이 이루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성의 진출이 용인되지 않는 남성 우위의 산업 분야가 많다. 요즘 찾아볼 수 있는 성공한 여성 CEO들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차라리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남성의 몫으로 여겨졌던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주변 남성들을 놀라게 하는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성공했다. 필요하다면 자신을 힘없고 나약한 존재로 부각시켜 남자들의 보호 본능을 일으켰다. 동시에 남성 우월주의자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그들이 가져올 수 있는 피해를 제한하고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극대화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변 사람들을 현명하게 다룸으로써 성차별 정치를 극복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위대한 업적보다 더 큰 일을 이루어냈다. 바로 한 시대를 창출한 것이다. 지금의 여성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것 역시 남성들과의 전투가 아니라 효율적인 인간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편견의 벽을 넘어서는 것일 것이다.

엘리자베스의 위대한 승리

“보시다시피, 나는 지금 기분 전환이나 오락을 위해 여러분의 곁에 온 것이 아닙니다.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 비장한 마음으로 신과 조국과 백성들을 위해 내 명예와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온 것입니다.”

1588년은 영국과 스페인 사이의 오랜 전쟁이 극에 달했던 해이다. 펠리페 제독이 지휘하는 스페인의 무적 함대는 영국 해군을 무찌르고 영국 본토에 상륙하여 많은 군대를 주둔시켰고, 의회를 장악해 그 나라를 여왕의 지배에서 영원히 해방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진격을 계속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한 나라의 리더로서 스페인의 침략 계획을 예견하고 있었다. 비록 어느 정도의 피해는 있었지만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혼란에 빠뜨렸고, 결국엔 살아남았다.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것은 엘리자베스 치세의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그녀의 탁월한 경영 능력이 있었기에 스페인 주식회사에 있는 극악한 인수자가 영국이라는 작은 섬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시도를 막아내고 승리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스페인 무적함대의 ‘펠리페’ 같은 낡은 사고 방식의 틀에 갇힌 패배자와 ‘엘리자베스’와 같은 기술 혁신과 권한 부여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 승리자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을 단순히 ‘왕과 전쟁’이라는 제약 속에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소기업에 관한 경영과 리더십, 대중의 호감과 관심, 시장 점유율 확보 등의 경제적인 문제로 확대 해석할 필요가 있다.

조직은 그 규모가 커지면 방만해질 수밖에 없다. 즉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역사상 가장 큰 함대를 출전시키자는 펠리페의 기본 전략은 거창했지만 창조적이지 못했으며, 세밀하지도 못했다. 펠리페는 전략에 있어 규모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거대한 규모를 보면 엘리자베스도 움츠러들고 말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군대의 규모보다는 화력을 중요시했다. 당시의 스페인 군대는 단거리 대포만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영국군은 장거리 대포를 갖추고 있었다. 양질의 무기만 보유하면 소수의 병력으로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엘리자베스의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미국의 거대 기업 GM은 최고 품질의 소형차를 요구하는 고객의 요구에 편승하는 도요타와 혼다 같은 일본 기업에 대항에 비슷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과거 이 기업의 경영 철학은 ‘큰 인기 상품’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늘리고, 순익을 늘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영자들은 이러한 경영 원칙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고, 마침내 전체가 아닌 세부 사항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더 작은 규모로, 융통성 있게, 간소한 체계로 빠르게 대처해 나가는’ GM의 새로운 전략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그것과 유사했으며, 여왕이 ‘클수록 좋다’는 주의로 경영하는 펠리페에게 승리했듯이 이 회사는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엘리자베스와 펠리페는 대조적인 경영과 리더십 스타일을 보인다는 점에서 좋은 연구 자료가 된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는 자신만의 카리스마로 신하들에게 권한 위임을 했지만 펠리페는 활력 없는 경영인에 불과했고, 엘리자베스는 비전과 사명을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펠리페는 전통과 법률 집행만을 고수했다. 또한 엘리자베스는 새로운 미래 건설을 위해 일했지만, 펠리페는 현재 상태만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런 차이점들이 합해져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몸소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녀는 무적함대를 패배시킨 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로서는 이토록 압제적이고 오만한, 제정신 아닌 스페인 왕의 시도를, 그의 파멸의 끝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파멸의 시작으로 본다. 그 왕은 평화 문제도 그릇된 전쟁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로서는 매우 유감스런 결과를 통해서, 나는 가장 위대한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생애와 업적을 그저 한 인물의 발자취로만 취급하기엔 너무 아쉽다. 그녀가 지금의 정치적, 경제적 리더들에게 해주고 있는 이야기는 너무나 다양하다. 스스로 미래를 개척한 그녀는 경쟁자를 잘 파악하고, 자신의 사업 분야의 환경을 이해해서 새로운 기술과 방법을 활용하는 방법, 사명과 비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최고의 리더가 되는 방법 등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상운교회
글쓴이 : 강인철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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