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자 탁석산
1956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자연계열 1년 수료 후 육군에서 복무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에서 학사를, 같은 대학 철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흄의 인과론』『한국의 주체성』『철학 읽어주는 남자』『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흄의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가 있다.
▣ Short Summary
탁석산은 앞선 저서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의 주체성』 등에서 일반의 상식을 뒤집는 날카로운 철학적 통찰력을 보여줬다. 이 책 또한 TV 토론 프로그램 형식을 빌려 역사학자, 철학자, 일본인, 사회자 등을 패널로 내세워 한국 근대의 키워드인 '민족주의'의 실체를 규명하고 있다.
민족의 실체는 무엇인가? 민족은 꼭 통일되어야 하는가? 민족이 개인의 행복에 우선할 수 있을까? 왜 민족은 이데올로기가 되었을까? 저자는 이런 질문에 대한 논의를 펼치고 요즘 일고 있는 '민족'을 해체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과연 그러한지 되짚고 있다.
▣ 차 례
머리글 -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을까?
1장 상상의 민족, 현실의 민족주의
2장 우리말 없어지면 민족정신 없어지는가
3장 민족주의는 사다리이다
4장 일본은 외국이다
5장 시민이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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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을까?
민족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민족에 도전하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 지금의 분위기를 나는 의심한다. 왜 민족은 이런 이데올로기가 되었는가? 민족은 꼭 통일되어야 하는가? 민족이 개인의 행복에 우선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의문이 들 즈음 민족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즉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이므로 이제는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이 그동안 개인을 억압하는 기제로 사용되었으므로 마땅히 해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 아래 국사의 해체까지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동안 민족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품었던 진정성이 무시되거나 간과될 수는 없다. 민족은 구한말 이후 지금까지 우리에게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도록 했다. 민족 개념 해체와 민족에 대한 진정성, 어느 것이 옳은가?
이 책은 5회에 걸친 토크 쇼 형식으로 되어 있다. 토크 쇼 형식을 취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기 위함이다. 이 시대는 토론의 시대이다. 누구에게 설득 당하고 배우고자 하는 시대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말을 하고자 하는 시대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거의 온 국민이 각자의 의견을 갖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민족이라는 문제에 대해 너무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나는 다양한 의견을 토크 쇼라는 형식으로 일단 펼쳐 보이고 정리하고자 했다.
1. 상상의 민족, 현실의 민족주의
사회자 : 민족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민족이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사학자 : 먼저 민족이란 말이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쓰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족이란 말은 1900년 이후에 만들어지거나 일본에서 들어온 말로 생각됩니다. 1896년에서 1899년까지의 「독립신문」에는 민족이란 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1905년에서 1910년까지에 나온 「대한매일신보」를 보면 민족이란 용어가 177건 나옵니다. 즉 이 당시 민족이란 말이 꽤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요.
철학자 : 저는 『조선왕조실록』 국역 CD에서 민족이란 말을 몇 번 본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종 004 01/07/06(기유)을 보면 “섬에 있는 왜인은 우리나라 민족과 종류가 다르오니…”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원전을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용어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있었다고 해도 많이 쓰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본인 : 제가 알기로 일본에서 민족이란 말은 민(民)과 족(族)을 합쳐서 근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즉 니시카와 나가오는 『국민이라는 괴물』에서 “민족에 관해서는, 이것도 민과 족을 합쳐 일본에서 만든 용어이기 때문에(본래의 한자에는 없습니다) 유럽 언어와의 대응이 어렵습니다만, 독일어 Volk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사학자 : 『상상의 공동체』를 쓴 베네딕트 앤더슨의 정의에 따르면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민족이 상상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즉 실재하지 않으며 단지 상상으로 만들어낸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철학자 :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주장은 이후 많은 파문을 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민족이란 문화공동체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동료라는 의식이 생기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런 원인이나 이유 없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사회자 : 이제 민족의 정의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민족주의에 대해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든 실재하는 문화공동체든 어떤 주의가 붙으면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민족주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백과사전의 정의는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의 형성을 지상목표로 하고, 이것을 창건․유지․확대하려고 하는 민족의 정신상태나 정책원리 또는 그 활동”이군요.
사학자 : 민족주의가 결국 국가에 기반을 둔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동의합니다. 문제는 민족주의가 지닌 부정적 측면입니다. 즉 정의에 나오는 것처럼 창건이나 유지에 그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테지만 확대를 시도한다면 침략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된다면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입니다. 즉 민족주의는 자민족 중심주의가 되기 쉽다는 말입니다.
철학자 : 민족주의가 무엇인가는 비교적 분명한 것 같습니다. 민족을 단위로 해서 독립된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서구의 민족주의 개념을 한국이나 일본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과 국가의 관계 정리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서양의 통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양에서는 국가와 민족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절대 왕정이 붕괴되면서 인민이 주인이 되는 국가를 건설하게 되었는데 이때 국가를 이루는 기본 단위는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국가 건설은 서양에서는 보통 근대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근대민족국가’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입니다.
사학자 : 한국은 일본과 달리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데 구심점이 없었습니다. 준비도 없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강점기를 거치게 됩니다. 강점기를 통해 국가보다는 민족이란 말이 일반 백성에게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런 연유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국가주의는 약했지만, 민족주의는 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회자 : 첫 시간인데 내용이 좀 무겁지 않나 걱정되는군요. 다음은 민족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말해보죠.
철학자 : 최근 박노자 씨가 한국에는 민족주의는 있으나 국가주의는 없다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즉 한국에는 민족주의가 만연해 있지만 국가를 이루진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일본의 경우는 반대로 국가는 강력하게 구성되었고 민족은 사라진 느낌입니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 것이 되겠지요. 하지만 내면으로는 강한 민족주의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학자 :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한국이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은 같은 민족, 즉, 같은 핏줄이 아니면 적응하기 매우 어려운 나라입니다.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바탕에는 같은 피를 나눈 우리 민족만의 국가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고 봅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교가 뿌리내리지 못한 나라라는 오명을 지닌 나라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분명히 민족주의가 넘치는 나라입니다.
일본인 : 저도 그런 것을 느낀 적이 많습니다.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애국심인데요.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국가를 사랑한다기보다 민족을 사랑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 민족은 근대 이후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확산된 엔티티(entity)이다. 엔티티는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떠나 우리가 존재한다고 여긴다는 뜻에서 붙여본 것이다. 민족을 규정할 만한 요소는 별로 없다. 그런데도 강렬하게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민족의 이름으로 통일이든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이 시대를 덮고 있다. 하지만 따져보면 민족은 만들어진 것이고 시한을 갖는 임시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임시적이고 도구적인 민족주의가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가? 그것은 국가 건설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란 통일된 독립국가이다. 남북으로 갈라져있고, 북한은 중국, 남한은 미국의 영향에 있는 한반도는 통일과 독립 두 가지 어떤 요건도 갖추기 못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한데 민족이 이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장 우리말 없어지면 민족정신 없어지는가
사회자 : 시청자 여러분, 한 주일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이번 주에는 역사 문제를 다룬 후 통일 문제, 그리고 월드컵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학자 윤돈영 씨께서 먼저 하시지요.
사학자 : 얼마 전에 서울에서 고구려 전이 열렸습니다. 많은 관람객이 모여 연장 전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장사가 됩니다. 제 생각에는 고구려가 넓은 영역을 차지했고 중국과 당당히 맞섰으며 남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국가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우리 역사에서 남성적 이미지를 지닌 나라는 고구려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요.
철학자 : 우리 민족도 잘났다. 우리 민족도 한때 전성기가 있었다는 욕구에서 고구려가 강조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이란 하나의 공동체가 있는데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려면 자랑스런 역사가 필요하지요. 문제는 과거의 영광을 강조하다보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구려 전을 보면서 잃어버린 만주를 떠올리고 만주를 언젠가 우리가 회복해야 할 땅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일본인 : 일본에도 민족 우월감을 불어넣는 현상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불리한 역사적 사실은 되도록 감추고 좋은 것을 주로 기술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광대토대왕비 비문 해석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 모두 서로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회자 : 자민족 우월성을 내세우기 위해 역사 기술을 자국 중심으로 하는 것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요?
사학자 : 역사 서술 주체 문제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을 ‘우리 민족’이 극복했다가 아니라 ‘조선’이 극복했다고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족이란 근대 이후의 개념이고 우리 민족이든 우리나라든 역사적 실재가 아닌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역사 기술의 주체로 알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회자 :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습니까? 일본은 민족을 주체로 기술합니까?
일본인 : 글쎄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일본에서 역사 교과서는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고 국정 한 가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대외적으로 일본을 칭할 때에는 언제나 ‘일본’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특별히 민족이라든가 조국이라고 표현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이란 국호는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졌고 그 후 변함 없이 쓰였으니까요.
사학자 : 민족주의 과잉은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역사 왜곡은 현실 인식을 왜곡시킨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잘못된 역사 인식은 지금의 우리 모습도 제대로 못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 몇 년 전에 김한규 교수의『한중관계사』에서, 민족주의 과잉으로 인해 한국의 교과서는 원과 고려의 관계를 ‘간섭’이라고 표현했지만 이것은 한국사에서 가장 심각하게 자주성과 독립성을 훼손당했던 시기의 양국 관계를 표현하기에는 적절한 말이 아니라는 주장을 읽었습니다.
사회자 : 자 그럼 이번에는 지난 월드컵을 통해 민족주의 과잉 현상을 볼 수 있었는지에 대해 논의해보겠습니다. 먼저 일본인의 눈으로 본 월드컵 소감을 한 말씀 해주실까요?
일본인 : 놀랐습니다. 일본도 월드컵 열기가 대단했지만 한국처럼 광장을 가득 메우거나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응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일본 팀이 이기는 것을 바라고 이기면 좋아합니다만 그 수는 적은 편입니다. 일본인이 축구나 월드컵을 좋아할 때는 팀보다는 개인 기술을 더 좋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브라질의 카를루스가 왼발로 어떻게 프리킥을 차는가, 프랑스의 지단은 어떻게 드리블을 하는가, 이런 것들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월드컵 때의 한국인의 열정은 사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공포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사학자 : 저는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한국민의 열광은 국가 건설기에 들어선 한국의 모습이라고 여깁니다. 민족이나 국가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민족국가 건설을 완성하려는 시기에 월드컵이 열렸기 때문에 열광의 도가 높았다고 봅니다.
철학자 : 우리의 국가 의식이 축구를 통해 폭발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잘 놀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다른 말로는 신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면이 월드컵이란 축제의 장을 통해 신명나게 펼쳐졌다고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면보다는 한국 사회가 아직은 국가 형성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핏줄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주의 과잉의 가장 좋은 예는 국사 교과서이다.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의 주체가 ‘우리 민족’인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같은 핏줄은 한 민족이라는 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같은’ 핏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한번도 의심해보거나 따져보지 않은 무신경이 놀랍기도 하지만 따져보아야 별 소득이 없을 것을 직감하고 구호처럼 외치기로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언어는 핏줄에 비해 상황이 훨씬 낫다. 왜냐하면 핏줄이 섞이는 것은 노력으로는 막기 어려워 보이지만 언어는 그보다는 통제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언어이고, 우리말을 잃으면 민족혼을 잃는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뛰어난 언어인지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그럼 우리말이 없어지면 민족정신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참인가? 나는 민족정신이 실체가 있는 어떤 정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민족정신이 실체가 있다고 해도 민족정신과 언어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어를 말살하려 한 역사적 사실과 이에 목숨을 바쳐 저항한 사례로서 우리는 우리말 수호를 곧 민족정신 내지 민족정기의 수호하고 여긴다. 그러나 영어를 사용하는 싱가포르에서 보듯이 언어가 사라지면 동시에 민족의식도 사라진다는 명제는 증명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왜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어가 사라지면 민족의식도 사라진다고 주장하는가? 그 이유는 국가를 건설하려면 민족주의가 필요하기는 한데 민족주의는 내용이 없는 텅 빈 구호에 불과하므로 민족주의를 이루는 요소의 하나로 여기는 언어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해서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우리말을 지키기만 하면 민족정신이 지켜진다고 믿게 된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말과 민족정신의 완고한 결속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민족주의가 텅 빈 구호라고 해서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민족에 대한 진실한 마음과 열정을 의심할 수는 없다. 이에 민족주의는 ‘겸손한 장례식’을 치루어야 한다. 진정성은 존중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3장 민족주의는 사다리이다
사회자 : 안녕 못하시죠? 어떻게 이런 시대에 안녕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알아야 하는 것은 날로 늘어나고 판단해야 할 일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만 전문가나 권위자가 없기에 모두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제 민족주의를 주제로 한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민족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민족주의가 이 땅에서 어떤 상황과 어떤 구조를 배경으로 탄생하고 성장해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를 함께 토론해보겠습니다.
사학자 : 1860년 영국과 프랑스군의 북경 점거 소식을 들은 조선은 인심이 매우 흉흉해졌습니다. 하지만 서양에 대한 경계심만 높아졌을 뿐 중국에서 독립하는 일이나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세계정세에 둔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 : 일본은 준비를 해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관심 있는 것은 중국과 조선의 관계입니다. 정신적으로 조선은 중국을 종주국으로 받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중국도 당연히 조선을 중국의 일부, 즉 자치국 정도로 여겼습니다. 조선은 한때 자신을 소중화(小中華)로 자처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인지 당시는 근대민족국가 건설이 시급할 때였는데도 조선은 중국과 떨어진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라는 개념을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전히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해야겠지요.
철학자 : 저도 그 견해에 동의합니다. 중국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는 민족 개념이 없었지만 일본의 지배가 확연해진 1900년 이후에 민족이란 개념이 생겨납니다. 즉 중국이 정치적 실세 자리에서 사라진 후에야 한국은 민족이란 개념에 매달리게 됩니다. 갑자기 버려진 아이와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선이 망하고 일본이 지배하게 되니 민족이 더욱더 강렬한 흡인력을 발휘했다고 봅니다. 가령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했다면 민족의식은 강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근대 국가 건설기에 구심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민족이라는 혈연에 호소하는 자연 감정이 득세해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학자 : 그럼 해방 이후에는 왜 민족이 여전히 힘을 발휘했나요?
철학자 : 그것은 남북 분단으로 인해 또다시 온전한 국가를 건설할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모두 반쪽이라고 여기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남북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끈은 같은 민족이라는 것밖에 없었으니까요. 목숨을 바쳐 충성할 왕도 사라지고 목을 걸고 지켜야 할 삼강오륜도 희미해지고 생명을 다해 지켜야 할 온전한 국가도 없는 우리는 민족이라는 공동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사회 : 결국 민족주의는 근대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씀이신데요. 한국에서는 민족주의가 반일감정과 연결되어 확산, 심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철학자 : 한국 민족주의의 토대는 반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본을 미워할수록 민족은 강화되는 것입니다. 존 밀이 말한 공동의 긍지와 수치, 기쁨과 후회의 중심에 일본이 있었던 것이지요.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라도 일본과 관련되면 우리 공동의 기억을 건드리게 됩니다. 즉 기억의 공동체가 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민족주의는 사다리이다. 근대를 밑바닥으로 하고 국가 건설을 맨위의 착점으로 하는 사다리이다. 사다리는 보통 몇 개 또는 몇십 개의 칸으로 되어 있는데 민족주의도 몇 개의 칸으로 이루어진 사다리이다. 나는 이 몇 개의 칸을 민족주의 형성의 단계 내지 시대라고 부르고 싶다. 한국의 민족주의라는 사다리는 크게 다섯 칸(구한말~1905년, 1905년~1910년 한일병합, 일제 강점기~1945년, 해방~1990년, 1990년~현재)으로 되어 있으며 한 칸 한 칸을 만들 때마다 많은 피와 땀이 필요했다. 즉 남에게서 빌려온 사다리가 아니다. 한 칸을 세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고뇌했고 많은 희생을 치러야했다. 이 구분의 중심축은 민족과 국가의 상관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근대화가 그 밑을 흐르고 있었다. 즉 ‘근대민족국가’ 건설을 이루려 노력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근대화는 민족이나 국가, 체제와 관계없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일제 강점기에도 근대화는 진행되었다. 구한말에서 1905년까지는 민족이 등장하지 않았고 근대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는데 국가 건설이 가망 없어진 후 민족이 등장해 1910년까지 고양되었으며 해방까지 민족의식은 꾸준히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1990년까지 체제 경쟁으로 인해 민족은 무대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분단으로 민족과 국가의 갈등과 긴장 국면에 놓여 있다.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
4장 일본은 외국이다
사회자 : 일주일이 잠깐 사이에 지나간 것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시간의 주제는 민족주의와 일본의 관계입니다. 우선 각자의 입장을 밝혀주시는 게 어떨까요?
사학자 : 저는 일본을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극일과 함께 일본에 대해 따질 것은 이제 단호하게 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협력은 하되 짚고 넘어갈 것은 확실하게 짚어야 합니다.
철학자 : 매우 단호한 입장이신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제는 성숙한 자세로 일본을 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해방이 된 지도 50년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일본을 탓하는 것은 미성숙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일본은 세계 여러 나라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 : 한국에서 일본인이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말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한국의 반일 감정은 여전히 높고 한 개인이 아니라 일본의 대표로 발언한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일본에서도 비교적 솔직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회자 : 그런데 왜 유독 한국에서는 반일 감정이 강할까요? 외세라면 중국도 있고 미국도 있으며 프랑스도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요?
철학자 : 그것은 정치적 원인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1953년 10월 19일자 일본의 「지지신보」 사설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되풀이해서 말하면 일본에 대해 한국인이 지닌 악감정의 유래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라는 사람들이 그것을 선동하고 이용하는 악랄한 태도에 대해서는 절대로 승복할 수 없다."
사학자 : 정치가들이 선동하고 악용한다는 면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해방 후에 국가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반공과 반일을 내걸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지신보」의 지적은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잘못이 제대로 지적되지 못한 상태라고 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마치 일본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한국 정치가들이 악의적 선전 탓에 반일 감정이 생겼다는 듯이 말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본인 : 학문적으로 따져도 한국의 학자들은 다소 애국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태까지 한국의 학자들은 일본을 문화적으로 무시하는 주장을 많이 했습니다. 즉 일본이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일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한국보다 한 수 아래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과연 그런가요? 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씨는 "일본은 과거, 현재 모두 문화적으로 우월감을 가질 수 있는 수준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에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합니다.
철학자 : 많은 학자들이 일본의 한국연구가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한국 연구보다 더 활발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사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이 아니라 일본으로 가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물론 현장을 보러 한국에 자주 올 필요는 있지만요. 이런 말은 한국학을 연구하는 외국 연구자에게 들은 말입니다.
사학자 : 조금 논의를 구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국가 차원, 학문 차원, 일반 시민 차원에서 일본을 다룰 때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일본은 정치, 경제의 파트너임과 동시에 국가 단결을 위해 아주 유용한 존재입니다. 학문 차원에서 일본은 두려운 상대입니다. 학자들은 사석에서는 거의 모두 일본의 학문 수준을 인정합니다. 일반 시민 차원에서 일본은 미움이란 감정의 표적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는 존재입니다. 정리하자면, 국가와 시민이 같은 성향을 보이고 학자들은 조금 다른 태도라고 할 수 있지요.
철학자 : 국가와 시민이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것은 국가가 일본에 대한 태도를 교육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공적이라고 봐야지요. 일본에 관한 책들 중 잘 팔리는 것은 역시 일본을 비하하는 내용의 책입니다. '일본은 없다' 식이 잘 먹힌다고 할 수 있지요. 전여옥도 일본을 비하한 사람 중 한 명인데 어떤 사람은 "전여옥의 일본 체험은 얼핏 의기양양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아픔이며 깨지기 쉬운 것이고 종이 한 장 정도의 무게밖에 지니지 못한 것이다."라고 평가합니다. 자신이 잘못해놓고 일본인 탓, 일본 문화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합니다. 문제는 일본에 대해 잘 몰라도 일본을 깎아 내리고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우는 방향으로 간다면 일반인의 호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대 한국이 만들어낸 모습 중 하나입니다.
사학자 : 그렇다 해서 일본이 근대에 저지른 갖가지 잘못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이 국가적 단결을 위해 일본을 이용했다는 것과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면서 저지른 잘못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사로 다른 문제입니다.
사회자 : 토론이 조금 과열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정리하는 의미에서 앞으로 바람직한 한일 관계에 대해 말씀을 나눠주시지요.
사학자 : 아무래도 양국이 선린우호로 가려면 이해를 증진해야 하는데, 이해 증진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이 태도를 정리해서 과거사에 대해 좀더 진실에 접근해주길 바랍니다. 물론 우리도 민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좀더 세계사적인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인 : 저는 예전에 보았던 기사가 생각납니다. 「아사히 저널」에 재일화가인 이우환 씨의 의견이 실렸습니다. “서로 훌훌 벗어 던질 수는 없다고 해도 조금 거리감이 있는 외국인으로 서로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오랜 역사를 통해 양측의 교류와 교류 방식은 불가분의 관계를 넘어서서 이상할 정도의 밀착의 정도를 강화해왔고, 또 그만큼 터무니없는 근친 증오를 낳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타자를 인정할 만큼 자기가 가진 것이 넉넉하지 못한 인종에게, 자기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증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저는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거리를 갖는 외국으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자 : 저도 일본을 외국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단순한 사실은 일본을 좀더 객관적으로 보게 해줍니다. 물론 애증 관계가 있지만 애써 거리를 두고 외국으로 본다면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도 생길 것으로 봅니다.
* 이제 일본을 보통 국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성장했고 세월도 많이 흘렀다. 민족주의를 탈색하고 보면 일본은 우리와 가까운 외국일 뿐이다. 민족주의에는 일본에 대한 증오가 담겨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독립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 우리의 민족주의라면 일본에 대한 민족주의는 독립의지보다 시기심과 멸시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일본에 관한 한 이제 민족주의는 그 역할을 다한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개항부터 추구했던 근대민족국가 건설은 통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과 북은 탄탄한 국가체제를 형성, 유지하고 있으므로 어느 정도는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민족주의라는 사다리를 한 칸 한 칸 올릴 때마다 일본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하지만 이제 심리적 장애를 극복하고 일본을 외국으로 보아야 한다. 일본을 외국으로 볼 수 있다면, 사다리에 깃들어 있었고 일부가 되었던 일본도 색이 변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감이 양국의 우호를 증진시킬 것이다.
5장 시민이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
사회자 : 오늘은 마무리하는 의미로 한국 민족주의의 앞날에 대해 토론해보겠습니다.
사학자 : 저는 민족주의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적으로는 전체주의 내지 파시즘을 낳고 대외적으로는 배타주의 또는 침략주의를 낳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폐기되거나 완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자 : 의외군요. 지금 말씀은 민족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민족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다른 분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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