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요약

[스크랩] 우연의 일치, 신의 비밀인가 인간의 확률인가(마틴 플리머 · 브라이언 킹 지음)

강인철 2009. 7. 9. 16:43

우연의 일치, 신의 비밀인가 인간의 확률인가

마틴 플리머 · 브라이언 킹 지음

수희재 / 2006 9 / 310 / 12,000

 

저자

마틴 플리머Martin Plimmer 저널리스트이며 방송인. 픽션으로 꾸민 회상록 『King of the Castle』의 저자다. 그는 언젠가 격렬한 두통을 느껴 병원으로 달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 병원 대기실에서 2년 전의 잡지가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페이지에는 두통에 관해 쓴 자신의 기고문이 실려 있었다고 한다.

 

브라이언 킹Brian King 라디오 프로그램의 프로듀서로, BBC 라디오 4에서 수많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분야의 파이오니아 상을 받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를 다루고 있는 롱런 시리즈 <절체절명 On the Ropes>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 프로그램에는 마틴 플리머가 출연하고 있다.

 

역자 김희주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마치고, 현재는 광고 기획 분야에서 일하며 창작과 번역을 하고 있다.

 

Short Summary

우연의 일치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보이지 않는 외부의 어떤 힘이 자신에게 닿았다는 오싹함이요,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특히 행운의 우연을 경험했을 때, 우리는 우주가 자신에게 호응해 주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우연의 일치를 좋아한다. 스티븐 라드키는 대학생들이 경험한 우연의 일치를 몇 년에 걸쳐 조사했는데, 그 결과 우연의 일치에 주의를 기울이는 학생들이 심리적 건강도도 높고 초기의 대학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연의 일치에 대한 흥미는 필연적으로 예언을 팔아먹는 사람들을 낳았으니, 노스트라다무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우연의 일치에 대한 호기심과 열성이 지나치면 때로는 정도를 벗어나 잘못된 관점을 가지기도 한다.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과 주디 갈랜드 주연의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연관시키는 일 등이 그렇다.

 

복권에 수차례 당첨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7차례나 벼락을 맞아 벼락 맛의 감별사가 된 사람도 있다. 슈퍼맨을 둘러싼 불운의 연속은 유명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운이 좋다든가 운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빵을 떨어뜨렸을 때 버터를 칠한 면이 위를 향하는 타입인지, 아니면 바닥에 닿는 타입인지를 구별하기도 한다.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은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들에게 운의 좋고 나쁨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했다. 실험 중 하나로, 신문을 건네주고 사진 수를 헤아리도록 지시하면,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면에 실려 있는 페이지 절반 크기의 다음 메시지에 눈을 멈춘다.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 신문에 있는 사진 수는 42장입니다. 그런데 운이 나쁜 사람은 작업을 단축시킬 수 있는 이 기회를 깨닫지 못한 채 마지막 면까지 계속 헤아려 간다고 한다.

 

상당히 복잡한 수학 공식을 사용하면, 한 방 안에 23명만 있으면 그중 2명이 같은 생일일 확률은 50%를 넘는다고 한다. 저명한 수학자 워렌 위버는 미군 고관들과 식사를 할 때 이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테이블에 둘러앉은 22명의 생일을 물어보았다. 유감스럽게도 한 바퀴를 돌았으나 같은 생일의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방에 있던 23번째 사람이 그를 구원해 주었는데, 그 사람은 시중을 드는 웨이트리스였다.

 

수학자들은 우연의 일치를 마법이나 신의 개입으로 설명하는 데는 극구 반대하며, 확률로 설명하려 든다. 링컨과 케네디의 유명한 유사점들에 대해서도, 그것은 수비학(數秘學)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회의론적인 관점에 다소 빈틈을 보이기도 한다. 신비론자이든 회의론자이든, 결론은 이렇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차례

 

1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우연의 일치

 

Chapter 1 - 우주가 "그렇다!"고 외친다

Chapter 2 - 사람은 왜 우연의 일치를 좋아하는가?

Chapter 3 - 세계는 좁다

Chapter 4 - 과학은 우연의 일치를 포착할 수 있을까?

Chapter 5 - 법정에 선 우연의 일치

Chapter 6 - 운이 좋은가, 우연의 일치인가?

Chapter 7 - 확률론으로 본 우연의 일치

 

2부 사방에서 출몰하는 우연의 일치

 

Gate 1 - 작은 세계

가슴 아픈 그림엽서 / 아저씨, 그 노래를 부른 것은 바로 나예요

선행은 보답을 받는다 / 잃어버린 소지품 / 되돌아온 원고 / 최고의 지혈대

해변의 타인들 / 예언의 알림판 / 전기가 통한 우연의 일치

 

Gate 2 - 더 작은 세계

두 자매 / 만만한 봉의 역습 / 잘못 건 전화

우연의 일치, 아니면 희한한 복수? / 수표 친구 / 카르핀의 차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 제 멱살 잡기 / 스판덱스 사건

 

Gate 3 꿈속의 만남

가깝고도 먼 거리 / 동생들아, 어디에 있니? / 인형아, 안녕 / 운명의 사진

 

Gate 4 - 잃어버린 것을 찾다

바다에 떨어진 두 개의 반지 / 황금 성냥갑 / 돌아온 브러시

잭 프로스트와의 따스한 만남 / 일기 속의 숨겨진 문서

 

Gate 5 - 현실이 된 예술

타이탄 호와 타이타닉 호 / 와일드사이드의 엑스트라 / 부러진 다리, 꺾인 소망 /

창조한 헝가리인 / 캐롤라인 호의 이중 조난 / 아내를 창작한 남자 / 스파이 소굴

죽음을 예언하는 소설 / 캐빈보이, 리처드 파커 / 리처드 파커 추신

메리 콜리어의 마지막 배역 / 데이비드 옐담 판사

 

Gate 6 - 정확한 타이밍

우주정복 / 배우와 소설 / 목숨을 구해 준 노래 / 파랑새의 진혼가

 

Gate 7 - 불운과 저주

미이라의 저주 / 파파도크의 저주 / 돌에 걸려 있는 저주 / 금요일 오후의 자동차

도쿄를 불사른 기모노 / 번개쟁이 마사 / 벼락 공격을 끝나지 않는다 / 번개를 나를 좋아해

 

Gate 8 - 역사는 반복된다

아주 비슷한 살인 / 열차 사고 / 건널목

 

Gate 9 - 메아리

시각까지 정확히 들어맞다 / 직소퍼즐에 담긴 추억 / 피스로 과거를 끼우다

이중 노출 / 토네이도에 휩쓸린 남자 / 9.11 테러의 모의 훈련

한없이 이어지는 불운의 끝은 어디인가 / 다리 위의 죽음

 

Gate 10 - 이름에 숨겨진 비밀

페이지와 페이프 / 마법의 수호를 받은 이름 / 유유상종 / 그린베리 힐

법의 이름으로 나를 체포한다! / 내가 누구와 충돌했다고 생각하나? / 쌍둥이의 죽음 / 화장실 이야기

 

Gate 11 - 평행우주

완다는 하나로 충분하다 / 왕과 레스토랑 주인 / 그건 내 몸이 아니었다 / 마르탱게르 

쌍둥이 자매 / 법은 나의 목자(셰파트)이시니 / 링컨과 케네디 / 일란성 쌍둥이

둘이 하나의 인생을 / 웃는 쌍둥이? 죽을 때도 함께

 

Gate 12 - 행운

행운을 반죽하다 / 발겨되기를 바라고 있던 지도 / 비행기는 부품이 있는 곳에 떨어진다

이중 위험 / 잘못 탄 버스 / 하키가 가져다준 단서 / 5시 방향에 수호천사가 있다

행운아 레스 / 처칠의 행운의 선택

 

Gate 13 - 숫자에 숨겨진 비밀

두 번 잘못하면 올바른 숫자에 닿는다 / 자동차 번호가 가르쳐 준 극비 정보

잘못 건 전화, 올바른 선택 / 그림 밑의 표지 / 운명적인 탄생

복권도 13이라는 숫자를 싫어한다 / 캡틴 클라크의 불운한 날 / 성서의 숫자들

 

 

Gate 14 - 심령과 우연의 일치

꿈속의 여자 / 통증이 천리를 가다 / 에스메랄다에게 걸려온 전화 / 돌풍의 장난 / 작은 책 

남의 아픔은 나의 아픔 / 융의 역습

 

Gate 15 - 장난치는 우연의 일치

순식간에 늘어난 가족 / 홀인원 / 휴가 간 저승사자 / 구조자가 된 수도사

 

Gate 16 - 외전

뛰어내린 아내 / 잘못 고른 택시 / 아기 비가 내리다 / 포커페이스 / 세상에서 가장 느린 총탄

 

닫는 말 - 최고의 우연의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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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우연의 일치

 

우주가 그렇다!고 외친다

나와 당신은 전에 만난 적이 있다. 한번 이야기해 보자. 틀림없이 공통점이 나올 것이다. 먼저 넓은 범위에서 살펴보자. 언어, 인종, 국적, 성별, 현관문의 색깔, 이탈리아 요리를 좋아하는 것, 물웅덩이에 풍덩 발을 딛고 싶어지는 충동……, 그리고 이 책! 이번에는 좀 더 초점을 좁혀 보자. 우리 둘 다 찾아간 적이 있는 장소, 거의 만날 뻔했던 순간,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이에 두고 이웃이 되었던 상황, 공통의 지인들…….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 많은 사실들을 찾아낼 것이다. 오래전 같은 마을에서 살았고, 같은 학교에 다녔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났으며, 같은 회계사를 이용하고 있고, 같은 꿈을 꾸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함께 버스를 타고 도시를 돌아다녔을 수도 있고, 그 버스 안에서 서로 어깨를 부딪쳤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우리를 오싹하게 만든다.

 

우연의 일치를 깨달았을 때, 우리는 대개 전율하게 된다. 특히 그 우연의 일치가 아주 희귀한 일일수록, 보이지 않는 손이 등줄기를 훑어 내리는 듯한 오싹함을 맛보게 된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외국의 마을에서 우연히 만나거나,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벼룩시장에서 찾아냈을 때 등등,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나 물건을 마주하게 되면 아무리 회의론적인 사람이라도 마음이 흔들리고 만다. 우연의 일치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일까? 그것은 외부의 어떤 힘이 자신에게 닿았다는 오싹함이요,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럴 때면 잠시나마, 자신은 작고 하잘것없는 인간이며 우주는 변덕스럽고 무서운 곳이라는 불안감을 떨쳐 버리게 된다. 그리고 우주에서 크게 들려오는 그렇다YES!!!는 소리를 듣게 되며, 우리는 우주의 일부가 된다.

 

아무쪼록 이 책을 즐기길 바란다. 당신이 나와 마찬가지로 우연의 일치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면, 틀림없이 이 책을 즐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당신과 내가 부딪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우리는 부딪칠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연의 일치에 아무리 스릴을 느낄지라도, 역시 우리는 현실적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종일 집에 죽치고 앉아서, 짐을 너무 많이 실은 경비회사의 비행기가 행운의 금방망이를 잔디밭 위에 떨어뜨려 주기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위대한 우주의 그렇다!는 외침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참으로 멋지지만, 일상의 생활은 계속되어야 한다. 코미디언인 아널드 브라운Arnold Brown이 말했듯이, 세계는 작지만, 당신이 다 색칠할 수 있을 만큼 작지는 않다.

 

사람은 왜 우연의 일치를 좋아하는가?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우연의 일치를 좋아한다. 우연의 패턴과 질서, 즉 그 조화성에 끌린다. 심지어는 중독된 나머지,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곳에서 우연의 일치를 탐구하기도 한다. 우연의 일치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것일수록 더 맛이 있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려 수화기를 들고 보니 상대가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경험을 당신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가슴이 벅찰 만큼 즐거워지고 따스한 마음이 들지 않는가? 이런 일이 생기면 자신이 남들보다 더 예리한 직감을 갖고 있다든가 모종의 정신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고, 단지 우연과 확률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을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물리적 법칙을 초월한, 우연의 일치를 뛰어넘는, 보통과 다른 어떤 것, 즉 거의 초자연현상이라 여기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도 되지 않고, 그 의미가 매우 심장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에 대한 흥미는 필연적으로 예언을 팔아먹는 사람들을 낳았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사람은 16세기 프랑스의 점성가이자 의사인 노스트라다무스다. 그는 별과 점성술에 대한 연구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극적인 예언들을 수없이 끌어냈다. 프랑스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도 그가 예언했다는 설이 있다. 아주 최근에는 뉴욕 세계 무역센터의 트윈 타워를 덮친 9 · 11 동시다발 테러를 정확히 예언했다는 설이 현대의 신화로서 주목을 받았다. 심령술에 의한 예언이 빗나갔다든가 예고되어 있던 참사가 결국엔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정말로 빗나가는 일이 있었을까? 결코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 빗나가면 유야무야 덮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비해 사건이 일어난 뒤에야 비로소 실은 이런 놀랄 만한 예언이 있었다고 밝혀지는 케이스가 얼마나 많은가. 지나고 나서 보니까 예언이더라! 하는 식이다.

 

사람은 왜 우연의 일치를 좋아하는가? 작가 아서 케슬러Arthur Koestler가 말하는 사물은 동시에 일어나고 싶어한다는 보편적 원칙을 본능적으로 즐기고 있기 때문일까? 우연의 일치란 어쩌면 인간 조건의 기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연의 일치가 낳는 패턴과 리듬, 조화성을 찾고 있다. 우연의 일치는 무질서한 일상으로부터 해방되는 한때를 제공한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의 뇌는 처음부터 우연의 일치를 탐구하고 그것을 만들도록 짜여져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분신을 찾고, 또 하나의 자신이 사는 ─ 물론 현실의 자신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 평행우주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를 연구한 수학자 이언 스튜어드Ian Stewart의 과학자로서의 견해는 더 무덤덤하다. 그렇다. 선술집에서 나누는 잡담의 안성맞춤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는 좁다

과거에 이상하게 여겨졌던 것이 지금도 이상하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 반면에, 우리는 새로 찾아낸 우연의 일치를 무턱대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사실, 초자연적 현상인 해석을 선택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있다. 옛날 사람들보다도 우연의 일치를 만날 기회가 훨씬 많아진 것도 그 이유의 하나인데, 그 빈도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조상은 지금보다 작은 사회 속에서 살았고, 멀리까지 이동하는 일이 훨씬 적었으며, 경험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훨씬 좁았다. 생활 속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관련성을 찾아낼 기회도 한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런 기회가 찾아왔을 때는 거기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다. 현대 세계는 덜 미신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마법처럼 보이는 일이 일어나기 쉬운 세계이기도 하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곤혹스런 일로 가득 차 있고, 그 경향은 점점 더 짙어져 가고 있다.

 

정보가 방대해지면 우연의 일치가 일어날 확률이 커진다. 통계학자가 사용하는 큰 수의 법칙에 따르면, 샘플이 많아지면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도 일어날 가능성이 나온다고 한다. 성서의 암호가 좋은 예일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몇 가지 설에 따르면, 신의 말씀을 직접 기록했다고 하는 헤브라이어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암호가 포함되어 있고, 그것을 해독하면 인류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가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벽촌의 허물어진 수도회에 속하는 학자에게, 본문 중의 빈칸이나 구두점을 뛰어넘어 글자만을 규칙적으로 늘어놓은 문자열로 간주한 뒤 숨겨진 암호의 패턴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오래도록 명예로운 일로 여겨져 왔다. 성서에 포함된 엄청난 문자의 수와, 모음을 쓰지 않는 헤브라이어의 표기법을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조사하는 동안 우연히 일치하는 단어의 패턴이 나오면 거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1967년 사회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지구상에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경유하는 사람 수는 불과 6명뿐이라는 것을 예측했다. 이런 생각은 디너파티에서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지만, 밀그램이 이를 증명하지 못했던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다른 사회학자 던컨J. 왓츠Duncan J. Watts가 똑같은 설을 훌륭하게 증명해 보였다. 왓츠는 먼저 60,000명의 사람들을 나라별, 직업별로 구별하고 타깃을 설정했다. 그리고 타깃 앞으로 이메일을, 반드시 아는 한 사람에게 전송하되 그 아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전송하도록 의뢰하는 방법으로 보내게 했다. 그 결과 이 메일은 평균 5~7인을 경유하여 타깃에게 닿았다. 왓츠의 실험은 세계가 작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과학적인 실험으로 증명되지 않는 믿기 어려운 관계가 발전되면, 우리는 섬뜩함과 신비함을 느끼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건을 자신의 사고의 흐름과 결부시키려고 하는 시도를 통제 착각illusion of control이라고 부른다. 블랙모어는 간단한 예로 교통신호등을 제시한다. 예컨대 교통신호등에 가까이 가자 신호가 바뀌었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신호가 생각대로 바뀌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우연의 일치를 마음이 사물을 지배하는 염력의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사에 따르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신호가 바뀌지 않았을 때는 그것을 알고서도 으레 무시해 버린다고 한다. 블랙모어는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과 일어나는 사건 사이에 우연의 일치를 찾아냄으로써 주변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심령적인 사건을 믿게 되면, 그러한 인과관계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과학은 우연의 일치를 포착할 수 있을까?

20세기에 들어서자, 우주라는 바깥을 향한 관점과 원자라는 안을 향한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려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생겨났다. 두 방향 다, 그전까지 진실이라 여겼던 것을 혼란시키는 놀라운 새 사실들을 속속 밝혀내었다. 에너지와 물질은 동일한 사물을 나타내는 두 가지 다른 표현이라는 것(일반인에게는 약간 익숙하지 않은 개념일 것이다라고 아인슈타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빛이 중력에 의해 굴절된다는 것, 그리고 사람은 시간을 추월할 수 없다고 했으나 빛의 속도로 이동할 경우에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빛 자체도 예전의 개념을 뒤집어엎고, 관찰 방법에 따라서 때로는 파도처럼 때로는 입자의 흐름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 우주로 나가 보면, 감히 상상도 못할 만큼 고밀도의 블랙홀이 소용돌이치면서 별과 빛을 빨아들이고, 주변의 공간과 시간을 일그러뜨리면서 우주에 굵고 낮은 으르렁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한편 원자는 예전에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구체(원자 atom이라는 용어의 유래는 떼어 낼 수 없다는 뜻의 그리스어 atomos) 라고 여겨져 왔지만, 그 안에 축소판 우주가 있어 외부 세계의 물리적 법칙과 모순되는 다양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원자는 아주 강하고 특수한 힘으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어, 여기서는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과관계도 적용되지 않고, 입자의 정확한 상태도 예측할 수 없다. 정통파 과학자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원자 구조에 대한 연구가 매우 개인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이었다. 전자와 같은 원자의 구성 요소는 계측을(, 관찰을) 시작할 때부터 그 움직임이 바뀐다. 관찰하려고 하면 입자와 같은 것이 보이거나, 아니면 파도처럼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보는 순간 모습을 바꾸기 때문에, 보기 전에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래서 해석이 필요했다. 과학자는 주관적─이 말은 의식과 우연의 일치의 본질을 나타내는 형용사다─으로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융이 남긴 가장 유익한 유산은 공시성이라는 말이다. 이는 우연의 일치라는 제한된 의미뿐 아니라 뜻밖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인간의 주관적인 반응도 나타낸다. 공시성이란 본인에게 의미가 있는 우연의 일치로서, 단순한 확률 이상의 어떤 것을 가리킨다. 의미가 있는지 아닌지는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해석하기 나름이다. 이는 마치, 입자는 입자인가, 아니면 사실은 파동인가, 대체 무슨 원인으로 입자는 형태를 바꾸는가, 하고 머리를 쥐어짜는 현대 원자물리학자의 모습과 유사하다. 1952년 융은 또 한 명의 훌륭한 통찰력의 소유자, 물리학자 볼프랑 파울리와 공동으로 <공시성―비인과적 연관의 원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융은 공시성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과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같은 의미를 가진 두개 이상의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에서의 우연의 일치.

 

한 가지 충고할 것이 있다. 외계인으로부터 우주선에 올라타라는 말을 듣더라도 냉정함을 잃지 말고 절대로 거절할 일이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에 대해서는 늘 주의를 기울일 것. 그것은 건전한 일이기 때문이다.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의 이례(異例) 심리학 연구팀의 수장인 크리스 프렌치Chris French 교수는 말한다.

인간은 사건을 관련짓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종으로서 번영해 왔다. 하지만 그 대가로, 인간은 간혹 실재하지 않는 연결이나 패턴을 찾아내려는 경향도 갖고 말았다.

따라서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 일이다. 게다가 심리학자가 인간의 또 한 가지 약점이라고 말하는 아포페니아apophenia에도 주의하자. 이것은 관계없는 현상들에 대해 관련성과 의미가 있다고 자동적으로 생각해 버리는 성향을 말한다. 마음이 혼란스러운 사람은 특히 아포페니아에 빠지기 쉽다. 사실 최근에 와서, 이러한 경험이 마음병의 징후냐, 아니면 원인이냐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법정에 선 우연의 일치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 마틴 플리머(이 책의 공동 저자 : 옮긴이)는 새로운 타입의 잡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여러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기사 중에서 최고의 기사들을 선정하고, 뉴스와 스포츠 등 모든 장르의 보도를 다이제스트판으로 정리하자는 것이었다. 마틴은 어떤 출판업자를 찾아가 이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출판업자는 흥미를 보였지만, 그 후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쯤 뒤에 마틴이 생각해냈던 잡지가 2,3개 발행되었다. 마틴의 아이디어는 도둑맞은 것인가, 아니면 그 아이디어가 시대의 풍조에 맞았을 뿐인가? 마틴은 지적소유권을 침해당했는가, 아니면 우연의 일치에 희생되었을 뿐인가?

 

이런 종류의 소송은 말하자면 법의 지뢰밭 같은 것으로, 많은 소송 당사자들의 발목을 날려 버렸다. 지적소유권을 둘러싼 재판에서 판사나 배심원이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문제가 된 유사점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디자인이나 예술 작품, 혹은 점포의 이름도 마찬가지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거의 같은 것을 생각해 낼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가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은 두 사람이 동일한 독창적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이유에 대해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집합적 무의식을 이용하고 있다는 이론이다. 집합적 무의식이란 같은 문제에 대해 같은 결론에 이르는, 즉 우리를 같은 창조적 공정을 거치도록 이끄는 자연의 힘이다. 지적재산의 도용 사건 전문변호사 데이비드 배런에게, 타인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고소당한 의뢰인을 변호할 때 이 이론을 사용하면 어떤가 하고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이 나라의 고등법원 판사가 그런 철학적인 접근법에 시간을 허락해 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해 볼 가치는 있을 겁니다.

 

아널드 브라운Arnold Brown은 마이크 하나로 관객을 웃기는 스탠드 업 코미디언이다. 이 일은 툭하면 자존심에 상처받기 쉬운 데다, 가장 독창적인 개그 거리를 놓고 격심한 경쟁을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이다. 그 같은 직업의 생리상, 소재를 도둑맞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만일 자신의 소재를 다른 코미디언이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자를 소송하고 싶어질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라고 해서 내버려 둘까? 브라운은 말한다. 둘 다 아니에요. 틀림없이 그자를 죽이고 싶어질 겁니다.

 

그러나 브라운은 법정으로 달려가기 전에 알아 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이와 똑같은 조크를 미국의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Jerry Seinfeld가 일찍이 1993년에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브라운의 생각은, 남들과 똑같은 조크를 하는 우연의 일치는 다른 코미디언이 그 조크를 할 때 입을 폭발시키는 장치라도 발명되지 않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피고 트룹티 파텔은 버크셔 주 메이덴헤드에 사는 35세의 약사로, 1997년에서 2001년 사이에 아들 아마와 제이미, 딸 미아 등 모두 셋을 살해했다는 기소 사실을 부인했다. 셋 모두 생후 3개월도 되지 않아 죽었다. 그러나 파텔은 아기들을 질식사시킨 것도, 숨쉬기가 어렵도록 가슴을 눌렀던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레딩에서 행해진 트룹티 파텔의 재판에서 저명한 소아과의사 겸 교수인 메도우 경은 두 아기가 돌연사 한다는 것도 의심스럽지만, 셋이 되면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는 한 살인이다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번 배심원들은 납득하지 않았다. 2003 6 11, 6주간에 걸친 재판 끝에 배심원들은 이것도 비극적인 우연의 일치로서, 3건의 살인 모두에 대해 피고는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다. 무슨 일이 일어날 확률이 어느 정도이든, 본디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은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운이 좋은가, 우연의 일치인가?

행운이라는 것은 왜 좀 더 공평하게 골고루 미치지 않는 것일까?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보내는 소수의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자질이나 불가사의한 힘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같은 사람이 복권에 몇 차례나 당첨되는 기막힌 행운은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그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운이 좋은 것일까? 갬블광인 믹 깁스는 사상 최대의 갬블로 일컬어지는 도박에서 합계 50만 파운드의 거금을 거머쥐었다. 그는 이런 일이 대체 어떻게 해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믹은 이것을 행운이나 우연의 일치로 보지 않는다. 과학덕분에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을 쏟아 부어 최신 스포츠 뉴스를 꼼꼼히 연구하고, 어떤 팀에 걸 것인지를 주도면밀하게 따진 결과라고 말한다. 하지만 약간의 과학을 적용하고 조금만 열심히 공부하여 행운을 거머쥘 수 있다면, 갬블광은 모두가 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다녀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자전거를 타고 실업보험을 타러 가고 있는 것은 왜일까?

 

또한 벼락이 같은 사람에게 두 번 떨어진 일도 있다. 벼락에 한 번이라도 맞으면 이미 악운이 다한 것이기 때문에 두 번 다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벼락에 맞을 가능성은 첫 번째와 거의 다르지 않다. 로이 클리블랜드 설리번은 36년 동안의 삼림감시원 생활 중 7번이나 벼락을 맞았다. 맨 처음은 1942년으로, 빗맞기는 했지만 엄지발가락의 발톱이 빠졌다. 그로부터 27년 후 벼락이 얼굴을 스쳐 눈썹을 태웠다. 다음 해에는 왼쪽 어깨에 화상을 입었다. 1972년에는 머리카락이 불에 그슬리고, 이듬해인 1973년에는 벼락의 충격으로 차에서 튕겨 나오고, 6번째인 1976년에는 발목을 부상당했다. 7번째가 되는 1977년에는 낚시를 하고 있을 때 벼락이 떨어져 배와 가슴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갔다.

 

하트퍼드셔 대학의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 박사는 성공을 거두어 행복한 인생을 보내는 사람과 실패만 반복하는 불행한 사람이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또한 불운한 사람이 자신의 운을 좋게 할 수 있는가 아닌가를 10년에 걸쳐 연구했다. 박사는 운이 좋은지 나쁜지는 단순한 우연의 문제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 결과는 와이즈먼 박사의 예상대로였다. 똑같은 기회가 와도 그것을 살리는 길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운은 기회 또는 우연의 일치와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 와이즈먼 박사의 결론이다. 운이 좋은 사람은 삶에서의 기회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알아보고, 행동으로 옮긴다. 직감과 본능적인 감각을 이용하는 것이다. 운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와이즈먼 박사는 말한다. 당신의 미래는 불변이 아니다. 경험하는 행운의 양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당신 스스로 바꿀 수 있다. 많은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내고 제때 제자리에 있을 수 있는 기회를 현격하게 늘릴 수가 있다. 미래의 운은 당신 자신의 손안에 있다.

 

운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검증하고자, 와이즈먼 박사는 불운한 자원자들을 행운 강좌에 초대하여 일대일 카운슬링과 퍼즐을 푸는 실험, 앙케트 조사, 일기를 쓰게 하는 등의 지도를 했다. 그 목적은 스스로 운이 나쁘다고 믿는 사람에게 운이 좋은 사람들과 동일한 사고와 행동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나쁜 운에 대한 태도를 바로잡고, 자신의 직감을 믿으며,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도록 촉구했다. 행운 강좌에 들어오기 전에 트레이시는 자신을 유별나게 운이 나쁜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다. 이후, 트레이시는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다. 지금은 불운이 덮치면 더 이상 나빠질 일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삶에 대해 훨씬 적극적이 되었고, 불운이 찾아오는 것 자체가 훨씬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구덩이에 빠져 뇌진탕을 일으켰던 것이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새로운 일을 찾아내고, 새로운 집을 얻었으며, 반려가 될 남성도 만나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복권과 빙고 게임에도 당첨되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B. F. 스키너B. F. Skinner의 유명한 비둘기의 미신 연구는 1948년에 인디애나 대학에서 이루어졌다. 스키너는 이 실험에서 비둘기를 상자에 넣고 그 행동에 관계없이 15초 간격으로 알갱이 먹이를 주었다. 그러자 몇 분 후, 비둘기들은 같은 장소를 빙빙 돌면서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좀 특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로는 먹이가 나오는 타이밍과 아무 관계도 없는 자신들의 작은 행동이 먹이가 나오는 원인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스키너는 이 현상에 대해, 실험의 이른 단계에서 먹이가 나왔던 것과 그때 비둘기가 하고 있던 행동이 우연히 결합되면 그 특정 행동이 강화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비둘기 같은 기본적인 착각은 범하지 않는 게 아닐까?

 

크리스 프렌치 교수는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자신의 운을 믿는 사람이 우울증 환자보다 오히려 현실을 보지 않는 것을 증명하는 연구가 있다고 말한다. 인생이란 실제로 매우 두려운 것이다. 우울증 환자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비현실적인 낙관주의자라고 부른다. 예컨대 버스에 치이거나 특정한 병에 걸리는 등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묻는 앙케트 조사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고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대답한다. 사실, 그런 사람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우울증 환자의 대답이 훨씬 정확하다. 하지만 자신의 운을 믿으며 살다 보면, 그만큼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게 되므로,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염려만 하고 조심조심 살아가는 사람보다 인생에서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비합리적인 사고가 오히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다.

 

확률론으로 본 우연의 일치

확률의 수학, 우연의 일치의 수학은 어느 정도 들어맞을까? 예컨대 운석에 맞을 확률에 대해 말하고 나서 몇 분 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만일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수학자는 이를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데 확률에는 이런 것도 있다. 파티에서 자신과 똑같은 생일을 가진 사람과 만났다면 얼마나 놀라야 할까? 365분의 1이라는 확률을 감안한다면 그리 흔히 있는 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 생일이 같은 사람을 발견하면 좀 특별한 일이 일어난 듯한 기분이 든다. 1년은 365일이나 있는데 같은 날 태어났다니 이 무슨 우연의 일치람! 놀랍게도 (상당히 복잡한) 수학의 공식을 사용하면 한 방 안에 23명만 있으면 그중 2명이 같은 생일일 확률은 50%를 넘는다고 한다.

 

누구나 사고와 불운은 타인에게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믿기지 않는 행운은 자신에게 찾아와 주기를 바란다. 게다가 확률 법칙의 미묘함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따라서 인생에 존재하는 위험에 대해 아주 이상한 행동을 취하고 만다. 옥스퍼드 대학의 사이드 비즈니스 스쿨Said Business School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은 평소에 교통사고로 사망할 위험을 무릅쓰며 사는데 약 100명에 1명꼴로(여성이 더 적지만)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위험을 반감시키는 에어백이나 범퍼 등 옵션의 안전 장비에 우리는 얼마까지 지불할까? 1,000파운드? 아니면 2,000파운드? 그 정도라면 선뜻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을 가능성이 똑같은 1%의 지뢰밭에 들어가라고 하면 우리는 얼마를 요구하게 될까? 아마도 2,000파운드 이상일 것은 틀림없다고 그 논문은 지적하고 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수학의 권위자로, 우연의 일치에 대해 연구를 진행해 온 이언 스튜어트Ian Stewart 교수는 언뜻 보아 있을 것 같지 않은 우연의 사건에 대한 해석이 확률의 법칙을 도외시하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는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을 정확히 보고 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마틴 플리머(이 책의 공저자 : 옮긴이)는 휴일에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코인을 던져 앞과 뒤 어느 면이 나오는가를 맞히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17번이나 연속해서 앞이냐 뒤냐를 맞혔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였을까? 스튜어트 교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수학적으로 생각해 보자. 앞이나 뒤가 나올 확률은 완전히 똑같아서2분의 1 2분의 1 17번 곱하면 약 100,000분의 1의 확률이 된다. 꽤 드문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일이라면 나도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다. 100,000번에 1번의 확률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누구나 가끔은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스튜어트 교수는 사람이 우연의 일치에 놀라는 것은 단지 일어났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 일이 자신에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 우주가 자신을 선택해준 것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말이다. 또한, 우연의 일치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의 직관은 백해무익할 뿐이라고 말한다. 평범하지 않은 장소에서 친구들과 마주치면 깜짝 놀란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건이나 균등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집중해서 일어나면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다. 영국의 복권에서 잘 나오는숫자의 조합은 5, 14, 27, 36, 39, 45이고, 1, 2, 3, 19, 20, 21은 잘 안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이 두 가지 조합이 맞을 확률은 완전히 똑같아서 13,983,815분의 1이다.

 

나의 설명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은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을 할 때다고 스튜어트 교수는 말한다. 예를 들어 운석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정말로 아주 가까운 곳의 빌딩에 떨어졌다면? 이것을 변명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대단히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 아니, 놀라서 뒤집어질 정도의 큰 사건이다. 1년에 운석에 부딪힐 확률은 약 1,000 8제곱분의 1이다. 예전에 소가 운석을 맞은 일이 있었고, 미국에서는 차에 부딪쳤고, 앞으로 1만 년 동안에 누군가는 운석에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언 스튜어트는 지금 있는 건물에서 떠나면 안전하다고 생각할까? 아니, 곤란하게도 그것은 모른다. 다른 곳으로 가도, 운석이 그곳에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건물을 나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예상 못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부 사방에서 출몰하는 우연의 일치

 

꿈속의 만남

세계는 작지만, 그 작은 세계 안에는 수십억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인터넷 세계 인구 시계Internet World Population Clock에 의하면 6,400,311,262명이 이 행성에 살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그 수가 더 많이 늘어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계속 만나게 되는 것도 전혀 놀라울 것이 없다. 뜻밖의 만남이라는 우연의 일치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6가지 분리점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아주 큰 벌판을 떠올리고 그곳에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놓는다. 그런 다음에는 그 아는 사람들이 아는 사람들을 집어넣고, 다시 그 아는 사람들의 아는 사람들이 아는 사람들을 집어넣고, 또 집어넣고, 또 집어넣고, 또 집어넣는다. 이 이론에 따르면 히말라야의 수행자와 호주 오지의 아보리진(호주 원주민 : 옮긴이)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그 벌판에 들어갈 것이다. 믿지 못하겠거든 한번 해 보기 바란다.

 

넬리 리처드슨은 1940년대 초에 오빠 조셉과 헤어졌다. 그 이후 두 사람은 반세기 이상이나 만나지 못했다. 조셉은 헤어질 당시 틴에이저로, 영국 해군에 적을 두고 있었다. 넬리는 나이를 먹자, 살아서 두 번 다시 오빠와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체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립 요양원에 있던 그녀는 거실 한구석에 있는 79세의 노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빠 조셉임을 곧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바로 옆길을 걷고 있었지만 그 길이 교차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둘이 만났을 때 조셉은 사립 요양원에 온 지 이미 6개월이나 지나 있었다. 그리고 그전에는 둘 다 맨체스터의, 2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장소에서 몇 십 년이나 살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는 각각 샌드라라는 이름의 55세 되는 딸이 있었다.

 

불운과 저주

1955, 제임스 딘James Dean은 애차 포르셰 스파이더가 도로에서 튕겨 나가는 인해 사망했다. 차는 차고로 운반되었는데, 그 와중에 정비사에게 떨어져 다리를 부러뜨렸다. 한 의사가 그 차의 엔진을 사서 자신의 레이싱 카에 끼워 넣었다. 그는 레이스 도중에 충돌사고로 죽었다. 역시 같은 레이스에서 딘의 차에서 빼낸 구동축을 끼워 넣은 차도 사고를 일으켜 그 운전자 역시 사망했다. 차체가 전시장에 나왔는데, 그 전시룸이 화재로 타버렸다. 그 후, 새크라멘토에서 다시 전시되던 중 차체가 전시대에서 떨어져 구경하던 사람의 고관절을 부러뜨렸다. 차는 오리건 주로 수송되지만, 그곳에서도 차는 받침대를 무너뜨리고 가게 윈도우를 가루로 만들었다. 1959년 차체는 9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강철 받침대에 올려졌다고 한다.

 

영국 기병대의 장교 메이저 섬머퍼드는 제1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해에 플랑드르의 들판에서 번개를 맞고 낙마했다. 이후, 그는 허리 아랫부분이 마비되고 말았다. 6년 후, 메이저는 캐나다의 벤쿠버로 이주했다. 그리고 강 낚시를 하고 있을 때 다시 낙뢰를 만나 우반신이 마비되어 버렸다. 2년 후, 그는 동네 공원을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런데 1930년 여름 어느 날, 다시 벼락이 그를 덮쳤다. 그로 인해 그의 몸은 전신마비가 되었다. 그가 죽은 것은 그 2년 후였다. 제우스는 그럼에도 메이저 섬머퍼드를 용서하지 않았다. 4년 후, 벼락이 그의 묘를 파괴해 버렸다.

 

역사는 반복된다

같은 나이의 두 여성이 157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살해되었다. 20세의 메어리 애쉬포드는 1817 527일 버밍엄의 북쪽 애딩턴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역시 20세의 바버라 포레스트의 교살 시체가 발견된 것은 1974 5 27, 버밍엄 교외의 같은 장소였다. 두 시체가 발견된 장소는 36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여자들은 모두 해거름 때 친구 집에 갔고, 댄스파티를 위해 한껏 멋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둘 다, 강간당한 후에 살해되었다. 두 사람의 죽음은 완전하다고 할 만큼 같은 시각에 일어났고, 양 사건 모두 시체를 숨기려고 한 흔적이 인정되었다. 살인죄로 체포된 범인은 양 사건 모두 이름이 손튼 ─ 에이브러햄 손튼과 마이클 손튼 ─ 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범행을 부정했고, 둘 다 무죄가 되었다.

 

이름에 숨겨진 비밀

구명동의, 구명보트, 비상용 휴대식량은 타고 있는 배가 난파했을 경우 도움이 되는 것들인데, 재수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똑같이 도움이 된다. 1660 12 5, 도버 해협에서 한 척의 배가 침몰했는데, 유일한 생존자의 이름이 휴 윌리엄스였다. 그로부터 121년 후의 같은 날, 같은 해협에서 다시 해난사고가 일어난 한 명만 빼고 모든 승객과 선원이 사망했다. 그 한 사람의 생존자는 마법의 보호를 받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이름인 휴 윌리엄스였다. 1820 8 5, 템스 강에서 유람선이 전복되어 탄 사람들 거의가 익사했지만, 다섯 살 소년 휴 윌리엄스만이 혼자 구조되었다. 1940 7 10, 영국의 저인망 어선이 독일군의 기뢰에 부딪쳐 침몰했다. 생존자는 불과 두 명. 숙부와 조카였는데, 둘 다 이름이 휴 윌리엄스였다.

 

닫는 말 | 최고의 우연의 일치

이것을 우리는 최초의 우연의 일치라 부를 수도 있고, 최후의 우연의 일치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최상급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최고의 우연의 일치라는 말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우연의 일치, 모두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우연의 일치이다. 나아가 이 지구의 생존, 태양계의 생존, 이 우주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우연의 일치이다. 무엇보다도, 이 우연의 일치 덕분에 우리는 이 행성에 모일 수가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존재 근거다. 그 절묘한 조화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졌더라면 우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이것이 행복한 시간인지, 아니면 거대한 통합 의지의 일부인지 따위의 생각을 굴릴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무()였을 것이다.

 

생명을 존재할 수 있게 한 우주적 조화는, 확률로 보아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우연의 일치 때문에 성립해 있다. 그것도 적절한 시계열, 적절한 속도, 중량, 질량, 비율로, 안정된 우주(생명의 존재에 절대 필요한 조건)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수학적 특성을 남김없이 갖춘 채 결합되어 있다. 이래서 인간의 마음 한편에서는 기세등등하게 솟구치는 자신감, 다른 한편에서는 겸허한 두려움의 감각이 차츰 커 간다. 둘 중 어느 쪽이 되는가는 다음의 대조적인 철학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한쪽 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이토록 완벽한 패턴은 곧 우주가 제멋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우주는 지고(至高)의 지적 존재가 특별히 생명을 유지할 목적으로 원자 차원에서 설계하고 조정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쪽 철학은 이렇게 주장한다. 이 우주는 1조 분의 1우연의 일치의 산물이라고.

출처 : 상운교회
글쓴이 : 강인철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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